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스웨덴을 배재한, 오직 교환학생 생활에 대해서만 적는다.
스웨덴에 관한 이야기는 http://skycrawlers.tistory.com/71
 


 교환학생되기

  나는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2억만리 떨어진 이국땅으로 떠나 밤마다 동쪽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고. 무슨 6,70년대도 아니고. 'ㅅ';
 일전에 짧게 언급했지만, 교환학생은 IELTS[각주:1] 시험 응시비[각주:2]가 아까워서 갔다. 새벽에 학점 4.5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교환학생이 사실 2.8만 넘으면 제로베이스라길래 충동적으로 시험 원서를 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엄청 후회를 하고[각주:3] 환불을 하려 했는데 시험이 일주일남아서 환불이 안됐다. 그래서 다급히 토렌트로 아이엘츠 시험문제 몇개 받아서 풀어보고[각주:4] 시험쳤더니 점수가 괜찮게 나왔고 면접을 봤는데,  늦잠자서 빨다가 덜 마른 옷 대충 걸쳐입고 땀에 푹 젖은 상태로 면접을 봤다. 그런데 면접이 3분만에 끝났고[각주:5] 어쨋든 1지망이었던 스웨덴에 합격했다. 교환학생 선발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그 3분의 짧은 시간내에 합/불자를 가릴만한 뭔가를 캐치해낼 수 있나?;

 3쿼터에 들었던 대학원 수업의 스웨덴인 몇이 "왜 스웨덴을 선택했나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솔직하게 유럽에서 인터넷이 제일 빨라서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근데 그게 사실이었다. 나라 지원할때 미국은 인터넷 느리다길래 없애고 유럽은 구글에서 인터넷속도 검색해서 스웨덴이 빠르다길래 선택했다. 하지만 스웨덴 인터넷 속도는 1mb/s이 최대속도고 총 수용량도 그게 전부라서 정말 답답했다. 아무튼, 그래서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교환학생 = 어학연수?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많은 교환학생들은 영미권을 선호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영어실력향상이었다. 예전에 한 번 언급했지만 교환학생 생활은 영어실력향상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거 같다. 공부와 생활은 실전이다. 교환학생은 어학연수가 아니기 때문에 곧바로 실전에 부딪혀야 한다.

 회화실력이 안되서 친구를 못사귀어서 외롭다, 한국가기싶다며 징징거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고, 심지어 중도귀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으로 가면 한인들이 정말 많은데, 외국인들과 못어울려서 결국 애국심과 한국어 실력을 키우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교환학생은 실전이고 외국인 학생들은 영어선생님이 아니다.


 교환학생 천태만상

 새내기때 한참 과행사를 불려다니던 어느 순간 깨닫게 된게 있었는데, 과행사에 나오는 선배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신입생 숫자는 100명이 넘는데 왜 이정도밖에 없는걸까.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지? 라는 의문의 해답은 교환학생에서도 통했다.

 외국인도 그냥 사람일뿐이고, 우리가 성격이 제각각이듯이 그들도 제각각이며 모두 사는 모습이 다르다. 그래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모습도 다르다. 모든 파티를 섭렵하는 파티광이 있고, 스웨덴 관련 교양으로 모든 것을 가득채운 스웨덴광, 전공과 프로젝트에 열중하는 공부광(?), 그리고 스웨덴에 머문 시간과 유럽여행을 한 시간이 거의 비등해보이는 동양인 그룹이 있다.  

 
서양 파티문화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파티는 별 게 아니다. 그냥 3인 이상이 모이면 파티다. "야 오늘 우리집에서 밥먹자." 해서 같이 밥먹어도 파티고, 같이 어디 놀러가도 파티고 고기 구워먹어도 파티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파티문화는 파티 문화라기 보다는 대도시 클럽 문화고, 좀 많이 퇴폐적으로, 영어식 표현으로 nasty한 부분만 들어왔다. [각주:6] 학생들이 여는 파티는 맥주 한 캔들고 돌아다니면서 수다떨고 음악에 가벼운 춤을 춘다던가 각종 게임을 즐기던가 하는 식이고, 그 누구도 야한 화장과 의상을 입고 서로의 엉덩이를 부벼대지 않는다.[각주:7] 그저 재미를 위해 컨셉을 잡아서 화와이언 파티면 하와이식 휴양지 복장을 입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파티를 가보면 파티에 오는 교환학생 구성이 거의 다 똑같은다는걸 알 수 있는데 오는 사람만 온다. 나는 4월 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파티에 가지 않았는데, 전공 공부가 빡센 것도 있지만 잠깐 대화하고 사라지는 인연의 연속인 파티 문화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깊은 이야기도 하고 좀 더 많이 친해지고 싶은데 파티 문화는 조금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는식이라서 수박 겉핡기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파티광이 아닌 다른 부류의 교환학생들은 얼굴 보기가 힘들다. 자기 수업만 듣고 아는 사람이랑 자주 만나기 때문인데 난 내가 여기에 교환학생을 왔으니, 정말 이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평범한 학생이 되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자연스레 수업시간에 만났던 애들이랑 놀게되고 베프도 생기고, 동네 친구들도 있어서 주말에 자주 같이 놀았다. 학점도 잘나왔고 여행도 몇 군데 갔으니 뭐 그리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애들중에 몇몇은 그 이후로 영 보이지 않길래 뭐하고 있나했더니 나처럼 같은 전공수업 듣는 애들끼리 놀고 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어서 왠지 모를 반가움도 들었다.

 마지막으론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게 중국인과 싱가폴인들인데, 우리학교에서도 중국애들은 중국애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노는데, 여기서도 그랬다. 딱히 외부세계와 교류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먹고 놀고 여행을 가는데 여행을 거의 두달넘게 갔으니 교환학생을 온건지 스웨덴을 베이스삼아 유럽여행을 온건지 모르겠다. 

교환학생 정체성 찾기

 교환학생 갔다와서 뭐가 기억에 남았냐고 물었을 때, 노르웨이 여행기에서 언급했던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 아이처럼 "스웨덴 사람들은 생김새가 달랐고 음식도 조금 다르게 먹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긴 싫었다. 어차피 교환학생 온 계기가 뭐였건 간에 컨셉-_-;을 '평범한 스웨덴의 학생' 으로 잡은 이상 스웨덴에 대해 모르고 돌아가는건 예의가 아닌거 같았다. 그래서 스웨덴어도 배우고 스웨덴 사회문화 과목도 듣고 도서관에서 스웨덴에 관련된 책도 읽었다. 스웨덴에 대한 TV뉴스도 보고 YouTube에서 관련 영상들도 찾아봤다. 정규 재학생이 아닌 스쳐가는 나그네인 교환학생이 할 수 있는것들 중에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귀국하기 몇일전에 스웨덴 기념품을 사러 대성당 근처 기념품가게에 들어갔는데, 날 관광온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아저씨를 유창한 스웨덴어로 물건을 구입해서 멋지게 한방 먹인 -_-; 기억은 꽤 유쾌했다. 이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랄까.

 다른 나라 친구들과의 교류도 중요한데, 위에서 언급한 중국인들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스웨덴에야 어차피 한국 사람이 거의 없기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겠지만, 미국으로 가면 한국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인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 여행할때 만났던 노팅험대학교의 교환학생 여자애는 1년동안 있었는데 한국인들이랑만 놀게됐다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데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먼저 다가가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각주:8] 

 나에겐 캐나다에서 온 단짝이 있었는데 3,4쿼터 모두 수업을 같이 들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맨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했는데 서로의 문화부터 시작해서 역사이야기,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같은 무거운 이야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다고 느꼈다. 정서적 교감만큼 따뜻한 일은 없다.

