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는 생각지 못한 분위기[각주:1]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반면, 파리에 대해선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파리가 단지 잠시 머물다가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것 또한 배경지식 때문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쯤 코펜하겐에서 출발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허탈할 정도로 쉬운데, 스웨덴 내 집에서 걸어나와서 코펜하겐 공항에 딱 들어가는 순간까지 1시간이 안걸렸다. 미리 적어두는데, 귀국하는 길에는 시간을 재봤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의 비행기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스웨덴 집 안까지 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10분. 외레순 다리 덕택[각주:2]에 참 편하게 산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려 RER B[각주:3]를 타고 숙소인 ALOHA HOSTEL까지 갔다. RER이 바로 코앞까지 가는게 아니라 6호선과 12호선을 갈아타는 수고를 했는데, 환승하면서 살펴보니 기차를 타는 몽파르나스 역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래서 숙소를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철도 근처는 온갖 쓰레기와 오몰로 넘쳐나고 담장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그래피티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되고 낡았는데 북유럽처럼 품위있게 낡은게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산다.'라는 느낌으로 낡아서, '지저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로 진입하면서 파리 빈민가를 보게 되었는데 빈민의 상징 아파트 규모에 놀라고 그 위생상태에 더더욱 놀랐다. 그렇게 큰 규모의 복도식 아파트는 처음 봤는데 가로길이가 세로길의 몇배는 되는거 같았다. 게다가 베란다와 복도를 점거하고 있는 온갖 기물들이 마치 몇년 전 인터넷에서 접한 중국 대학교 기숙사같은 느낌이었다.

 제일 처음 접한 유럽 국가가 스웨덴이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스웨덴이 정말 빈부격차가 없고 전체적인 삶의 질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스웨덴에 살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가난하다'던가의 느낌이나 이 사회에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파리는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프랑스인들이 스웨덴인들과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특징은 바로 '매부리코'라는 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옆에서 본 코의 각도가 30도,60,90도를 이루는 완벽한 직각삼각형처럼 보이기도 한다.[각주:4]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아코디언 음악 소리가 들린다. 모로코인지 알제리인지, 어딘지 모를 북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이민온 베르베르인[각주:5] 남자가 애절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돈 구걸. 이것이 바로 예술의 도시 파리란 말인가.[각주:6] "오 예수 영광영광" 거리는 CCM 테잎을 틀거나 녹음된 연주곡을 틀며 구걸하는, 종점만 가면 눈이 뜨이고 다리가 정상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사기꾼 구걸인과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각주:7]

 지하철에 내리니 본토 흑형들이 폭풍간지가 아닌 불꽃간지를 뿜으며 돌아다녔다. 주렁주렁 수 많은 피콕킹용 장식을 하고, 선글라스, 타이트한 핏의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터질듯한 근육. 파리 어느 클럽에서 양사이드에 여자 둘 끼고 놀거 같은 느낌의 흑형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태원에서 만났던 나이지리아 흑형[각주:8]들이 찌질남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낭만의 도시. 'ㅅ'

 해는 이미 지고 거리에 사람은 없어져서 분위기도 으스스 했다. 왠지 파리 구석진 빈민가로 가면 부랑자들이 석유통에 불피워놓고 있을거 같다. 그러다가 묘한 향을 풍기는 남자가 오면 잡아먹고 그럴듯.[각주:9] 다른 구역에 가면 무섭게 생긴 언니들이 껌 짝짝 씹으면서 50유로를 외쳐대고, 근처엔 알바니아계 갱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해서, 파리의 밤거리는 인적이 드물어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범죄자들도 안보인다. -_-; 그냥 아무것도 없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썩은 표정의 베르베르 직원이 날 맞이한다. 아니, 맞이안하고 앞 테이블 여자랑 잡담하다가 내가 오니 전화가 마침 걸려와서 한참이나 수다를 떤다. 항의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뭐 이런게 파리이겠거니 해서 그냥 기다렸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가보니 아이고.. 노르웨이 유스호스텔이 얼마나 품위있는 천국이었는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이놈의 호스텔은 물을 5초만에 한번씩 버튼을 눌러야 나오고, 샤워시설은 더욱 더 엉망이라 찬물 뜨거운물이 랜덤이다. -_-; 역시 이것이 바로 현대 파리의 모습이군.

 방엔 오스트리아에 교환교수인지 교환연구원인지, 어찌되엇던 exchange study를 하고 있다는 중국 마취전문의(의..의느님!)가 혼자 빵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에펠탑을 보러 나갔다. 숙소가 에펠탑과 매우 가까이 있어서 20분만에 도착했는데, 역시 유명한 관광지는 달랐다. 그 대단한 웅장함은 분명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르겐 송네 피오르드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사뭇 닮아있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공원부터 에펠탑까지 매우 많은 수의 관광객이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있었다. 모두 나처럼 에펠탑의 야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술에 취해서 관광객들을 비웃는 무어인들 몇명을 피해 에펠탑에 좀 더 다가갔는데 베르베르 청년 한 명이 에펠탑 모형이 단 돈 1유로[각주:10]라면서 물건을 판다. 출발하기 전 마취의가 블랙맨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 잡상인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베르베르인은 그렇게 블랙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앞쪽에 더 많은 수의 잡상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거긴 흑형들도 있었다. 베르베르,무어[각주:11],흑형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이루는 잡상인 무리는 한 눈에 봐도 이들이 불법체류자라는걸 알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돈 많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구해 가족끼리 오손도손 모여 살고 싶은게 삶의 목표가 아니라 마약 살 돈이 급해보이는 그들이었다. 

