영국도 당연히 솅겐 조약[각주:1]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코펜하겐에서부터 출국검사를 하는거 보니 아차 싶었다.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티켓 끊어주는 직원이 나보고 비자가 있냐길래 그냥 스웨덴 거주허가증을 보여주니 통과시켜줬다. 에딘버러로 가는 내내 혹시 영국 방문하려면 따로 비자를 사전에 받아야되던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고 영국도 다른 여타 국가처럼 얼마간(아마도 90일?)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었다. 에딘버러 공항은 꽤 소규모의 공항으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이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스코틀랜드 영어 억양에 대한 악명은 익히 들어왔지만 스코틀랜드 사람과 이야기해보는 적은 없었다. 스코틀랜드 억양은 종종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사용되는데, 다음 영상을 추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5FFRoYhTJQQ) 엘리베이터 음성인식기가 스코틀랜드 영어를 못알아듣는다는 내용인데 많이 과장된거겠지만.. 막상 대화해보니.. 음.. 어쩌면 저 음성인식기 오류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흰머리 입국심사관이 이것저것 묻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로 이야기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_-;; 스코틀랜드 영어는 내 귀에 어떻게 들리냐면, 잉글랜드 영어 음성에서 중고음부 음역대를 다 깎아버려서 저음부만 남은, 웅엉웅엉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뭐 어찌어찌해서 일정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해줘서 통과를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100번 Air Link 버스를 이용하는데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10분간격으로 버스가 있고 가격은 싱글 3.5파운드, 리턴 6파운드이다. 공항에서 타면 거의 모든 관광명소가 다 모여있는 The Royal Mile 바로 코앞 Wavely Station이 있는 Wavely Bridge에 내려준다. 시간은 30분정도 걸린다. 

 에딘버러에 대한 첫 인상은 "아 여긴 급이 다르구나..."였다. 웨이브리 다리에서 보이는 로열 마일의 웅장한 모습이란.. 일단 오늘의 에딘버러 방문은 내일 하이랜드로 가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숙소로 갔다. 

 숙소 리셉션 여직원은 양 눈썹에 송곳 비슷한 피어싱을 한 고스족[각주:2]으로 사뭇 악마의 뿔이 생각나기도 했다. 호스텔은 굉장히 소규모로 아늑했는데, 단점은 주방이 좀 작았다. 취사공간도 한곳 밖에 없어서 한참 기다려야되고. 

 주방에는 중국인 여자애들 세명이 중국인 종특인 소란스럽게 떠들기 스킬을 시전해서 왁자지껄했다. 한국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도 그렇고, 일본에서, 유럽 곳곳에서, 스웨덴 학교에서 본 중국인들도 하나같이 소란스럽게 떠드는데, 중국어 자체가 성량이 크지 않으면 대화하기 힘든 언어인가 싶가? 하는 의문도 들고 소리 크게 내어 이야기하는거 자체가 하나의 문화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뭐.. 중국사람은 이런 특성때문에 어딜가나 50m 떨어져있어도 한 번에 중국인이라는걸 알 수 있는거 같다. 뭐ㅋ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이 다 그런건 아니다. 내가 아는 중국애들 몇몇은 정말 말도 잘 안하는 성격이니까.

 방에 가니 캐나다에서 온 커플이 있어 이야기를 좀 하게 됐는데 유럽배낭여행중인데 그냥 도시만 정하고 세부일정은 없이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에딘버러에서도 뭘 해야될지 모르겠단다. 바닷가 이야기가 나와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수다를 떨었는데 알고보니 옆쪽 침대에 있던 또 다른 커플이 프랑스인이었다. 또 한바탕 이것저것 이야기 하나보니 밤이 깊어 잘 시간. 그런데 폰 충전을 하려고 보니 영국은 플러그 모양이 다르다.. 내가 가본 유럽 국가들 모두 우리나라랑 똑같은 전압을 쓰길래 영국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특이한 3구짜리를 쓰는데 어댑터를 어디서 사야될지 고민이 됐다.