 다른 학교로 잠시 전학간 학생처럼, 새 친구를 사귀고, 새 환경에 적응하고, 공부하고, 놀고, 여행하고 돌아왔다.[각주:9]  거창한 그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환학생을 갈 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려는데, 그냥 끝무렵이 되면 어떤것이든지 무언가 얻는게 있다. 그게 진짜 별 거 아닌지, 대단한 교훈인지는 교환학생가서 뭘 하냐에 달린거고 결국에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 그 뻔한 말 '케바케'말이다. 
 
환상세계에서 나오기

 스웨덴에서 생활하는동안 걱정도 없고 행복하고 즐거웠다. 귀국해서 생활해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내가 한국에 놔두고 온 '현실'의 문제였고 그게 없는 스웨덴은 환상의 세계였다. 해가 길어지면서 내가 돌아가야할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결국 막바지에는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극장에서 영화보다가  잠시 화장실 갔다왔듯이, 내가 나의 인생극장에서 어디 쯤 자리에 앉아있었는지를 좌석 하나하나 살펴보며 되돌아볼 순간이 온 것이다. 나는 가운데에 있었나? 뒷자리에 있었나? 아니면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나?

 뭔가 기대하고 간것도 아니고, 이왕 가니까 학교다니면서 좀 쉬자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잠시 접어둔 현실을 더 상기시키는 일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던 스웨덴의 첫모습과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쓰러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날씨를 가진 여름이 생각나지만 돌아온 지금의 생활이 괴롭거나 그러진 않다. 오히려 한국이 더 좋아졌다. 반년가까이 한국음식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음식도 더 맛있다.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1. 영국영어시험. 토플은 미국영어시험. [본문으로]
  2. 30만원정도 한다. [본문으로]
  3. 새벽엔 사람이 뭔가 감성적으로 변한다. [본문으로]
  4. 작문이랑 스피킹 책은 따로 샀는데 하나도 안봐서 돈만 날렸다. -_-; [본문으로]
  5. 질문 요지는 이거다. "왜 가고 싶나?" [본문으로]
  6. 우린 정말 음악을 사랑해서 간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우리네 클럽이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유한다. [본문으로]
  7. 끈적한 파티는 대도시가면 볼 수 있다. 런던이나 파리나.. [본문으로]
  8. 아 물론 몇몇 있긴 하다. -_-; [본문으로]
  9. 외국 학생이나 우리나라 학생이나 학생은 학생일뿐이다. [본문으로]
 6월 6일 밤엔 비가 많이 왔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던 그 날 밤에 모든 정리를 끝내고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밖이 번쩍하고 빛나기 시작했다. 부화절 12시에 온 도시가 종소리와 폭죽소리로 뒤덮힌 것이 기억나 창문을 열어봤다. 부활절의 그 날 밤엔 번쩍거리는 불빛과 대공포탄 터지는 소리같은 불꽃놀이 소리에 웃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천둥번개 소리였다. 남쪽 하늘이 정말 '끝내주게' 흔들리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걸 보니 곧 이곳에도 닥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6시간 후에 짐을 끌고 역까지 가야되는데 비가 오는 모습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빗방울이 얼마나 굵고 거센지 온 동네가 다 쓸려나가는줄 알았다. 

 4시경에 일어나 밖을 보니[각주:1] 비가 온 흔적은 약간의 냉기뿐이고, 그 어디에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히 나서기 전에 슬리퍼를 버리러 쓰레기장에 갔는데 귀찮아서 문을 안잠그고 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아파트 현관을 열려면 열쇠가 있어야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 새벽에 세상에. 몇 십분을 밖에서 허비하다가 마침 지나가는 동네 청년 하나를 붙잡으니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의 출입코드[각주:2]를 알고 있어서 겨우 돌아갈 수 있었다. 

 진짜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는데 짐이 약 40kg정도됐다. 이걸 역까지 옮겨야되는데, 이민가방이 옛날것이라 그런지 바퀴가 작아서 사실상 바퀴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클로스터가든을 벗어나 중앙광장 근처까지 가는데 땀에 젖은 오징어가 된 줄 알았다. 넉넉잡아 1시간을 예상했는데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1시간 안에 이동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서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았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 근처 spoletop[각주:3]의 아파트 열쇠 반납함에 갔는데 급히 넣는다는게 손이 반납함 구멍에 걸려서 오른쪽 중지 손톱 절반이 찢어졌다. 출혈이 어찌나 심한지 이러다가 쇼크로 기절하는거 아닌가하는 엄살에 가까운 생각도 해봤다. 우역곡절 끝에 기차를 타서 공항에 도착하니 7시 20분. 비행시간이 8시 25분이니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체크인을 하는데 줄이 얼마나 긴지 도저히 제 시간에 체크인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안들어서 공항 직원한테 물어보니 티켓을 새로 사란다.. 아.. 덴마크.. 어쩜 그리도 무책임할 수가. 정말 당황해서 어떻게 해냐 물으니 자기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단다. 멍청한 덴마크놈들, 그러니까 스코네[각주:4]를 뺏기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쫓겨났지. -_- 

 체크인을 겨우하고 보안검색대를 가는데, 세상에.. 보안검색대 줄이 500m는 된다..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각주:5]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파이널콜[각주:6]이 울렸다. 죽어라고 뛰었다. 겨우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해서 네덜란드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인천행 대한항공 비행기 게이트쪽으로 가니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아, 한국어! 스웨덴에서 한국 사람과 이야기한게 다 합쳐서 30은 될까? 영어와 스웨덴어만 하고 살았는데.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대한항공 비행기 시설은 얼마나 감동적인지, 전면에 있는 HD화질의 스크린을 통해 수십가지의 영상물을 골라 볼 수 있었다. 음악도 앨범 째로 수십개가 들어가있고. 진짜 과학문명화의 최첨단을 달리는 우리나라다. 덕분에 비행시간 10시간동안 단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만 주구장창 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광의 깃발'과 '가을의 전설'[각주:7]이 고전영화란에 있길래 다시 봤다. 정말 '폭풍감동' ㅠ_ㅠ 

 직원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뭔가 부탁을 자주해도 항상 웃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외국 비행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절함이다. 나중에 또 외국에 장거리로 나가게 될때면, 가격이 크게 차이가 안난다면 국적기를 타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다고 느낀건 착륙 20분 전쯤이었는데, 기장이 착륙까지 20분이 남았다고 하자 몇몇 아줌마 아저씨들이 일어나서 주섬주섬 짐을 위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자판기에서 커피 뽑을 때 종이컵에 손대고 미리 기다리는거랑 똑같은 이치 아닐까. 이것도 한국 문화라면 문화겠지. 

 수화물을 찾는데 내 이민가방이 안나왔다. 안내데스크로 오란다. 가보니 네덜란드에서 내 짐이 안실려서 그 다음비행기로 오고있는데 택배로 보내준단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솔직히 고마웠다; 어차피 그거 들고 고향내려가야되는데 공짜로 택배를 보내준다니. 하아.. 고객만족 서비스 대한항공 위엄;;

 청량리에서 고향가는 기차에선 알람을 도착시간에 맞춰보고 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중간에 정말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시체처럼 잤다. 집에 돌아오니 낯설기보다는 그냥 어제도 여기 있었던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 한번도 외국에 나가지 않은것처럼. 