 에펠탑 전망대는 구간별로 요금이 다른데 학생요금[각주:12]으로 8유로 정도 냈다. 구간은 옥상 끝까지. 에펠탑의 특징은 1층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과 2층 전망대라 부르는 상대적으로(-_-) 낮은 높이까지 걸어서 올라가야된다는 것이다. 체력이 안좋은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중간에 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지상에서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려올때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르겠다. 자세히 안봐서.

 고난의 행군 'ㅅ'; 을 마치고 옥상에 도착하니 파리 야경이 한 눈에 보인다. 계획도시답게 구획이 잘 나뉘어져 있다. 아름답다. 그 말 외에는 더 이상 생각이 안났다. 내려오는 길에 에펠탑의 철골 구조를 멍하니 한참이나 쳐다봤다. 엄청 꼼꼼하게, 빈틈없이 이어져있는 디자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대지진으로 한참 시끄러운 터라, 파리에 대지진이 나도 에펠탑은 미동도 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중국 마취의는 사라지고 슬로바키아 여자애가 덤덤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크리스는 슬로바키아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살았고 지금은 휴학하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와있다고 한다. 호스텔에 있는 이유는 살 집을 구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셈. 파리 집값이 너무 비싸서 아파트 쉐어[각주:13]만 해도 한달에 100만원이 넘게 깨진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계약을 하려면 부모님 소득같은 것도 일일이 다 적어야 한다며 불평했다. 여행을 온게 아니기 때문에 내일 일요일엔 할 일이 없다면서 나보고 할 거 없으면 자기랑 놀러가잔다. 내가 내일 노르망디로 떠난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했다. 마렉 함식[각주:14] 이야기도 했는데 잘 모른다. 역시 여자들은 축구를 그리 안좋아하나 보다. FM하면 마렉 함식부터 영입하는게 진리이거늘 'ㅅ' =3

 아침엔 나 혼자 일찍 깼다.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주는데 싸구려 바게뜨와 버터, 그리고 시리얼이 제공됐다. 혼자서 구석에서 순대국 먹듯이 쳐묵쳐묵[각주:15]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몽파르나스에 가서 생 말로로 가는 기차를 끊었다. 가격이 65유로 -_-; TGV로 3시간 걸리는 거리고 파리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닌데, 내 비행기 티켓값이 10만원이 안되는걸 생각해보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리고 9시. 드디어 프랑스 여행의 목적지인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일본엔 파리병이란게 있을 정도로 환상이 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프랑스 파리에 대한 환상이 심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현대 프랑스 파리는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음침하고, 구질구질하고 꽤나 우울한 도시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낭만의 프랑스는 노르망디나 남프랑스같은 곳에 가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여행지를 그곳으로 정하기도 했고.












  1. 생각외로 글로벌해서 놀랐다.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서 오슬로는 더 이상 백인들의 도시가 아니다. [본문으로]
  2. 2000년대 개통된 덴마크-스웨덴을 잇는 거대한 다리. [본문으로]
  3. 지하철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추측컨대 EXPRESS의 개념 아닐까. [본문으로]
  4. 첨언하자면 머리새도 다르다. 스웨덴인들은 금발인데 프랑스인들은 짙은 갈색. [본문으로]
  5. 북아프리계 토착민. 북아프리카가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이민(합법, 불법 모두..)자들이 파리에 건너와서 산다. 리비아 문제에 프랑스가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 [본문으로]
  6. 라고 하지만 솔직히 좀 조소에 가까운 말. [본문으로]
  7. 사족으로, 우리나라 지하철 구걸계의 전설은 역시 '안산 사랑의 집'인거 같다. [본문으로]
  8. 이태원에 가면 나이지리아 출신인데 미국 출신인척 하는 흑인들이 많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미국 흑인을 더 좋아해서 그런다고 한다. [본문으로]
  9.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 이야기. [본문으로]
  10. 한화 약 1700원 [본문으로]
  11. 베르베르계이지만 혼혈이란 점에서 다르다. [본문으로]
  12. 학생증 검사를 안한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듯. [본문으로]
  13. 방 세개짜리 아파트가 있다고하면 방 하나를 쓰는것. 다른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하고.대도시에선 꽤 흔한 듯 하다. 미국이나 호주 유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본문으로]
  14. 슬로바키아 출신 축구 선수. 세리에A에서 뛰고 있다. [본문으로]
  15. "니들 순대국 먹을 땐 구석에서 죄지은듯 고개숙이고 먹어라" 라는 고파스 명언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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