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드를 보러 겨울에 갈지 여름에 갈 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나에겐 대항해시대와 모로윈드의 노드족 덕택에 노르웨이 = 겨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봄의 유럽은 이글스 네스트가 있기 때문에. 'ㅅ' =3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수업은 영화 수업이었는데 역시 예술은 나와 거리가 먼 듯 하다. 예술가의 선입견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섬세한 터치와 우아한 목소리의 교수님은 수업내내 영상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대중적인 핀란드 영화 '과거없는 남자'는 분명 집에서 나 혼자서 직접 찾아봤다면 재미있었겠지만 이미 앞부분 수업에 질려버려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 

 집에서 어물쩡대다가 스웨덴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까지 한시간 가량 남았는데, 체크인부터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은 대개 셀프 체크인을 이용한다. 내가 이용한 노르웨이 항공은 예약번호만 입력하면 항공권이 발권되어 나왔는데, 예약번호만으로 발급이 가능한건 조금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 싶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을 먹고 남의 항공권을 가져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렇게 비생산적인 일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 그래서 굳이 보안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았나 보다.

 코펜하겐 공항 환전소에서 덴마크 돈을 모두 노르웨이 크로나로 바꿨다. 그렇게 비싸보이던 덴마크 크로나도 노르웨이 크로나 앞에선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노르웨이에 도착한 후에노르웨이 물가에 경악하기 위한 전초전이랄까.

 저가항공은 처음 이용해보았는데, 그냥 여타 항공 서비스와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단지 기내식이 유료라는 정도? 단지 그것 뿐이었다. 약 80~90분간의 비행(아마도..) 끝에 베르겐에 도착했다. 베르겐의 첫 인상은 분명 스웨덴이나 덴마크와는 다른 고지대라는 것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 굽이굽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내일 해가 떴을 때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르켄 게스트하우스는 저가의 유스호스텔인데, 호스텔 이용이 처음인 나는 서비스의 질이 어느 정도일지 그저 궁금하기만 했다. 결과는 대 만족. 역시 소득수준이 나라는 저가라도 어느정도의 최저 급이란게 존재하는 듯 하다. 한 방에 4~6명 정도 자는걸 빼곤 시설은 매우 좋았다. 다만 비누가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가져간 비누가 요긴하게 쓰였고, 샴푸도 있긴 있었는데 과연 공용 샴푸였을까 다른 사람의 샴푸였을까.. 확신이 안섰다. 샴푸는 있는데 비누가 없는건 또 이상하고. 어쨋든 편하게 하룻 밤을 보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냥 대략적인 일정만을 가지고 출바했던 나는 아침 9시가 조금 못되어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보스로 향하는 기차가 10시 28분이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어느 후기에선 8시라고 했던 기억이 났는데, 뭐 그냥 조금 늦게 가게 된느거겠지.. 하고 말았다.

 분명 도시 어딘가에 전망대가 있을텐데 그냥 대충 아무 고지나 찾아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흡사 안암동을 연상케 했지만 건축 양식이 통일되어 약간은 우아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저분하다'라는 느낌의 안암동과는 달랐다. 아아... 올해도 안암동3가 오거리슈퍼 주민들은 자기 마당 청소만 할 것인가. 'ㅅ' =3 아무튼.. 

 높은 곳에서 바라본 베르겐은 아름다웠다. 눈이 안녹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눈 없는 겨울은 황량하니까.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보니 항구와 배들이 보였는데 왠지 친숙한 이 느낌은 뭘까... 아아.. 베르겐에 16세기에 자주 방문했던거 같은 그런 기분 'ㅅ' 게임 중독인가보다.

 
 근처 집의 건축 양식을 유심히 보았다. 나무로 되어 있었다. 노르웨이의 건축 양식은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우아한 멋은 없지만 단조로움에서 오는 색다른 멋이 있다. 기본적으로 지붕을 제외한 벽면 전체를 단일 색으로 칠한다. 녹색,노란색,빨간색,흰색 등등.. 그리고 창문틀을 벽면 색에 어울리는 색으로 다시 칠한다. 깔끔하면서도 색의 조화가 어우러져 정말 아름답다. 
 