 시내에 자전거 타고 나갔다.  고맙다는 말을 해도 대꾸도 안하는 불친절한 자전거가게 아저씨, 인도위에 당당하게 주차해있는 SUV, 아무도 찾지않는 재래시장에서 농사지은 작물을 파는 할머니들과 죽어버린 지역경제까지. 아, 나는 돌아왔다.
 
  1. 여름이라 해가 4시에 이미 떠있다. [본문으로]
  2.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열쇠로 문을 열거나 출입코드를 입력해야되는데 학생들에게는 출입코드를 안알려줘서 몰랐다. [본문으로]
  3. ; 내가 안살아서 철자를 정확히 모르겠다. [본문으로]
  4. 말뫼,룬드가 속해있는 스웨덴 최남단 주(州). [본문으로]
  5. 지금 생각해보니 별거 아닌거 같은데 그 당시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본문으로]
  6. 비행기 이륙전 마지막 탑승 촉구 메시지 [본문으로]
  7. 브래드 피트가 멋있게 나오는 영화. -_-; [본문으로]
 계좌에 있던 돈도 모두 한국으로 송금하고 집 청소도 했다. 주방 청소하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여름이라 그런지 슬슬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3일. 아니, 7일 아침에 떠나니까 이틀 남았다. 오후엔 자전거로 룬드를 목적지 없이 떠돌아 다녔다. 사람들이 모두 휴가를 가서 대광장(Stortorget)을 벗어나면 아무도 없었다. 특히 학교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돌아가게되면 한동안 멍하게 있을거 같아서 미리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에 살면서 보고,듣고,느낀 것들 중 기록할만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적는다.
이 글에서는 교환학생 생활을 배재한 오직 스웨덴 그 자체에 대해서만 적는다.

 당연한게 당연한 나라

  한국에서 살면서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대표적인게 집이다. 내가 살고있는 스웨덴의 이 아파트는 방음이 정말 잘된다. 문이나 창문을 닫으면 문과 벽이 '흡착'된다는 느낌이다. 이 공간 안에 있으면 밖에서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웅얼웅얼거리는 정도다. 게다가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온다. 그리고 배수구로 물이 빠지고 화장실에 물이 고이지 않는다. 집 벽면 어느 곳을 둘러봐도 자로 잰듯이 정확하게 시공되어있고 마감도 철저하게 되어있다. 그 어떤 틈도 없다.  

 내가 살던 원룸들에선 방음이 안됐다. 처음 살았던 집은 음악을 틀고 1층에 내려가면 3층 내 방의 음악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모든 창문을 닫았는데 어디서 들어오는건지 모기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래서 집 안에 방충망을 치고 잠을 잤다. 
 두번째 집은 방음이 안되서 아예 내가 방음재료를 사서 공사를 했다. 하지만 이집은 뜨거운 물이 안나왔다. 겨울이 되면 보일러가 데운 물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인지 미지근한 물로 바꿔나왔다. 그리고 보일러의 열때문에 방 벽지와 천장 벽지가 부풀어올라 떨어지고 화장실엔 배수구쪽으로 높이 낮아져야되는데 역으로 오히려 높아져서 물이 항상 고여있었고 그곳에서 파리유충이 기생했다. 밖에선 바퀴벌레가 들어왔다.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건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 주거환경에서 기본적으로 당연하게 지켜져야할 것들이 안지켜지고 있다. 

 두 번째로 세금 문제다. 증세없는 무상복지를 실현하고 북유럽 복지를 한국에 도입하겠다는 모 정당 대표의 기사를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했다. 어쩜 이리도 현실을 모르고 있을까. 
 복지를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돈은 여러 경로로 벌 수 있지만 국가가 가장 크게 기대는건 세금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번 돈의 절반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세금을 낸 대가를 각종 복지 혜택으로 돌려받기 때문이다. 스웨덴어 교과서의 가장 충격적인 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제 직업은 연금수혜자입니다." 

 직업이 연금수혜자란다. 연금수혜자가 직업이 될 수도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번 돈을 정직하게 신고해서 세금을 납부한다. 그 돈으로 국가는 살림을 꾸려간다.
 초등학교 2학년때 읽었던 만화일기 시리즈 중 하나의 내용이 생각난다. 아줌마들끼리 대화하는 내용이었는데 "어머~ 요즘은 소득의 20%정도는 신고안하는게 보통이라고요. 의사나 변호사들 다 그렇게 해요. 호호. 괜히 나만 손해보고 살 순 없잖아요." 라고 말이다. 9살이었던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동대문의 옷가게나 용산의 전자제품 판매장엔 현금가/카드가가 따로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상인들은 고객들에게 "나는 탈세해서 좋고, 너는 싸게 구매해서 좋고. 어때? 거래하지 않겠나?" 라고 유혹한다. 장기적으로 나라를 병들게한다는건 개의치 않고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논리로 거래가 이뤄진다. 그리고 탈세를 감행한다.
 월급쟁이들은 탈세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소득신고를 누락시켜서 얼마든지 탈세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정직하게 소득신고를 하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너도나도 탈세를 하려하고, 학교 근처 식당에선 카드를 거부하는 상인과 학생이 실랑이를 벌인다. 이 현실을 알게됐을 때 참 많이 낙담했다.

 얼마전에 모 연예인이 트위터에 '바보같은' 질문을 하나 올렸다.
"회사 수입도 제 이름으로 잡혀서 소득신고가 되고 있는데 따로 신고해야되는거 아닌가요?" 라고. 이 회사 사장은 천재다. 법인세를 탈세하려고 소속 연예인의 개인소득세로 회사 수입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소속 연예인이 "우리회사 법인세 탈세해요!"라고 트윗을 해버렸으니 사장 얼굴색은 안봐도 뻔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번 만큼 정직하게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있다. 

 스웨덴에도 당연히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10억을 버는데 5억을 세금으로 내라니!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게다가 2007년에 폐지되었지만 그 전까지 있었던 부유세(Wealth tax)[각주:1]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꿀맛같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찾아 떠났다. 스위스 취리히는 유럽을 무대로 하는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이들의 행동에 포인트는, 그들은 법인세를 어떻게 하면 안낼까, 어떻게 하면 소득신고를 덜 할까..하고 머리를 굴리지 않고, 그냥 나라를 떠났다는 것이다.[각주:2]

 수평적 문화

 
문과대 연구원(포닥), 박사과정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연구 여건에 감탄했다. 이곳에는 연구원들에게 개인 연구실을 제공하고 박사 과정 학생들도 2인 1실을 사용한다. [각주:3]게다가 자녀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건물 지하엔 모유수유실과 아기놀이방도 있다. 연구원들은 포닥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연봉을 받고 일한다. 이런 '물질적' 여건보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건 수평적 문화였다. 우리나라, 미국, 그리고 유럽 몇몇 나라들.. 아니 그냥 전세계 대다수 나라라고 하자. 대다수 나라에선 교수의 권위가 하늘을 찌른다[각주:4]. 하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다.
 대다수 나라들에서 대학원이 장인-도제식 문화[각주:5]가 자리잡고 있다면 이곳에선 서로를 '동료'로 의식한다. 그 누구도 우리나라처럼 지도학생의 논문을 훔쳐서 학회에 먼저 발표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연구비를 사적으로 횡령하지 않는다.[각주:6]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면서 교수님께 궁금한걸 질문하러 서슴없이 찾아갔다. 교수님들은 언제나 친절하게 답해주셨고 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하루에 5,6번씩 찾아가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남녀관계도 수평적이다. 예전에 네이션 까페[각주:7]에서 만난 여자애와 데이트 비용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선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여자보다 더 많이 내야된다거나,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해와야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라고 했더니[각주:8]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몫을 내는건 당연한건데 그러지 않으면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모순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가 보다. 