다행히 캐나다애들이 어댑터를 가지고 있어서 그 날밤은 무사히 넘겼는데 그 다음날 인버네스에서는 고생을 좀 하게 됐다. 

 다음 날 아침에 인버네스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데 왕복 티켓이 57파운드.. 우리 돈으로 10만원은 한다. 기차로 3~4시간 가량 가는 거리인데 KTX처럼 빠른것도 아니면서. 유럽에 살면서,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거지만 우리나라 교통운임을 정말 싸다. 유럽은 버스비,지하철비가 죄다 5천원,만원 이런식이고 기차값도 5,6만원씩 하니 기절할 지경.


 인버네스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수도로 지도상의 'A'지점에 있다. 에딘버러와도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있고, 런던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다. 정말 영국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다.


 하이랜드에 온 이유는 하이킹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딱히 경로 계획같은게 없었다.그래서 그냥 언덕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고 나중에 확인해본 나의 여정은 위 지도와 같다. 참고로 굳이치는 산들과 고지대를 보려면 더 북쪽에 있는 isle of skye를 가야되는데 접근성이 너무 안좋고, 투어를 이용하기엔 돈이 없어서 포기했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게 좋을듯? 나는 인버네스에서만 머물렀지만 기차타고 가는 4시간 가까이 입 벌어지는 풍경들을 계속 봤기 때문에 만족한다. 
 


 인버네스의 상징적인 이 다리는 굉장히 독특한 다리다. 왜 독특하냐면 걸을 때 다리가 흔들린다. -_-; 분명히 튼튼한 철골구조로 보이는데 흔들린다. 어떤 느낌이냐면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그걸 양쪽 끝에서 엄청난 힘이 억지로 꽉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 그래서 움직일때마다 다리가 흔들거리려고 하는데 어떠한 힘에 의해서 저지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눈꽃송이 모양의 장식. 건너편에 보이는건 인버네스 대성당(아마도).
 


 길거리는 뭐 대충, 이렇게 생겼다. 고층 건물도 없고 정말 조용한 동네이다. 인버네스엔 성이 있는데 성의 보존상태가 너무 좋아서 성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고 올라가보진 않았다. 
 


 중간쯤 올라와서 바라본 인버네스. 외곽엔 B&B로 가득차있다. B&B란 Bed & Breakfast로 영국에서 흔한 숙박업소 형태다. 일종의 민박이라고 보면 되고 주차공간도 제공하고 ensuite room이므로 가족단위로 온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고 싶어 다가가니 이미 닭둘기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옷(깃털)까지 훌훌 벗어던지고 배를 보이며 자고 있었다.. 아니 죽어있었다... -_-;
 


 몇시간을 걸었다. 경로를 정하고 간게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나오길 여러차례.. 언덕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언덕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안보였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났다. 저 사진의 하얀 상자(utility box일까?) 에 앉아있던 노인은 지나가는 나를 불러세웠다. 노인은 영어인지 게일어인지 알 수 없는 극악의 억양과 발음으로 뭐라 주절주절하는데 나에게 "~~~를 찾고 있는가."라고 묻더니 대답도 안들어보고 혼자 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는 ~~마일 밖에 떨어져있네." 하면서 지금 가는길로 가지 말고 오른쪽 옆길로 가란다. 정말 하나도 못알아들어서 그냥 알아듣는척 하고 가던 길 가려했더니 이 길이 아니라 옆길이란다;; 어쩔 수 반 강제로 옆길로 가게되었다.
 

 아무리 봐도 집만 몇채 있고 그 너머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인의 성화에 못이겨 계속 가보기로 했다. 
 


