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워 튜튼기사단 캠페인[각주:1]에서 신나게 리투아니아를 박살내다가[각주:2] '빌니우스[각주:3]'를 점령하면서 뭔가 생각이 났다. 분명히 이 도시에 대해 아는게 있었는데 뭐였지.. 하다가 생각난 것이 러시아에서 후퇴하던 프랑스군 유해 수천구가 2000년대 초반에 발견된 장소라는 것이었다.

 


 빌니우스에서 죽은 프랑스군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구덩이 한 곳에 모두 함께 버려졌다. 흔히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각주:4]의 습격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코사크 기병대는 추운 날씨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이용했는데 식량부족과 추위로 시달리던 프랑스군에겐 끔찍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빌니우스의 프랑스군 유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망자들 대다수는 전투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는 유골에서 뼈가 괴사했거나 부서지고 망가진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지나친 강행군과 추위, 배고픔때문이었다. 코사크 기병대는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에 숟가락만 살짝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군의 사상자가 엄청난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의 잠재적 가용자원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파리로 향하는 그 어느 길에서도 그들은 식량과 휴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유골들의 나이들을 추정해본 결과 대다수가 10대~20대 초반의청년들로 애국심에 불타 나폴레옹을 따라 러시아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나폴레옹은 파리로 돌아왔을 때 이들의 죽음을 축소하고 덮기 급급했다. 

 


 오랫동안 나폴레옹은 적어도 나에겐 영웅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 들어 그게 아닌거 같다. 왜 나폴레옹은 '멋진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니 시작은  애니메이션 '사랑의 학교[각주:5]'덕이었다. 아마 92~93년 사이 방영되었을거 같은데, 쾌걸 조로랑 비슷한 시기에 본 기억이 나니까 그쯤 일거다. '사랑의 학교'는 여러가지 훈훈한 이야기를 단편애니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거기서 나폴레옹 이야기가 나왔는데 매우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은 어릴 적에 가난해서 사과 사먹을 돈이 없어 가게 주변을 헤맸다. 이를 딱하게 여긴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나폴레옹에게 사과를 공짜로 주었다. 이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이 가게로 돌아와서 자기 얼굴이 박힌 금화를 쏟아부어줬다. 금화를 그냥 준게 아니라 부하들 시켜서 한 자루를 '쏟아부어' 준게 이 만화의 포인트였다. ㅋㅋ 찬란하게 빛나는 나폴레옹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들...



 이 만화의  교훈 바탕속에 황제 나폴레옹은 '훌륭한 인물'이라고 가정을 바닥에 깔려 있단 점을 생각해보면 왜 나폴레옹이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집에 있었던 위인전집에도 나폴레옹이 있었다. 고등학교때와 대학에서는 나폴레옹 평전이나 나폴레옹 전쟁사를 몇 번 읽었는데 아무래도 평전 자체가 업적을 기리는 면이 크다보니 그리 부정적인 생각이 안들었다. 자유세계의 수호자 나폴레옹이 맞는 말인가?

 하지만 히틀러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자꾸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겹치는 것이다. 공통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다른 국가를 침략했고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 영국과 러시아를 침략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되살리고 국민들을 일치단결시켰다.[각주:6]
  •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 반대세력을 모두 숙청했다.
공통점만 보면 다를 바가 없다. 나폴레옹이 히틀러같은 악마로 평가될 이유도 없고, 히틀러가 나폴레옹같은 영웅으로 평가될 이유도 없다. 차이점이 현대의 평가를 설명해줄까?

 나폴레옹은 자기 스스로가 유능한 인재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히틀러의 경우, 히틀러가 유능했다기 보다는 유능한 부하들이 많았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부관들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기껏해야 미셸 네이[각주:7]나 뮈라[각주:8]정도를 대답하겠지만 히틀러의 부관들을 물으면 괴링,헤스,괴벨스,되니츠,롬멜 등 끊임없이 나온다. 

 나폴레옹은 유태인 등 소수 민족에 대한 제노사이드[각주:9]를 행하진 않았으나 히틀러는 그렇게 했다. 히틀러의 가장 큰 과오는 홀로코스트 범죄, 제노사이드인데 민간인을 대상으로한 전쟁범죄라는 점에서 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 어느쪽이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점에서 똑같다. 게다가 히틀러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단순 광기로 대학살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자본의 대다수를 소유하고 있던 유태인을 견제해야 됐기 때문이다[각주:10].