 이곳 여자들은 씩씩하다. 나는 여자니까 이런건 못해,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파티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성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정체성을 거부한다.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경쟁보다는 협력

 
수평적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곳의 교육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 대학에선같이 수강하는 학생들이 내 경쟁상대가 아니다. 협력하고 함께 토의해야할 동료들이다. 왜냐하면 절대평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절대평가는 상대절대평가인데, 이곳에선 그렇지 않고 모두가 A+을 받을수도, 모두가 F를 받을 수도 있다. 

 
학점체계가 P/F이다. 실패한 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에선 낙제하면 한 달이나 두 달 후 재시험의 기회를 준다. 
 
 학점이 P/F이므로 당연히 텀 프로젝트나 팀플, 과제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이곳에선 프로젝트나 과제를 반드시 해내야한다. 못하면 F이다. 우리는 과제나 프로젝트가 어렵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거나 미완성인채로 제출하지만 이곳에선 그렇게 하면 낙제를 면할 수 가 없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조교나 교수님이 정말 끊임없이, 될 때까지 조언해주고 피드백을 해주기 때문이다[각주:9]. 단순히 학점을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과제나 프로젝트를 통해 해당 교과목의 지식을 머리속에 제대로 집어넣을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주는 것이다. 
 
 이는 초중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교육환경속에 성장한 사람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과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일기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시간에 철저하다. 하루 근로시간 8시간의 원칙. 노동 여건이 좋은 나라니까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걸 학생들도 지킨다. 오후 5시가 되면 학생들은 칼같이 집으로 간다. 오후 5시까지 페이스북을 하고 놀았던 공부에 열중했던, 어쨋든 5시가 되면 짐싸고 집에 간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밤늦게 까페나 집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표본의 대표값이라 할 수 있는 평균, 최빈값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밖으로 간다. 캠핑트레일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밖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낚시도 하고 트래킹도 한다. 파티를 열어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고, 젊은이들은 클럽에 가서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주말이 끝나면 다시 칼같이 일에 복귀한다. 

 직장과 가정, 평일과 주말이 혼재되어있는 우리와는 다른 생활이다.

 스웨덴의 고민

 
겉보기엔 문제없는 지상낙원으로 보인다. 노숙자,거지도 없고[각주:10] 사람들은 돈 욕심을 크게 내는것도 아니고 사회가 경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학 진학률은 절반도 안되고[각주:11] 국가는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은 성실히 일한다. 정치적 의사표현도 확실히 한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스웨덴의 고민이 한 눈에 보인다. 현재 스웨덴의 가장 큰 고민은 유럽 통합이후의 자리잡기다. 유럽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통합된 이후 어느 한 나라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 영향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유럽 경제가 불황을 맞이하자 스웨덴도 불황에 빠지게 되었고 복지 정책을 손질하게 됐다. 실업문제로 정부는 고민이 많다.

 국제 정치, 경제 문제를 배재한 스웨덴 국내의 문제로는 이민자 문제를 손꼽을 수 있다. 이민자 문제 역시 사실 스웨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유럽의 문제이다. 중동,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유럽에 들어와서 유럽의 가치에 순응하고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 내에 무슬림 공동체를 만들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각종 사회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대다수 나라들은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하고 노선을 선회했다. 스웨덴도 예외가 아닌다. 스웨덴은 작년 말 처음으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다른 유럽 국가는 모르겠는데, 스웨덴에선 반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하는 무슬림 단체와 이들의 추방을 원하는 보수단체간의 충돌이 잦다. 지난 4월에도 보수정당의 청년당원들과 무슬림 단체간의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무슬림으로 대표되는 이민자들이 이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는 것은 이곳에서 일주일만 지내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끼리 생활한다. 학교에서도 이민자들은 이민자들끼리 어울리고 스웨덴인들은 스웨덴인들끼리 어울린다.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경우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서로의 선을 그어놓고 있다.

 스웨덴인들 다수는 공교육을 통해 일정 수준의 교양을 가진 사람으로 양성되기 때문에 그냥 길가다가 지나가는 이민자를 두들겨 팬다던가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그런것을 부끄러워 한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의 의사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투표로 이야기하거나 정치 단체 시위를 통해 표출한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제3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 딱히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현재 다문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유럽과 정 반대의 노선이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과잉 민족주의 물은 빼야되지만 나중에 일어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되지 않을까.

종합적으로, 스웨덴의 국가적 고민이란건 사실 유럽 모두의 고민이기도 한거 같다.

 스웨덴의 배부른 고민

스웨덴 뉴스를 통해서, 스웨덴사회문화 수업을 통해서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은, 스웨덴의 지식인층이 고민하는건 상실된 공동체의 가치,평등,자유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내 눈에는 스웨덴은 공동체의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이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평등한 사회이며 자유가 보장된 곳이다.[각주:12] 스웨덴 지식인들[각주:13]도 이런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배부른 고민'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스웨덴의 평등과 자유는 완전하지 않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병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유난히 Gender studies같은 인문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젠더학(?)을 번역할 만한 적당한 어휘가 없는거 같은데,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연구라고 하기엔 꼭 이게 여성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페미니즘과는 좀 거리가 멀기도 하고.[각주:14]

 북유럽 국가들은 비슷한 가치들을 공유하는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접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수업시간에 본 다큐멘터리는 노르웨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인데 내용이 뭔고 하니 인구가 500명도 안되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것이다.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근래의 북유럽 사람들은 도시화가 가지고 오는 쓸쓸함과 차가움에 저런 옛 공동체의 삶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웨덴의 극문학이나 영화들도 평등의 가치를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적 가치를 넘어서 

 우리나라에서 흔히 외국이라 칭하면, 그 중에서도 서양이라고 칭하면 사람들은 미국을 떠올리고, 미국을 이야기한다. 유럽도 미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유럽은 분명히 다른 세계다. 유럽 내에서도 북유럽은 서유럽이나 동유럽과 정말 다른 곳이고, 북유럽중 국가들,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는 모두 다른 문화와 제도,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중국어를 사용한다던가, 중국이나 일본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화낼게 아니라, 바꿔생각하면 우리가 북유럽 국가들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믿고 있는것과 똑같은 이치다. 

 넓게는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과 유럽을 동일시하는건데, 분명히 미국과 유럽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을 바라보는 잣대와 미국인의 가치를 유럽에 적용시키는건 상당한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가치라는 것은 미국적 가치와는 180도 다른 그 무언가다. 

 이 사회에 살면서 나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미국문화 영향 아래에 있고, 미국의 정치 경제 모든 것들이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무조건 미국 것이 좋다, 미국이 최고다[각주:15]라는 식의 사고는 버려야할 악습이라고 본다. 

 학교에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답시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것저것 많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난 그게 글로벌 리더인지 아메리칸 리더인지 모르겠다. 진정한 글로벌 리더를 원한다면 세계에는 미국식 논리뿐만 아닌 유럽식 논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쳐줘야 하지 않을까.

