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잠을 거의 못잤다. 매트리스 위에서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3시에 깨서 그대로 날을 새버렸다. 짐정리하면서 생긴 먼지와 한기를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이중창 덕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침에 영호(아이유 말고 진)를 불러 용달에 짐을 실어줬다. 용달차는 얼마나 양심이 없는지 3층에서 1층으로 짐 옮기는데 5만원을 달라고 한다.
듣자마자 속으로 욕이 나왔다. 좀 도와주면 덧나나. 우리가 짐을 옮길 때 그는 손 하나 까딱 안했다. 아 쓰디쓴 자본주의여.영호는 딱 1/10 가격인 5천원 밥 한끼에 일을 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영호랑 간 곳은 이공계 후문에 생긴 '엄마 밥줘'라는 새로 생긴 밥집. 그 자리엔 원래 누나네 삼치가 있었다.(아마도;)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도 기차에서 3시간 잔거 빼곤 못잤으니 거의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잔 것이다. 너무 자고 싶은데 아직 잔 짐정리가 덜 끝났고 오후 두시엔 총학생회 사무국장과 일 관련해서 미팅이 있어서  잘 수가 없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에 들어올 때 현관에 바른 방음재 제거하기 였는데, 스티커 제거제를 사서 시도해보니 전혀 안통해서 그냥 주인 아줌마가 넘어가주길 간절히 바라곤 스킵했다. 결과적으로 주인 아줌마는 그걸 못보고 나와 작별 인사를 했으니 잘 된 것 같다. 음, 근데 방음재가 문 손상시킨것도 아니고 방음이 하나도 안되는 집에 방음처리 해준거니 좋은거 아닌가. 두시에 사무국장을 만나 3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또 짐정리하다보니 어느것 6시.

 원래는 웹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자다간 2009년 지산 락페스티벌 때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밤 샜을 때의 그 꼴이 날꺼 같아서 밤 12시쯤 연수관 건너 산소수면실로 갔다. 가격은 8시간에 15000원. 샤워하고 누웠는데 정말 일어나기 싫을정도로 좋았다. 샤워실 물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 내가 살던 방은 겨울이면 온수가 차가워져서 미지근함과 차가움 사이의 애매한 온도의 물이 나왔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주인 아줌마한테 열쇠를 반납하고 짐을 다시 꾸리고 EMS를 붙이러 gs25에 갔다. 무게를 달아보니 8kg.. 무게에 놀라고 가격에 기절. 

 인천 공항에선 탑승수속을 하는데 내 티켓 수화물 제한이 20kg라서 오버차지 요금을 냈다. 내 무게는 31.1kg. 초과요금에 또 한 번 경악. 돌아올 때는 30kg짜리 티켓을 끊던가 무거운건 중고로 팔거나 버리고 와야겠다. 저녁시간이 도서 배가 고파 식사를 하려 했더니 한식당이나 뷔페나 죄다 가격이 15000원 전후다. 공항 된장찌개엔 금가루가 들어갔나보다.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고 드디어 비행기 탑승. 비행기엔 승객이 정말 적었다. 내가 있던 뒷쪽 칸에 좌석이
100개는 있었던거 같은데 사람은 10명정도 밖에 안됐다. 내 바로 뒤에는 여자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둘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길이었다. 

 혹시 우리 학교일까 하는 생각에 물어볼 까 망설이다 말았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떠드는데 시끄럽기 보다는 내가 동행이 없어서 오히려 라디오 듣는 기분이라 좋았다. 중간에 자기 언니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고대란다. 그렇다면 자신은 우리 학교가 아니라는 소리. 어디였을까. 그런데 더 경악할 만한건 자기 언니가 공대 학생회를 했는데 학생회 잠바를 가지고 왔다 한다. 내릴 때 보니까 선명하게 보이는 강철공대와 학교 마크.. 아.. 학벌 세탁이 장사시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가 지루해질 때 즈음,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살게 되는건 처음이어서 막연하게 겁도 약간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방글라데시 생활 한 달은
 정주한게 아니니 여행의 느낌이었으나 이건 다르다. 사실,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고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문명국임을 안다. 그런데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이 생각났다. 둘 다 나름의 성장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전자는 비극적인 결말이 기억에 남고 후자는 싱클레어와의 마지막 만남이 또렷히 기억난다. <데미안>에서 가자 유명한 문구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 이야기다. 새는 알을 깨고 태어난다. 아마 용기와 도전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엔 그랬다. 처음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나 이상한 하녀 이야기는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건 용기를 필요하는 일이다. 아마, 가서 뭘 해도 돌아올 때는 조금이라도 용기가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겁재이가 되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 저것 생각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뒤에 학벌 세탁녀 'ㅅ'; 가 흐느끼는 소리다. 한국을 떠나는게 슬픈가 보다. 저 여대생보다 나는 더 용기있는 사람인게 확실하다. 그냥 기분이 이상할 뿐이지 슬프거나 그러진 않다. 게다가 왜 우는지 선뜻 이해도 안됐다.

 민항기가 음속을 돌파해서 날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을 즈음(콩코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항 리무진에서 했던 생각들이 다시 생각났다. 광화문과 종각을 거쳐가는데 빌딩들이 정말 높았다. 30층,40층이 넘는 고층빌딩들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산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서울의 빌딩 숲을 방문 한 적은 거의 없다. 갈 일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는데, 관광 삼아라도 가볼 껄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릴 때 이사온 고향 아파트는 15층이다. 7살,8살 땐 아파트 층 수 자랑에 열을 올렸다. 우리 동은 15층인데 건너편 동은 13층이었다. 그런 사소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의미없는게 뿌듯하고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태권도 다닐 때 흰 띠 받을 껄 7층 형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던 기억도 난다. 




 
 어느새 도쿄 도착. 항공사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호텔이라 여인숙정도의 시설을 기대했는데 라운지도 엄청나고 건물 크기부터 굉장했다. 나는 혼자인데 방에는 침대가 두개. 대형 HDTV가 나오고 부대 시설이 예사롭지 않다. 인터넷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하룻밤에 20만원이 넘는 곳이다. 와.. 항공사에서 일본에서 묶을 숙박시서를 제공해주는데 받겠냐는 제의를 거절하면 정말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역시 비싼 곳이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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