 구드바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노르웨이 청년에게 노르웨이 가옥이 나무로 되어있는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한참이나 집들은 살펴보았는데, 왜냐면 아직도 목조가옥에서 산다는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석회로 만들고 겉면에 그냥 나무를 덧댄건 아닐까? 나무가 아니라 나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아닐까? 여러 의구심이 들었는데 노르웨이 사람이 나무라고 하니 그렇게 믿어야 겠다. 앞서 이야기하지만 이런 노르웨이 전통 건축 양식은 (만들어진 전통일지도 모르겠다. 근대의 산물일지도.) 오슬로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슬로는 대다수 건물이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딱히 유럽스러운 느낌은 나지 않았고, 아파트가 그나마 전통 양식을 계승했는데, 나무가 석회로 변하고 색칠은 그대로이니 뭐랄까, 단조로운데 멋은 덜 하다랄까. 사진을 찍지 않은게 후회된다.
   


 기차는 한 시간을 달려 보스(Voss)에 도착했다. 보스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그야말로 설원이었다. 딱히 피오르드는 여기부터다! 라고 정해진 것이 없든 이곳 주변의 기기묘묘한 풍경이 온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이곳에선 유럽에 온 이후 몇 안되는 살을 애는 추위를 느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지형의 높이도 모르고 원래 무슨 땅인지 알 수도 없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 발이 젖어버렸다. 기차역 대합실에 들어와 양말을 갈아신는데 동상에 걸리는 아픔이 이런건가 싶었다. 위 사진에 뿌연 안개같은 것이 있는데 눈발이 휘날려서 생기는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것이 분명 구체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연기 비슷한 것인데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것이라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설원 한 복판에 공간이 있길래 가까이 가보니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곳의 벽면에 칠해진 낙서를 훑어보다가 다급히 여분의 속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는 농담이고 바로 이곳은 스킨헤드 성님들;의 아지트였던 것이다. 추운 겨울밤 이곳에서 노르웨이 스킨헤드 성님들은 마약도 하고 그래피티 예술(..)도 손보이며 White power를 주창했던 것이다. 가끔 정령신앙축제도 벌이고 동양인 납치해서 스너프 필름도 만들고 그랬겠지. 아아.. 사탄 숭배,트롤,블랙메탈,스킨헤드,끝없는 설원.. 역시 음침한 노르웨이 다웠다. 


 이곳에서 진정한의 의미의 설송(雪松)을 보았다. 아니, 소나무는 아니구나. 눈꽃으로 정정해야 함이 옳겠다. 우리나라에도 눈꽃열차같은게 있다고 하는데, 국내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런 세세한 가지 하나하나가 눈으로 장식된 나무는 생전 처음 보았다.  그 아름다움이 어찌나 탁월한지 마치 중학교 시절 방학 독후감과제로 나온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속 프랙탈이론을 다시 읽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봄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길임을 확신했다. 햇살은 따스하지만 눈은 녹지 않는다. 


 이곳의 눈은 내가 겪었던 눈과는 달랐는데, 무엇이 다른가 하니 눈을 밟았을때 발자욱이 그대로 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눈이 서걱서걱 부서지면서 자욱이 생긴다. 아마 날씨가 더 추워서 좀 더 꽁꽁 얼었기 때문일까? 날씨가 한국만큼이나 추워서 사진을 찍다보니 볼과 코가 술에 취한 사람마다 새빨개져 있었다. 장갑은 어찌나 방한기능이 안좋은지, 이정도 날씨 속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무잎,가지 하나하나가 얼어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바닥에 솟아있는 돌드은 다름아닌 묘지 비석이다. 

 눈이 얼마나 많이 쌓여있는지 알 수 있는 사진. 못해도 70cm는 쌓여있었다.


 보스의 교회. 교회내부를 구경하려 했지만 문이 걸려있었다. 룬드 대성당은 항상 열려있던데(그랬던가? 'ㅅ';)


 이곳은 스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겨울에도 시끌시끌하다. 


 밤에 돌아다니면 유령이라도 나올까? 


 보스에 도착한건 정오 쯤이었지만 구드바겐으로 가는 버스는 2시 30분에 있었다. 버스 승객은 나와 노르웨이 청년 하나. 버스 기사가 나에게 피오르드 보러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페리가 다섯시 쯤에 올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고 그것은 예상치 못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마르켄에서 8시쯤에 기상한게 시작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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