 잘사는 스베리예[각주:16] 왕국

 
룬드는 도시 인구 7만, 교외 인구를 다 합쳐서 10만을 약간 웃도는 작은 곳이다. 이곳은 대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가 돌아간다. 회사가 있고 상업시설이 있고 공장도 있다.  각종 문화행사가 끊임없이 열리고 지역 신문에는 끊임없이 흥미로운 소식이 흘러나온다. 스웨덴 속의 작은 소국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다. 그냥 막연히 생각해보면 외부 세계와는 관련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중세시대 도시처럼 말이다.[각주:17] 

 
뉴스,신문을 통해서, 이 곳에서 살면서 본 스웨덴은 참 '건강한 나라'다. 그 누구의 얼굴에도 생존의 문제로 인한 걱정이 드리워지지 않아 보였다.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라는게 있다. 1단계는 생존의 욕구고 5단계는 자아실현이다. 4단계는 사회적 소통,상호 존중의 단계. 적어도 나의 눈에는 이 곳 사람들은 4,5단계에 몰려있는거 같다.

 건강한 사회의 기원은 제도도 한 몫도 하지만 결국에는 정치인이고 일반 시민이고, 그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서 나온다. 스웨덴인들의 시민의식 수준이 높다는건 인정해야 된다. 영국인이나 프랑스들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다.[각주:18] 도덕적 해이가 거의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이상적인 제도들도 잘 정착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우리나라 뉴스엔 끊임없는 사건사고 소식이 터져나온다. 지리산 둘레길에 방문자 수가 늘면서 쓰레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식 수준은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까진 경제수준에 비해선 낮다고 생각한다. 롬마 여행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산업화는 빨랐는데 의식수준은 그를 따라잡지 못한 문화지체 현상[각주:19]이 오랜 시간 나타나고 있다. 오래전부터 난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게 최선이라고 믿고있다.

그래서 결론은.. 

 
스웨덴은 듣던대로 잘살고, 이상적인 나라였다. 다만 그 부강함의 기원이나, 현 실태가 우리나라에 약간은 변형되고 왜곡되서 알려지고 있는게 안타까울 뿐이다.[각주:20] 스웨덴에서 보고 느낀 모든것들은 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하는 촉매가 되었다. 장래에 어떤 식으로 이곳의 경험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던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글에선  교환학생 생활에 대해 적겠다.

 
 



 
  1. 이걸 우리나라에 도입하겠다고 빵빵 소리 치는 모 정당이 있다. 바보같은 소리다. [본문으로]
  2. 이게 스웨덴 자본유출 문제의 핵심이다. 스웨덴이 최근 경제 문제에 봉착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3. 내가 들은 문과대가 그랬고, 공대도 연구실 찾아가니 박사과정 학생이 2인1실을 쓰고 있었다. 뭐 아닌 과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건 그랬다. [본문으로]
  4. 프랑스에선 교수의 권위가 그렇게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옛날 중세시대 대장장이 길드문화에서 유래 [본문으로]
  6. 물론 모두가 그런 사람이란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나라 학계에선 엄연히 일어나고 있다. 논문 훔치는건 인문학 쪽에서, 후자는 이공계쪽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본문으로]
  7. 학생 조합 일일까페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_-; [본문으로]
  8. "난 안그런데?"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믿고있는 '평균'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본문으로]
  9. 그 피드백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지만..;; [본문으로]
  10. 중동 출신 이민자들 중엔 더러 있다. 하지만 룬드에는 없다. [본문으로]
  11. 우리나라는 80년대가 넘어가는데 옆 나라 일본만 해도 50%가 안된다. [본문으로]
  12. 이는 객관적인 지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등지수,자유지수,행복지수 모두에서 3위안에 드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본문으로]
  13. 지식인이라 명시하는 이유는,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딱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간다. 단지 그 뿐이다. 어느나라나 똑같다. [본문으로]
  14. 무슨 의미인지는 추측해보길.. [본문으로]
  15. 사실 미국이 최고인 분야가 많기 많다. 특히 군사력은.. ㄷㄷ [본문으로]
  16. 스웨덴의 스웨덴어 표현.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는 Korea라고 안하고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고 하는거랑 같은거다. [본문으로]
  17. 물론 그때도 교역이 있었지만. [본문으로]
  18. 하지만 스웨덴인들은 교통신호를 잘 안지킨다. -_-; [본문으로]
  19. 갑자기 뜬금없이 고등학교 때 추억이 생각난다. 하아.. [본문으로]
  20. 특히 뜨거운 논쟁인 복지정책에 대해서.. 여야 정당 모두 바보들같다. 그리고 행복의 기원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안타깝다. 이들의 행복의 기원은 돈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다. 욕심없는 태도말이다. [본문으로]


 귀국을 코앞에 두고 스웨덴 관광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에, 계획만 세워놨던 Lomma 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로 왕복 3시간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롬마에는 북해의 숨을 잔뜩 머금고 있는 해변이 있다. 

 꽃이 만발하고 온 세상이 푸르게 변한 북유럽의 평야를 가로지르는 느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몽생미셸을 향해 노르망디를 가로질러 달리던 야간 라이딩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유학 생활 마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온은 20~25도 정도지만 바람이 시원하기 때문에 꿀같이 달콤한 날씨라고 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지 시간이 꽤 흐르기 전까진 오히려 춥게 느껴질 정도. 롬마로 가는길엔 룬드 남서쪽에 있는 예럽? 야럽? 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이 마을은 해변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으니 그냥 스킵했다. 


 재미있는 교통표지판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으니 시속 50km/h 밑으로 운행하시오.. 라던가 말타는 사람 그림에 빨간선을 그어놓은, '승마 금지구역' 표지판도 있었다. 



 표지판이 19세기에 만들어졌나.. 도대체 요즘 누가 말을 타고 다녀.. 라고 생각했는데 주위 농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기르고 있었다. -_-;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외지인이 거의 없는 북유럽 시골 한복판을 자전거로 가로지르는 일이 다시 생길까? 라는 생각을 해보니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어느새 도착한 롬마. kommun은 community다. 롬마 공동체.

 스웨덴의 특징이라면 오픈카가 흔하디 흔하다는건데 날씨가 좋으면 시내에 오픈카가 넘쳐 흐른다. 물론 그 비율은 5%도 안되지만, 한국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보인다. 특히 가는길에 본 30년대 쯤에 만들어진거 같은 고풍스런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를 봤는데 얼마나 멋있던지. 내가 오픈카 타본건 GTA같은 게임에서 뺏아 탄거 뿐인데;;



바다에 가까이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펼쳐진 바다.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렇게 평화로운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파도가 얼마나 잔잔한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는 조용히 춤을 추고 있었다.  



 수심이 얕기 때문에 멀리 가도 무릎까지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는 것도 특징.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건 이 바닷가가 멍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어디에도 '민박' 이라고 적힌 현수막이나 '보트타는데 5000원' 이라던가' 활어회 小 12000원..' 같은 문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저분하지가 않다는 의미다. 자연 그대로, 바다가 태초에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연인,친구들과 작은 행복을 만끽하러 온 이들로 그 숫자도 극히 미미해서 모래언덕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묘하고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평화로운지. 갈매기 소리와 잔잔한 파도소리, 물장난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해안 근처 아파트들도 상업시설이 아니라 정말 '거주'를 목적으로 한 아파트들이었다. 때가 묻지 않았다. 
 


