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왕족 결혼식이 머나먼 동양에서 온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여행갔는데 마침 그 날이 그 나라 축제날이니까 땡잡은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취미가 위키피디아 읽기라서 영국 왕실에 대해 그래도 조금은 아니까 조금 더 흥미있는 사건이기도 하고. 

  그 전날 밤에 만났던 노팅엄 대학교에서 교환학생하는 여자애랑 일본인 여자랑 아침식사도 같이 하고 잡담 좀 하다가 각자 갈길이 있어 헤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노팅엄은 우리학교랑도 협정이 맺어있는거 같았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뭐, 근데 들은 바로는 한국사람 중국사람이 너무 많아서 유럽에 온거같지 않다나 뭐라나. 노는것도 한국사람들끼리만 놀고.

 길거리는 이미 펜스가 설치되고 통제된 상태로, 차는 한대도 찾아볼 수 없고 인도에 사람들은 넘쳐났다. 결혼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애비로 향했다.
  


 정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길이 한 번 좁아지면 그 좁아진 길 통과하는데 몇 분씩 걸렸다. 
  


 특히 여기서 저 반대편으로 가는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 결혼식에 하객으로 오는 사람들 모두 다 볼 수 있다. 이 바로 뒤에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데 어차피 결혼식장 안에는 못들어가므로, 호텔 연회장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중계를 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윌리엄은 왕자가 아니라 공자(공의 아들)인데 동양 왕실 칭호랑 서양 왕실 칭호랑 1:1 매칭이 되는게 아니다보니 번역이 엄청나다 이상하다.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이고 그 아들은 웨일즈 군주(공) 찰스고, 그 찰스의 아들이 웨일즈 공자 윌리엄이다. 캐서린 미들턴은 평민가문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가구사업에 손대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선 귀족이라고 봐도 될듯 하다. 이 둘은 결혼하고나서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새 작위를 수여받아서 케임브리지 공작,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이 되었다. 왕위계승 서열 2위니까 내가 나이 50~60쯤 되면 윌리엄이 국왕이 되는걸 볼 수 있을 듯. 

 결혼식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났다. 찬송가를 어찌나 불러대는지, 유럽이 과거에 종교에 완전 얽매여 살던 세계라는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러다가 어떤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뭔가 했더니 God save the Queen, 영국 국가였다.
 



 가장 큰 실수라면 결혼식 중반쯤에 이미 자리를 떴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퍼레이드가 아주 천천히 이뤄질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동차와 말을 이용해서 생각외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나가자마자 성 제임스 공원으로 죽어라 뛰기 시작다. 
 


 버킹검 궁전으로 가는길에 사람들 수는 더 많아서 잘못하면 압사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아서 여왕을 비롯해서 온갖 하객들을 다 봤는데 여왕 지나갈때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영국 관광을 그렇게 가도 여왕은 맘대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가, 운이 좋았다.
 



 런던에 있는 근위병이란 근위병은 모두 소집된거 같았다. 식이 끝나고 철수하는 근위대 행진은 정말 끝이 없었다.
 


 다만 복장은 뭔가 19세기풍인데 제식소총이 현대적이라서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맨 뒤에 여자 장교인지 부사관인지 ㅋㅋ 뒤에서 지휘 보조를 하면서 가는데 왠지 웃겼다.
 


 왕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온 척하는? ㅋㅋ) 상징적인 군인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근위대 복장은 언제봐도 멋있다.
 


 결혼식이 지나가건 말건 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공원은 넘쳐났다. 런던엔 공원이 골목 돌면 나올만큼 매우 많은 수의 공원이 있는데, 런던은 정말 잘 만들어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아주 멋진 도시였다. 
 



 도로 봉쇄가 풀리고 모든 도로가 사람들로 뒤덮혔는데 저 버킹검 궁전 테라스 근처까지 정말 사람들이 빼곡히 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사진에 보면 저 끝에 회색건물이 보이는데, 저곳이 버킹검 궁전이다.
 


 트라팔가 광장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 생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 2차대전 당시 사용하던 전투기인 스핏파이어,랭카스터 폭격기,허리케인이 비행하고 그 다음엔 아.. -_- 기억이 안나네.. 왕립 공군에서 쓰는 현대식 전투기 두 종이 따라 비행했다. 
 


 공주보다 더 공주처럼 꾸미고온 여성들로 넘쳐나는 축제 한마당.
 