 숲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왔는데 하나는 더 위로 가는거고 하나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위로 가는 길을 보니 출입통제 마크가 붙어있고 폐가까지 있어서 갈 엄두가 안나 내려가려 했는데 노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노인에게 안들키고 내려갈 생각을 궁리하다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이 먼거리에서 날 찾은거지;; 

 그때 노인 앞으로 버스가 한대 지나쳤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노인은 없었다.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그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범상치 않았던 노인의 미소가 떠오른다.
...은 사실 버스타고 집에 감;;; 가서 축구봤을듯;;;

 아무튼, 노인의 매의 눈빛으로 내려가는 길을 저지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입금지 구역을 뚫고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끝없은 언덕을 넘고 넘었다. 노인이 뭘 알려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찾던 전망 좋은 언덕임은 확실했다. 마지막에는 온 힘을 향해 달렸는데 그 끝에는 아래와 같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나무의자. 앉아서 인버네스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왼쪽 사진이고 오른쪽으로 한참이나 풍경이 더 이어지는데, 참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앞에 보이는 바다는 다름아닌 북해다. 이 마을 가운데 흐르는 강은 그 유명한 네스호의 일부인데 네스호는 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있는 이 언덕 바로 뒤에 펼쳐져있다. 네시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려졌는데, 어릴적에 책에서 봤을 때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때는 세상이 온갖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먹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생기다보니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론 아쉬웠다. 진짜였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네스호는 인버네스에서 버스타면 정말 금방 갈 수 있는데 가진 않았다. 어차피 난 이미 네스호의 일부를 보고 있고, 네스호가도 봉제인형 하나 띄워두고 "이게 네시란다." 라고 할거 같아서 혼자 킥킥 웃기만 했다.
 


  바로뒤에는 검은 숲이 있었는데 얼마나 오싹한지, 숲 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오는 듯 했다. 한 번 들어가볼가 했는데 주위에 출입을 막기 위해 쳐져있는 펜스들도 있고,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포기했다. 앞에는 평화로움이, 뒤에는 으스스함이 있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몇 번이고 느끼는거지만 나는 자연이 좋다.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도 파리를 버리고 노르망디로 간 이유도 파리의 도시적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다시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 가운데에는 이처럼 폐가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폐가는 그냥 말그대로 버리고 가버려서 탈선의 장소로 이용된다던가, 범죄의 온상 등이 되고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있는 반면에 이 곳 폐가는 저렇게 철저하게 모든 문, 창문을 봉쇄해놔서 그런 것들을 사전에 방지해놨다. 



 인버네스에서는 외지인, 특히 유색인종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내가 갔던 방글라데시나 우리나라의 불과 10여년 전 모습처럼 외국인이 지나가면 "우워워워어 외국인이다!!"하며 오도방정을 떤다던가, 신기하게 쳐다본다던가 하는건 없지만 그대로 한 번씩은 쳐다본다.

 인버네스에서 나는 영어 못하는 중국인이 되었는데 스코틀랜드 하이랜더들의 반응은 사뭇 웃기면서도 황당했다. 하이킹을 하면서 주택가를 지나갔는데 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차 안에는 할머니 한 분이 타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갈 때 차 문을 급히 잠구는 것이 아닌가. 척! 하는 소리에 "저는 중국인 갱이 아닌데요;;"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좀 그랬다.

 
 하이킹 끝나고 돌아올 때 이미 6시가 넘어서 마트가 문을 닫아서 도미노 피자를 갔다. 도미노 피자에서도 알바의 말을 못알아들어서 정말 고생했다. 도대체 이게 정말 영어가 맞긴 한가. -_-; 도미노에서는 한판 사면 한판을 더 주는 1+1 행사를 하고 있길래 텍사스 bbq피자를 시켜서 룰루랄라 호스텔로 들고왔다. 그리고 열어주니 짜잔!! 젠장!! 누가 씬피자 달랬어..
 ㅠ_ㅠ 이건 도우가 하나도 없고 그냥 토핑만 있는 수준이었다.