 우리나라 도시 미관이 엉망이라는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건축에도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도시 미관이 좋지 못한 이유는 결국 사람이 많고,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보니 심미성이 아닌 '필요에 의한 건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해안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해변들은 얼마나 상업적인가. 돈..돈..돈. 하지만 그걸 비난한다던가 부끄럽게 생각할 순 없다. 서구 세계는 300년에 걸쳐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우리나라는 그걸 30년만에 이뤄냈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우리는 여전히 여유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에서 이제 슬슬 자아실현이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거 자체가 기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롬마의 모습과 한국을 비교해보면서 부러움과 조금의 아쉬움만을 느꼈다. 부끄러움이나 경멸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려는 작업들이 하나 둘 진행되고 있다는걸 알게 됐기 때문에[각주:1] 우리나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중에는' 돈이나 생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숨고르기 좋은 바닷가 하나 쯤은 생기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방파제 근처에는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이곳 낚시꾼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처럼 전문 장비를 가지고 낚시하는게 아니라 정말 낚시대에 미끼만 가지고 낚시를 즐긴다는 것이다. 아마 낚시 그 자체보다는 낚시를 하면서 오는 행복감이 더 좋기 때문이 아닐까. 

 저 멀리 말뫼가 보였다. 말뫼는 스웨덴 제 3의 도시로 인구가 70만명이다. 룬드는 10만명이 안된다. 말뫼는 다 죽어가는 도시였는데 2000년 외레순 다리가 건설되면서 되살아났다.  유럽 본토와 북유럽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현재 말뫼 인구의 1/3은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말뫼 재부흥의 중심엔 신흥 랜드마크 터닝 토르소가 있다. 위 사진 정중앙에 솓아있는 거대한 건물.
 


  200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사람의 몸(Torso)를 뒤튼 모양을 본따 만든 건물로 상업기능과 주거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현대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인 이 건물은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알다시피, 이곳 인구밀도나 인구수는 매우 적기 때문에 굳이 초고층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북유럽 4개국, 왼쪽부터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깃발 모양은 비슷한데 색깔만 달라서 그런지 4개가 하나의 연작처럼 조화롭다는 느낌을 준다.



 어느 꼬마들이 만든 모래성. 



 바닷가 바로 옆 아파트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이고, 이 아파트 너머엔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아름답다. 게임 심즈3에 울프씨 저택이 저런 유리로 뒤덮힌 주택인데, 실제로 직접 보니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근처 공원의 보드 타는 곳. 해변에 갈 때는 북유럽 문화를 거부하고 미국 문화를 잔뜩 흡수한 청소년들이 저스틴 비버 흉내를 내면서 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돌아갈 때 보니 집에 간건지, 텅 비어 있었다.
 


 롬마로 오가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했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든 생각을 정리하는데, 왜 그리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돌아갈 즈음 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1. 간판 정리 사업이나 디자인 서울 등.. [본문으로]
 내일부터 6일까지 스웨덴은 또 휴일이다. 6월 6일은 스웨덴의 국경일인데 그 기간까지 노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현충일이지만 스웨덴에서 6월 6일은 16세기 국왕 구스타프 바사가 칼마르 동맹을 해체시킨 영광스런 날이다. 사실상 현대 스웨덴의 기원을 이때부터라고 보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바사는 스웨덴인들의 영웅 중 하나인데, 스웨덴어 선생님도 '구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구스타프 바사가 덴마크에서 목재를 '뺏아와' -_-; 스코네 렌에 수많은 건물을 지은 이야기를 자랑스레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날은 1803년에 스웨덴 의회정치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나라들의 국경일은 세계2차대전 전후의 역사와 관련되어있기 마련인데, 독립기념일이나 승전기념일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도 스웨덴인들의 자부심 중 하나다.

 광장엔 세계음식문화제 부스를 모두 철거되고 또 다른 축제 부스들이 하나 둘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대성당에서 여러 유명 인사들의 '좋은 말씀'이 끝나고 공연할 합창단이 미리 도착해서 광장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인기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학교에서 데이빗과 미리 만나 시험 막바지 공부를 같이하고 시험을 쳤다. 2시간 30분쯤 지나니 시험이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건물 위 채광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너무 따스해서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잠시 몽상에 빠졌다. 그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건물 천장을 유리로 만든게 아니라 건물 천장 중간에 높이를 약간 올려서 그 높이만큼을 창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드넓은 시험장 그 어느곳도, 창문이 없어도 햇볕을 쬘 수 있다. 멋진 아이디어다. 

 집에 와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뭐, 하루 이틀 지나면 슬슬 실감이 나지 않을까.
 

  
 을 가장한 5월 28일 토요일 이야기. 아침에 정보이론 시험을 치러 갔다. 마음을 비우고 전날 저녁에 공부를 안했는데, 뭔가 초조해서 그런것도 있고 기출문제 풀어보니까 할만한거 같아서[각주:1] 그냥 놀았다.

 거의 모든 공대 시험은 MA 빌딩에서 치뤄지는데 건물 전체가 시험장이다. 그러니까 들어가면 시험용 책상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광장이다. 이곳에서 동시에 여러과목의 시험이 진행된다. MA 빌딩은 M huset Appendix였나? 부속 건물같은건데, M huset 옆에 붙어있다. 별관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미군 신병훈련소 교관같은 교수님의 얼굴을 보곤 다가가서 시험보러 왔다고 해서 자리에 앉았다. 이름을 쓰고 출석부를 기입하고 ID검사를 한 후 시험을 치루기 시작했다. 
 시험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총 5시간이다. 스웨덴어 배울 때 친하게 지내던 양키랑 시험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도 5시간이나 되는 시험시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경우인거 같다. 걔 말로는 스웨덴 시험제도는 Amazing하다고 했는데, 그 '놀라운' 경우를 드디어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계산기가 허용되는데 계산기가 없는 관계로 손계산을 했다. 바이너리 로그를 외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로그표를 보고 log2~log10까지 적어갔다. 그리고 문제 풀이 시작.
 1번을 보는데 숨이 턱 막혔다. 원래 1번 문제는 그냥 점수 주려고 엔트로피 구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갑자기 미지수 K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꼬여있었다. 
 방정식을 이용하면 K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 다음부턴 수월하게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계산기가 없어서 계산 실수를 할까봐 너무 걱정이 됐다. 고등학교 때 수능공부할 때 항상 계산 실수가 문제였는데 결국 수능에서도 계산 실수로 4점짜리를 날려버렸다. 
 이번엔 분수꼴과 로그를 모두 0.xx 꼴로 표현해야되서 끝없는 곱셈의 연속이 이어졌고, 그 덕에 더욱 더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1번 문제를 헤치우고 2번으로 넘어가니 허프만코드문제였다. 역시나 이것도 꼬아놔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1번은 안그랬는데 2번문제부터 답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론 4문제 푸는데 13장을 썼다. 3번 문제는 channel capacity, 4번 문제는 가우시안 함수를 이용한 typical sequence 증명 문제였다. 아, differential entropy도 섞여있고. 5번 문제는 문제의 사이즈만 보고 그냥 포기했다. 만약에 내가 푼 4문제가 모두 정답이면 40점을 얻고, optional home exercise로 얻은 1점을 얻어서 41점. 그럼 내 학점은 5(VG,A+)가 된다. 

 시험이 끝날 때 보니, 나도 몰랐는데 3시간 30분이나 지나있었다. 괜히 5시간 준게 아니구나 싶었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오는데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토요일 오전의 나른한 봄기운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면 좋았겠지만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좀 추웠다. 

 아무튼, 집에 오는 길에 마을 광장에 보니 지난주에 했던 스웨덴 룬드 문화 한마당 -_-; 행사가 아직도 끝이 안났는지, 각국 요리 부스가 아직도 있었다. 내려서 살펴보니 신기한걸 많이 판다. 

 


 독일 부스는 소시지 구이같은 걸 팔았는데 그냥 스킵하고 이탈리아 부스로 갔다. 여기에는 술인지 기름인지, 저 사진 속 병에 들어있는 액체의 원료가 되는 과일(일까?)을 진열해놨는데, 도대체 뭔지 모르니까 애석하기만 했다. 
 