 광장에서 흥분한 관심병 10대들 여자애들을 봤는데, 좀 높이가 낮은 탑에 옹기종기 올라가서 음악에 맞춰 "shake it! shake it!"하면서 온갖 이상한 소리를 내고 난리를 치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찍으면 좋아서 비명 -_-; 지르고.  아침에 만났던 아일랜드 놈보다 더 이상한 애들이었따. 스코틀랜드인이 나보고 아일랜드 놈등른 다 이상하다고 했는데 잉글랜드 사람도 좀 만만치 않은듯..

 템즈강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런던의 축제를 즐겼다. 느낀건데, 확실히 런던은 살기 좋은 곳이다. 도시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는 곳은 처음 본다. 파리에는 슬럼가가 넘쳐나는데 이곳에는 거의 없다는 점도 한 몫 하는듯.

 마지막에 런던 타워브릿지를 봤는데 이미 '대단한' 건축물들을 많이 봐서 감흥이 덜했다. 오후 4시즈음에 gatwick 공항으로 향했다. 빅토리아역에서 특급을 타도 되고 다른 역에서 그냥 가도 되는데 그냥 돌아가는 쪽이 더 싸다.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 오전 8시였는데 수속문제를 생각하면 오전 6시쯤엔 여유있게 도착해야되니까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야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출국장에 출입거부당했다. -_-; 너무 일찍 왔다나. 결국 노르웨이 항공 창구 옆 휴게실(은 아니고 그냥 tv랑 의자 몇개 있는곳)에 자리를 잡았다. TV에선 SKY NEWS채널이 24시간 내내 나오고 있었고, 나는 전원 플러그가 있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했다. 와이파이는 유료인데 나는 에딘버러에서 결제한 와이파이계정이 있어서 런던에서 본전을 뽑았다.

 밤이 되니까 더이상 할게 없어졌다. 뉴스채널은 계속 똑같은 내용이 나와서 결혼식 장면이 머리속에 세뇌당했다. -_-; 공기는 차가워졌는데 반팔 옷밖에 안입었기 때문에 추위에 덜덜 떨었다. 돈을 교통비와 아주 소량의 여유자금만 가지고 온 관계로 식량 사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떠날 즈음에 1파운드도 안남게 되었다. 하루 굶는다고 죽는건 아니지만 배가 고픈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늦게 온 어떤 가족은 매점에서 먹거리를 잔뜩 사왔는데 족히 3~4만원치는 되어 보였다. 어찌나 부럽던지.

 자정을 넘길 무렵에 뭐라도 해야될거 같아서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엽서를 다 쓰고나서 출국장에 슬쩍 가보니 통과! 그 때가 새벽 3시 즈음. 출국장 대기소엔 정말 기가 막히게 아주 긴 의자가 침대 시트? 아니 보들보들한 면? 뭐라 해야될까. 기대고 있으면 몸의 열이 보존되는 아주 따뜻한 소재로 된 곳이 있었다. 게다가 3인용 의자인데 팔걸이로 없어서 그냥 대놓고 침대로 쓰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잠을 청했다. 

 일어나보니 오전 7시가 다 되었는데 휴대폰을 거울삼아 몰골을 살펴보니 참 거지같다. 딱 부렁자. 머리도 헝클어졌는데 거기에 스코티쉬 플랫캡을 눌러쓰고 보따리 하나 들고 있으니. 참 불쌍타. 나중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오면 고급 호텔에서 목에 금목걸이 주렁주렁 달고 더티사우스나 들으면서 놀아야겠다. 

 내가 직접 돈 벌어서 내 돈으로 여행온다는건 참 뭔가 만족스럽기도 하면서 아쉽다. 마지막 순간이 그랬다. 나에겐 74페니가 남아있었는데 빵집이 가보니 죄다 2~3파운드. 아주 조그마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사과 종이 있는데, 그 사과가 55페니였다. 동전을 털어 사과 하나를 사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선 그냥 잤다. 비몽사몽있다보니 내리란다. 심지어 이륙하는 것도 못봤다. 스웨덴에 도착하니 룬드가 지상낙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히 가기전엔 날씨도 맨날 흐리고 푸른 잎사귀도 안나는 차디찬 겨울이었는데 여행 갔다온 사이 구름 한 점 없고, 햇살은 쨍쨍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거기에 녹음이 전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그 날은 룬드의 축제날인 valborg(..인가)였는데 룬드에 도착했을 때가 11시쯤. 너무 피곤해서 축제도 뭐고 관심도 없었다.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잠을 청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느끼는건데, 여행은 관광명소가서 사진찍고 우와우와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각종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더 깊이 새겨지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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