 심슨가족 어느 에피소드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윌리가 시모어 교장의 계략에 속아넘어가서 이용당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You used me!" 하면서 울부짖는다. 이 장면이 생각해서 혼자 계속 킥킥댔다. 스코티쉬 놈들이 날 이용했어.. 흑ㅎ그..

 피자 나오길 기다리는데 10대 남자애 두명이 와 주문을 하고나서 날 보더니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네 학교에 중국인이 있는데 걔가 뭔가 사고를 쳐서 애들한테 두들겨 맞았다느니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_-;

 피자가게 오기전 언덕 주택가에서는 한 가족이 놀고있었는데 꼬마가 날 보더니 'chink'(중국인 비하하는 말.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는 짱개정도?) 가 지나간다고 소리쳤다. 애 부모가 날 힐끗 바라보는데 뭔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중국어 배워서 진짜 중국인인척 해야겠다.. 짱개라고 놀려대면 "아편 전쟁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빌어먹을놈들!"하면서 마구마구 때려주던가 해야겠다. ㅠ_ㅠ 

 호스텔에 도착하니 피로가 밀려왔다. 족히 6시간은 넘게 걸었다. 호스텔 직원은 스코틀랜드 억양.. 아니 발음의 절정을 보여줬는데 보증금 문제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니 나보고 "와워자나임?"이라 묻는다. 나임? 나인? 보증금이 10 파운드기 때문에 보증금 9파운드 맡겼냐는 질문인줄 알았고 10 파운드라 하니 다시 되묻는다. 생각해보니 나임이 아니라 name이었다.. -_-; What was your name? 나임과 네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발음. 

 그 날 밤엔 파티가 있었다. 덴마크산 칼츠버그 맥주가 페트병으로 제공되는 평범한 파티였는데 스코티쉬랑 스코틀랜드 영어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잉글랜드 사람들도 못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내가 영어를 못하는게 아니라고 조언해줬다. 스코틀랜드 영어는 게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종 단어도 다르게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아일랜드 사람들 발음은 더 이상한데, 발음만 이상한게 아니라 사람들 자체도 이상하다고 귀띔해주길래 한 때 아일랜드 역사에 빠져있었던 내겐 그냥 헛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이건 런던에서 일부 사실로 증명되었다.. -_-;
  
 잠자리에 들 때 문득 꽤 많은 '젊은' 한국 여행객들이, 호스텔이 아닌 한인 민박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차피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는 그들만의 문제라서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견문을 넓힌다는 견지에서 보면 한인 민박은.. 글쎄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 사람들과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해봐야되는거 아닐까. 뭐 그냥 가서 사진만 냅다찍고 "나 영국 갔다옴ㅋㅋㅋㅋㅋㅋ" 이러는게 목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그냥 그렇다.

 술기운 덕분에 늦잠 잘 줄 알았는데 왠걸, 새벽 5시에 깼다. 3시간도 못잤다. 하지만 첫 기차타고 에딘버러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길을 나섰다. 새벽 6시 47분. 인버에스에서 에딘버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1. 유럽 국가들이 맺은 국경 최소화 조약. 다른 나라로 넘어갈 때 출입국 검사를 안하는 이유가 이 조약때문이다. [본문으로]
  2. 고트족이 아니라 고스족.. 고스로리가 아니라 그냥 고스족이다.. -_-; [본문으로]
 토탈워 튜튼기사단 캠페인[각주:1]에서 신나게 리투아니아를 박살내다가[각주:2] '빌니우스[각주:3]'를 점령하면서 뭔가 생각이 났다. 분명히 이 도시에 대해 아는게 있었는데 뭐였지.. 하다가 생각난 것이 러시아에서 후퇴하던 프랑스군 유해 수천구가 2000년대 초반에 발견된 장소라는 것이었다.