 이탈리아 치즈도 같이 팔고 있었는데, 마트에서 파는 치즈와 비교하면 뭔가 외관이 거무티티하면서 더 발효가 된게 뭔가 더 비리면서 쫀득할거 같았다. 치즈 가격은 한덩이에 1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거의 사먹질 못했고, 이번에도 역시 스킵.
 


 영국 과자 부스. 멀리서 지나갈때 영국 유니어잭을 봤을 때 영국 음식이란게 없는데 도대체 뭘 판다는건가 궁금했는데 역시나 음식이 아니라 과자였다. 과자라기 보다는 초콜릿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한데, 먹어보면 또 초콜릿은 아니다. 그냥 영어 단어 그대로 Sweets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거의 30종류가 되는 Sweets들이 진열되어있어서 도저히 안살 수가 없었다. 

 주워담으면서 저 위쪽 동네 어딘가에서 교환학생 생활하고 있는 다른 한국 여자애가 이걸 봤으면 블로그에 뭐라 썼을 지를 상상해보니 그 요란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집에 가져와서 찍은 Sweets들. 맛있다! 정말 맛있다! 단점은 좀 흐물흐물해서 식감이 별로라는점.


 뭔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데 어찌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만 우글거리길래 무대에 쓰여있는 글씨를 읽어보니 뒤에 skolan이라 적혀있었다. 학교라는 뜻. 그렇다면 학예회 발표겠구나! 라고 추측하고 광장을 돌아보니 역시나 악기를 들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나중에 지역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학예회(?)가 맞았다. 악기도 연주하고 춤도 추고 그랬단다. 사진은 신문사에서 퍼온 그 날 축제 이미지. 제대로 엘프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듯.
 여담으로, 영국을 가보고 느낀건데 북유럽인들은 인종적 특성인지 식문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참 말랐다. 비만인구를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키가 크고 늘씬해서 스키니진을 입고 가는걸 보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국에 가면 남자고 여자고 갑자기 덩치가 불어나더니 비만인구가 급증하는데, 정말 서양사람 비만은 스케일이 다른거 같다. 몸무게가 거의 200kg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영국에 유독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렇지? 왜일까? 도대체 왜. 

  


  1. 어차피 우리학교에서 교환학생 학점 인정받으면 평점계산에는 안들어가기 때문에 Pass만 받으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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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 심판의 날은 28일이었는데 미디어처리 교수님의 따스한 배려로 6월 1일로 연기됐다. 그래서 내일 정보이론 시험보고 1일날 미디어처리 시험보면 시험 끝.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다수 학교들이 절대평가를 해도 절대평가가 진짜 절대평가가 아니라 절대상대평가를 한다. 그러니까 대충 점수 분포를 보고 어느선에서 성적 컷을 임의로 정하는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선 그렇지 않고 진짜 절대 평가를 실시한다.

 내가 들었던 인지과학 대학원 수업은 25점 만점에 12점 이상부터 G(Pass)고 20점이었던가.. 아마 그쯤 넘으면 VG(Pass with distinction)였다. 12점 미만은 U(Fail). 이공계 학부시험은 50점 만점에 20~29점 3, 30~39점 4, 40~50점 5 이렇게 성적을 매기는데 3이 G고 4,5는 VG를 세분화 한거라고 보면 될거 같다. 공대 시험은 한 문제 10점 배점으로 총 5문제가 나오니까 2문제만 맞춰도 Pass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기출문제가 제공되고, 연습문제나 예제랑 거의 똑같이 나온다. 게다가 오픈북이다!! 그럼 전부다 패스겠네.. 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왜냐면 연습문제 자체가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저히 솔루션을 봐도 "이게 뭔 소리야.." 라고 멍때리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곳 학생들의 평균 Pass율이 70%정도 되는데 절대평가인데 이정도면 정말 환상적인 비율이다. 우리나라 상대평가에서 B이상이 70%니까 뭐 엇비슷한듯.

 기출 문제까지 쫙 풀고나니 뭔가 10%가량 부족한거 같은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공부가 안됐다. 미디어처리도 해야되는데 결국 GG.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유투브에서 뭐 링크따라 가다가 영드 레벨하트가 업로드되어 있다는걸 알게 됐다. 그토록 찾았는데 여기 있었구나. 레벨하트는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BBC 드라마인데 중학교때 케이블에서 봤었다. 

 고등학교땐 무슨 계기였는지 모르겠는데 아일랜드 공화주의와 민족주의에 빠져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아일랜드 근현대사 책 비치시키려고 얼마나 로비를 했는데.. ㅋㅋ 결국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시키는데 성공했는데 책이 좀 낚시성이 강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유투브에서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 항상 사람들이 댓글 전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그리스-터키 라던가, 아일랜드나 ETA, PLO같은걸 찾아보는데 재미있다. '브레이브하트'[각주:1] 관련 영상 밑엔 스코티쉬랑 잉글리쉬가 죽어라고 싸우고 있고 '패트리어트'[각주:2] 영상을 보면 영국애들이랑 미국애들이랑 치고박고 난리다. 멜 깁슨은 분쟁영화 전문인가[각주:3];; 스웨덴이랑 덴마크가 치고박던 시절 자료 찾아보면 또 서로 물어뜯고 난리. 역시 이웃끼리 한 번도 안싸워본 나라는 거의 없는거 같다. 

 결국 오전에 공부 잠깐 하고 아무것도 안했다. 야호. 오픈북에 시험시간이 5시간이니까 부족한건 시험시간에 공부해볼까. ㅋㅋㅋ 거의 2주동안 시험공부한다고 죽어나가고 있는데 교양만 수강하는 다른 교환학생들이 뭔가 부럽기도 하다. 여기서 만난 애들한테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이 텀프로젝트 했단다. 아 이공계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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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턴 일기가 아닌 그냥 잡담

 돌아간다니까 뭔가 불안하면서(좀 많이;;) 홀가분한데, 이 맛있는 스웨덴 godis(초콜릿이나 사탕같은 단것) 들을 못먹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돌아갈 때 좀 많이 사가야지. 아이스크림도 진짜 맛있는데. 하나씩 사면 비싸기 때문에 대량으로 판매하는것만 사서 먹는데 한국에선 맛볼 수 없는 오묘한 맛을 가진 것들이 많다. 

 요새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모집하는 시즌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학교에서 설명회를 열심히 하고 있다. 경쟁률 올라가는 소리가 이억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들려오는거 같다. 봉사단 되기가 지금 생각하면 생각보다는 쉬운거 같기도 하다. 왜냐면 '이상한' 지원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지원동기란에 '방학에 집에서 놀지말라고 엄마가 가래서 지원하게 됐다.' 라고 쓴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그래서 서류는 적당히 90년대식 한국 민족주의 냄새나는 문구들을 섞어가며 애국심에 뜨거운 눈물을 콸콸 흐르게 쓰면되지 않을까.(물론 '적절히' 써야된다.)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면접 팁이라면 '나대지마라' 라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거 같다. 면접보러오는데 태권도복입고 한복입고 가야금들고 꽹과리 북치고 면접관 앞에서 상모돌리는 사람들 진짜 빵 터진다. ㅋㅋㅋ 정장입고 가는것도 좀 웃긴거 같고. 그냥 단정하게만 입고가서 조리있게 말만 잘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 외 요소는 그냥 눈요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거 같다. 