 대학살에 대해선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고개를 들 수 없는데, 히틀러의 제 3제국을 때려부순 뒤 팍스 아메리카나를 즐기고 있는 미국도 '운디느니 대학살'로 대표되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의 죄를 피할 수 없다. 가깝게는 우리나라 노근리 학살사건도 있지 않은가. 학살 한 번 안해본 나라가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월남에서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각주:11]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히틀러는 스페인을 공격하지 않고 프랑코[각주:12]와 손잡았지만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침략했다. 이 스페인 침략에 관한 그림 한 점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저지른 수 많은 전쟁 범죄를 응집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란시스코 고야[각주:13]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고야를 비롯한 전세계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이 왕정사회의 억압을 없애고 자유주의 세계[각주:14]를 만들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공화국 통령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다른 나라 민중들을 총칼로 억압했다. 고야는 이 그림을 나폴레옹 몰락을 축하하며 조국 스페인의 독립을 위해 피흘리며 싸운 수 많은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그렸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보나파르트 찬가 사본 악보를 찢어버렸다. 보나파르트 찬가가 바로 그 유명한 <영웅>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 독일은 극빈 국가였다. 1차대전 패전 이후 실업자들은 넘쳐났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난로용 나무 장작을 돈 주고 사는거 보고 나무 장작 값에 해당하는 돈을 불태우는게 더 효율적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히틀러는 30년대에 이르러 모두 해결했다. 앞서 이야기햇듯이 유태인,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도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결정적으로 히틀러는 군비 재확장 정책[각주:15]을 통해 독일을 전쟁 직전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들었다. 사족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킹스 스피치>를 단순한 상업영화로 보는 시각[각주:16]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나치 독일의 등장 시기 영국 왕실, 내각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꽤 정치적인 영화다. 조지 6세가 아닌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계속 유지했다면[각주:17] 2차대전은 어떤 양상으로 돌아갔을지는 예측하지 어려울 것이다. 체임벌린이 영국 왕실의 정치적 입장을 조율하면서 고뇌의 시간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영웅이었다. 미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프랑스 처녀 500여명을 강간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제 3 제국도 전쟁 범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피 숄(Sophie Scholl)[각주:18]과 같은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저항했으나 그 목소리를 울려퍼지지 않았다. 히틀러의 군대는 잘나갔고, 유럽을 정복하는 듯 했으나 결국 패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도 잘나갔고, 유럽을 정복하는 듯 했으나 결국 패했다. 둘 다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 같은 논의로 두 인물의 차이를 상당히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럼 결정적으로, 왜 히틀러는 악의 대명사, 나폴레옹은 평가가 혼재하지만 '영웅'으로도 묘사되는걸까?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나폴레옹은 19세기 사람이고 히틀러는 20세기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따라 연합(Association)강도가 약해진다는 심리학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이 그대로 숨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는 '정치가'라기 보다는 미치광이,사탄 쯤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수 많은 군인들, 간단하게 칭기즈칸의 예를 보자. 칭기즈칸의 군대는 저항하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고려를 자주독립국이 아닌 일개 번국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칭기즈칸을 고려를 침략한 악랄한 사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나라는 두 번의 호란을 통해 형제지의 국가 조선을 군신지의, 대청국속 조선으로 대표되는 수직적인 속국으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어느 출판물에도 "빌어먹을 청나라놈들!"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그 이후 조선의 북벌운동이나 북학파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일본의 식민 통치가 있는데, 지금도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은 좋지 못한 편이지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인들도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각주:19] 세대가 바뀌었고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경우도 현대 유태인이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위시로 한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한 각종 만행을 통해 (물론 일부 의견이긴 하지만) "그때 히틀러가 유태인을 쓸어버리지 못한게 안타깝다. 사악한 유태놈들!"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폴레옹의 평가는 다수의 긍적과 소수의 부정이 혼재하는 것이다. 요즘들어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평가는 후대가 한다는 말이 이렇게도 와닿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역사는 사람에 의해 쓰여지고 언제나 '승자의 역사'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평가가 언제나 '올바른' 평가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1. 미디블2 토탈워: 킹덤즈 [본문으로]
  2. 실제 역사에서 13세기 튜튼기사단(독일기사단)은 리투아니아 완전 점령에는 실패했다. [본문으로]
  3. 리투아니아의 수도. [본문으로]
  4. 15~18세기에 있었던 준 군사조직. 정규군은 아니다. [본문으로]
  5. 책 '사랑의 학교'와 일본 애니 '사랑의 학교 쿠오레'와는 관련이 없는거 같다. 내가 본건 뭐지? [본문으로]
  6. 프랑스는 혁명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대 프랑스 동맹이 수 차례 형성되어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일은 1차대전 패전 이후로 경제가 붕괴 국가 존립의 위기에 이르렀다. [본문으로]
  7. 프랑스의 장군. 직급은 원수. 나폴레옹 초기부터 마지막 워털루 까지 두루 참전했다. [본문으로]
  8.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 중 하나로 이탈리아 정복 후 나폴리 국왕이 되었다. [본문으로]
  9. 제노사이드는 민족이나 국민,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 등 특정 집단을 학살하는 대량학살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0. 알다시피 21세기 현재에도 세계 자본의 다수를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유태인이 수백년전부터 은행업이나 고리대금업 등 돈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였고 그게 계속 이어져내려오다 자본주의 시대를 만나 소위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본문으로]
  11.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전쟁 때 미군이나 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이유도 빨치산,북한군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본문으로]
  12. 너무나도 유명한 스페인의 독재자. 말년에는 정신차렸는지 '정상적으로' 살다가 죽었다. [본문으로]
  13.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 [본문으로]
  14. 나폴레옹이 자유주의 이념을 전파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폴레옹이 전파했다기 보단 대혁명이 전파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본문으로]
  15. 1차대전 패전 이후 군대 구성 등에 제약을 받았는데 이를 타계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다. 35년 르카르노 조약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 [본문으로]
  16.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그냥 재미로 보는 영화.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 메타포같은건 찾아 볼 수 없다. [본문으로]
  17. 에드워드 8세를 히틀러를 지지했고 미국인 이혼녀와의 사랑을 계속하기 위해 왕위를 내놓았다. [본문으로]
  18. 소피 숄은 독일의 대학생이었는데 오빠와 또래 청년들과 함께 (아마도)백장미단이었나? 반 나치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본문으로]
  19. 일본인들 대다수는 독도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관심이 없는 이유는 아예 그 문제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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