 


 빌니우스에서 죽은 프랑스군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구덩이 한 곳에 모두 함께 버려졌다. 흔히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각주:4]의 습격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코사크 기병대는 추운 날씨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이용했는데 식량부족과 추위로 시달리던 프랑스군에겐 끔찍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빌니우스의 프랑스군 유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망자들 대다수는 전투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는 유골에서 뼈가 괴사했거나 부서지고 망가진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지나친 강행군과 추위, 배고픔때문이었다. 코사크 기병대는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에 숟가락만 살짝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군의 사상자가 엄청난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의 잠재적 가용자원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파리로 향하는 그 어느 길에서도 그들은 식량과 휴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유골들의 나이들을 추정해본 결과 대다수가 10대~20대 초반의청년들로 애국심에 불타 나폴레옹을 따라 러시아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나폴레옹은 파리로 돌아왔을 때 이들의 죽음을 축소하고 덮기 급급했다. 

 


 오랫동안 나폴레옹은 적어도 나에겐 영웅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 들어 그게 아닌거 같다. 왜 나폴레옹은 '멋진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니 시작은  애니메이션 '사랑의 학교[각주:5]'덕이었다. 아마 92~93년 사이 방영되었을거 같은데, 쾌걸 조로랑 비슷한 시기에 본 기억이 나니까 그쯤 일거다. '사랑의 학교'는 여러가지 훈훈한 이야기를 단편애니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거기서 나폴레옹 이야기가 나왔는데 매우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은 어릴 적에 가난해서 사과 사먹을 돈이 없어 가게 주변을 헤맸다. 이를 딱하게 여긴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나폴레옹에게 사과를 공짜로 주었다. 이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이 가게로 돌아와서 자기 얼굴이 박힌 금화를 쏟아부어줬다. 금화를 그냥 준게 아니라 부하들 시켜서 한 자루를 '쏟아부어' 준게 이 만화의 포인트였다. ㅋㅋ 찬란하게 빛나는 나폴레옹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들...



 이 만화의  교훈 바탕속에 황제 나폴레옹은 '훌륭한 인물'이라고 가정을 바닥에 깔려 있단 점을 생각해보면 왜 나폴레옹이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집에 있었던 위인전집에도 나폴레옹이 있었다. 고등학교때와 대학에서는 나폴레옹 평전이나 나폴레옹 전쟁사를 몇 번 읽었는데 아무래도 평전 자체가 업적을 기리는 면이 크다보니 그리 부정적인 생각이 안들었다. 자유세계의 수호자 나폴레옹이 맞는 말인가?

 하지만 히틀러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자꾸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겹치는 것이다. 공통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다른 국가를 침략했고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 영국과 러시아를 침략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되살리고 국민들을 일치단결시켰다.[각주:6]
  •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 반대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공통점만 보면 다를 바가 없다. 나폴레옹이 히틀러같은 악마로 평가될 이유도 없고, 히틀러가 나폴레옹같은 영웅으로 평가될 이유도 없다. 차이점이 현대의 평가를 설명해줄까?

 나폴레옹은 자기 스스로가 유능한 인재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히틀러의 경우, 히틀러가 유능했다기 보다는 유능한 부하들이 많았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부관들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기껏해야 미셸 네이[각주:7]나 뮈라[각주:8]정도를 대답하겠지만 히틀러의 부관들을 물으면 괴링,헤스,괴벨스,되니츠,롬멜 등 끊임없이 나온다. 

 나폴레옹은 유태인 등 소수 민족에 대한 제노사이드[각주:9]를 행하진 않았으나 히틀러는 그렇게 했다. 히틀러의 가장 큰 과오는 홀로코스트 범죄, 제노사이드인데 민간인을 대상으로한 전쟁범죄라는 점에서 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 어느쪽이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점에서 똑같다. 게다가 히틀러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단순 광기로 대학살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자본의 대다수를 소유하고 있던 유태인을 견제해야 됐기 때문이다[각주:10].