  
  1.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 [본문으로]
  2. 미국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 [본문으로]
  3. 브레이브하트, 패트리어트 모두 멜 깁슨이 만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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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파란색'의 이미지로 물들어있는 90년대 어느날인가 우리나라 애들이 김치를 먹기 싫어하듯이 서양 애들은 브로콜리 먹기를 그렇게 싫어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한국에서 브로콜리 소비량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집에선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가 만들어준 식단에 단 한 번도 브로콜리가 등장하지 않은 관계로, 일반적으론 잘 안먹는다고 생각된다.[각주:1] 
 

 하지만 여기 스웨덴에서 브로콜리는 '북유럽의_흔한_채소.jpg' 같은 인터넷 유머식 제목으로도 표현이 가능한 거 같다. 뭐랄까, 그냥 야채. 그냥 야채다. 그냥 밥먹을때 흔히 볼 수 있는 야채 중 하나? 딱 그정도. 우리나라에선 그 존재 자체도 몰랐었는데,


 여긴 브로콜리의 변형[각주:2]인 하얀 브로콜리도 있다. 이름은 콜리플라워. 브로콜리보다 영양소가 더 풍부하다고 하는데, 풍부한 영양소만큼 가격도 비싸다. 브로콜리 가격이 3천원인가 4천원인가 하는거 같은데[각주:3] 이 하얀 브로콜리는 거의 8~9천원 가까이 하길래 도저히 살 엄두가 안난다. 

 브로콜리는 저칼로리에 부피가 크기 때문에 식사양 뻥튀기를 할 때 참 유용하다. 그래서 야채볶음 만들때 자주 쓰는데, 뿌리(인가 줄기인가)부분은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따로 물에 삶아야 먹을만 하다. 

 음... 뭐지.. 브로콜리 이야기하려고 한게 아닌데 -_-; 젠장.. 늦었으니까 그냥 자야겠다.

일기 요약: 미디어처리 시험공부가 힘들어요. 함수 '빙그르'는 마약하고 만든 노래인듯 하다.
날씨가 춥다. 브로콜리 좋아요. 많이 드세요. 

 
  1. 우리집 식단이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식단이라고 생각하니까. [본문으로]
  2. 사실 브로콜리도 양배추의 변종이라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3. 장보고 나면 그냥 한번에 계산하니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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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월요일. 음식재료가 남았는지 아직도 철수안한 국제 음식 한마당 -_-; 을 지나, 학교를 가니 잔디밭에 여자애들이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 이 컬처 쇼크. 이것이 바로 선진국의 위엄인가;; 

 E huset 지하엔 텀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미디어처리 같이 들었던 애도 있었다. 얘는 페북으로 채팅만 주구장창하면서 수업시간을 떼우는데, 어차피 출첵도 안하는 과목을 저럴거면 왜 들어올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역시나 텀도 이제서야 시작했는데 과연 5일안에 3차나 되는 텀을 다 끝낼 수 있을까? 그럼 시험공부는 언제하지? 이걸 물어보니까 U(우리나라의 F) 뜨면 8월에 있는 재시험 볼거란다. 아아.. 이 나라는 재시험제도가 있었지. 이런 영악한놈; 
  


 조교한테 모르는거 물으러 갔다오면서 매번 지나가던 진열장을 봤다. 핑크팬더..


 LTH의 공식적인 상징은 핑크팬더가 아니다. 하지만 비공식으론 핑크 팬더인듯.  지하에 있는 수많은 핑크팬더 관련 물품들과 건물 내부 곳곳에 있는 (특히 카페테리아쪽) 핑크팬더 장식. 가장 결정타는 건물 정면 상단부에 왕관을 쓴 거대한 핑크팬더 문양이 그려져있다. 그러니까 아주 저 멀리서 학교로 들어오면 E huset건물을 보면 건물 정중앙에 거대한 핑크팬더 그림이 그려져있다. E 라는 건물이름 문양 바로옆에 아주 당당하게! 
 


 핑크 팬더는 엄연히 상업목적의 캐릭터이고 스웨덴산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걸까. 찾아보니 컴퓨터 전공 학생조합인 D-guild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럼 학교측은 학생들이 건물 전체를 핑크팬더화 시키는걸 용인해줬다는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허락해준 학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컬처 쇼크다. 우리학교 본관에 거대한 핑크팬더 그림을 그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아마 난리가 날거다. 

 세계화와 다원화 때문에 그 나라 고유의 문화색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식으로 뭔가 소소하게 다른걸 보는게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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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강했다. 끝. 끝. 끝! 시험 빼고 공식적인 일정 종료. 뭔가 후련하면서도 아쉽다. 실감도 안나고. 사실 lth쪽 수업은 뭔가 인간미(?)가 없어서 내심 일찍 끝나길 바랬다.

 수업 끝날때즈음에 데이빗이 얼굴에 피멍이 든채로 왔는데 머리가 완전히 찢어졌었다. 놀라서 물어보니 이틀전에 울타리를 점프해서 넘다가 발끝이 걸려서 머리를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에 박아버렸단다. -_-; 그래서 이마가 완전히 찢어지고 팔꿈치뼈도 부러지고 손도 찢겨졌다는데 그 때 충격으로 눈주위가 팬더처럼 완전히 피멍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던가, 영어시간 끝나고 친구들이랑 장난치다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박아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충격으로 한 쪽 눈이 팬더처럼 멍이 들고 부어올라서 거의 몇주동안 고개도 제대로 못들고 다녔었다. 초등학생들 수준이 알다시피 똥오줌도 못가리는 애들이 많아서 놀림의 대상이 됐었다.

 아무튼, 앰뷸런스 타고 룬드대학병원까지 실려갔다는데 응급처치비용이 우리돈으로 60만원이고 몇 번 의사를 더 방문했는데 한번 갈때마다 거의 40~50만원씩 나간단다. 어차피 보험이 있기때문에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지만, 내가 전에 관세사건때문에 보건소 진료비용보고 진료를 포기한것처럼, 진짜 저정도 금액이 빠져나가는걸 보면 눈에서 피눈물 나는 심정이다. 

 만약에 통장에 충분한 잔고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응급처치 못받고 죽어야 하나;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도 사고나서 병원갔더니 몇백만원씩 청구되는걸 보고 경악했다는걸 미수다에서 언젠간 본 적이 있다. 역시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 살때는 그저 건강하게 지내는게 최선인거 같다. 

 물론 스웨덴에서 풀타임으로 직장에서 일하거나 공부한다면 주민등록증이 나오니까 그때부턴 스웨덴의 거의 모든 복지제도를 누릴 수 있으니까 예외. 교환학생들과 불법체류자들만 불쌍하게 됐다.

 21일에 룬드 문화대축제(번역하니까 정감가고 좋네;)가 열리는데 도시 중광엔 벌써 각국의 요리 부스가 설치되어있었다. 이탈리아부스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정말 이탈리아 사람일까. Ezio auditore를 아냐고 물으면 당연히 모르겠지;;

 학교도 축제시즌인데 인문계는 딱히 캠퍼스란게 없어서 뭔가 하는게 없는거 같고, 공대는 캠퍼스가 있어서 여러가지 부스 행사를 한다. lth에는 조그마한 연못 몇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워터보드(?) 시설을 설치해놨다. 재미있겠다. 근데 시험기간이니까 딴 나라 이야기.

 그러고보니 룬드 축제는 도시 행사니까 그렇다치고, 학교 축제는 기말고사가 일주일 남았는데 하는 이유가 뭘까... 잘 이해가 안가는 문화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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