 대학살에 대해선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고개를 들 수 없는데, 히틀러의 제 3제국을 때려부순 뒤 팍스 아메리카나를 즐기고 있는 미국도 '운디느니 대학살'로 대표되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의 죄를 피할 수 없다. 가깝게는 우리나라 노근리 학살사건도 있지 않은가. 학살 한 번 안해본 나라가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월남에서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각주:11]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히틀러는 스페인을 공격하지 않고 프랑코[각주:12]와 손잡았지만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침략했다. 이 스페인 침략에 관한 그림 한 점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저지른 수 많은 전쟁 범죄를 응집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란시스코 고야[각주:13]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고야를 비롯한 전세계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이 왕정사회의 억압을 없애고 자유주의 세계[각주:14]를 만들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공화국 통령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다른 나라 민중들을 총칼로 억압했다. 고야는 이 그림을 나폴레옹 몰락을 축하하며 조국 스페인의 독립을 위해 피흘리며 싸운 수 많은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그렸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보나파르트 찬가 사본 악보를 찢어버렸다. 보나파르트 찬가가 바로 그 유명한 <영웅>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 독일은 극빈 국가였다. 1차대전 패전 이후 실업자들은 넘쳐났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난로용 나무 장작을 돈 주고 사는거 보고 나무 장작 값에 해당하는 돈을 불태우는게 더 효율적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히틀러는 30년대에 이르러 모두 해결했다. 앞서 이야기햇듯이 유태인,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도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결정적으로 히틀러는 군비 재확장 정책[각주:15]을 통해 독일을 전쟁 직전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들었다. 사족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킹스 스피치>를 단순한 상업영화로 보는 시각[각주:16]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나치 독일의 등장 시기 영국 왕실, 내각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꽤 정치적인 영화다. 조지 6세가 아닌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계속 유지했다면[각주:17] 2차대전은 어떤 양상으로 돌아갔을지는 예측하지 어려울 것이다. 체임벌린이 영국 왕실의 정치적 입장을 조율하면서 고뇌의 시간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영웅이었다. 미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프랑스 처녀 500여명을 강간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제 3 제국도 전쟁 범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피 숄(Sophie Scholl)[각주:18]과 같은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저항했으나 그 목소리를 울려퍼지지 않았다. 히틀러의 군대는 잘나갔고, 유럽을 정복하는 듯 했으나 결국 패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도 잘나갔고, 유럽을 정복하는 듯 했으나 결국 패했다. 둘 다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 같은 논의로 두 인물의 차이를 상당히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럼 결정적으로, 왜 히틀러는 악의 대명사, 나폴레옹은 평가가 혼재하지만 '영웅'으로도 묘사되는걸까?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나폴레옹은 19세기 사람이고 히틀러는 20세기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따라 연합(Association)강도가 약해진다는 심리학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이 그대로 숨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는 '정치가'라기 보다는 미치광이,사탄 쯤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수 많은 군인들, 간단하게 칭기즈칸의 예를 보자. 칭기즈칸의 군대는 저항하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고려를 자주독립국이 아닌 일개 번국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칭기즈칸을 고려를 침략한 악랄한 사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나라는 두 번의 호란을 통해 형제지의 국가 조선을 군신지의, 대청국속 조선으로 대표되는 수직적인 속국으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어느 출판물에도 "빌어먹을 청나라놈들!"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그 이후 조선의 북벌운동이나 북학파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일본의 식민 통치가 있는데, 지금도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은 좋지 못한 편이지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인들도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각주:19] 세대가 바뀌었고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경우도 현대 유태인이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위시로 한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한 각종 만행을 통해 (물론 일부 의견이긴 하지만) "그때 히틀러가 유태인을 쓸어버리지 못한게 안타깝다. 사악한 유태놈들!"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폴레옹의 평가는 다수의 긍적과 소수의 부정이 혼재하는 것이다. 요즘들어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평가는 후대가 한다는 말이 이렇게도 와닿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역사는 사람에 의해 쓰여지고 언제나 '승자의 역사'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평가가 언제나 '올바른' 평가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1. 미디블2 토탈워: 킹덤즈 [본문으로]
  2. 실제 역사에서 13세기 튜튼기사단(독일기사단)은 리투아니아 완전 점령에는 실패했다. [본문으로]
  3. 리투아니아의 수도. [본문으로]
  4. 15~18세기에 있었던 준 군사조직. 정규군은 아니다. [본문으로]
  5. 책 '사랑의 학교'와 일본 애니 '사랑의 학교 쿠오레'와는 관련이 없는거 같다. 내가 본건 뭐지? [본문으로]
  6. 프랑스는 혁명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대 프랑스 동맹이 수 차례 형성되어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일은 1차대전 패전 이후로 경제가 붕괴 국가 존립의 위기에 이르렀다. [본문으로]
  7. 프랑스의 장군. 직급은 원수. 나폴레옹 초기부터 마지막 워털루 까지 두루 참전했다. [본문으로]
  8.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 중 하나로 이탈리아 정복 후 나폴리 국왕이 되었다. [본문으로]
  9. 제노사이드는 민족이나 국민,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 등 특정 집단을 학살하는 대량학살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0. 알다시피 21세기 현재에도 세계 자본의 다수를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유태인이 수백년전부터 은행업이나 고리대금업 등 돈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였고 그게 계속 이어져내려오다 자본주의 시대를 만나 소위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본문으로]
  11.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전쟁 때 미군이나 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이유도 빨치산,북한군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본문으로]
  12. 너무나도 유명한 스페인의 독재자. 말년에는 정신차렸는지 '정상적으로' 살다가 죽었다. [본문으로]
  13.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 [본문으로]
  14. 나폴레옹이 자유주의 이념을 전파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폴레옹이 전파했다기 보단 대혁명이 전파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본문으로]
  15. 1차대전 패전 이후 군대 구성 등에 제약을 받았는데 이를 타계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다. 35년 르카르노 조약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 [본문으로]
  16.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그냥 재미로 보는 영화.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 메타포같은건 찾아 볼 수 없다. [본문으로]
  17. 에드워드 8세를 히틀러를 지지했고 미국인 이혼녀와의 사랑을 계속하기 위해 왕위를 내놓았다. [본문으로]
  18. 소피 숄은 독일의 대학생이었는데 오빠와 또래 청년들과 함께 (아마도)백장미단이었나? 반 나치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본문으로]
  19. 일본인들 대다수는 독도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관심이 없는 이유는 아예 그 문제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세탁하러 내려갔는데 이전 시간 예약한 사람[각주:1]이 세탁 돌려놓고 찾아가질 않았다. 이미 내 시간이 1시간 가량 흘렀데도 안찾아갔길래 깜빡했나 싶어 일단 세탁물을 꺼내고 내 껄 돌리는데 어디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세탁실 창문을 열어서 세탁실 전기를 끌어다가 바로 옆 잔디에서 라디오를 듣고 노는 애들이 있었다. 어떻게 세탁실 전기를 끌어갈 생각을 하지;; 

 한 시간동안 산책 좀 하고오니까 그 세탁물 안찾아 갔던 사람이 열심히 건조기에 자기 세탁물을 넣는 정말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는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었다. 내가 들어와서 hej 하는데도 당당하게 건조기를 쓰고있다. 건조기 안써서 필요없다고 하곤 올라왔는데 SDU 성님들[각주:2]이 아닌게 다행;; 아직 두 달 정도 남았지만, 이미 결론내린게 스웨덴 사람들 의식은 몇몇 부분에서 좀 꽝인듯..

 

  
 
  1. 세탁 예약시간은 세시간씩이다. [본문으로]
  2. 스웨덴 민주당 청년모임? 청년연합회? 청년동맹? 민주당 Youth 그룹인데, 스웨덴 민주당은 스웨덴 극우정당 중 하나. 일부 스웨덴 언론에선 나치즘 정당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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