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왕족 결혼식이 머나먼 동양에서 온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여행갔는데 마침 그 날이 그 나라 축제날이니까 땡잡은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취미가 위키피디아 읽기라서 영국 왕실에 대해 그래도 조금은 아니까 조금 더 흥미있는 사건이기도 하고. 

  그 전날 밤에 만났던 노팅엄 대학교에서 교환학생하는 여자애랑 일본인 여자랑 아침식사도 같이 하고 잡담 좀 하다가 각자 갈길이 있어 헤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노팅엄은 우리학교랑도 협정이 맺어있는거 같았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뭐, 근데 들은 바로는 한국사람 중국사람이 너무 많아서 유럽에 온거같지 않다나 뭐라나. 노는것도 한국사람들끼리만 놀고.

 길거리는 이미 펜스가 설치되고 통제된 상태로, 차는 한대도 찾아볼 수 없고 인도에 사람들은 넘쳐났다. 결혼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애비로 향했다.
  


 정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길이 한 번 좁아지면 그 좁아진 길 통과하는데 몇 분씩 걸렸다. 
  


 특히 여기서 저 반대편으로 가는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 결혼식에 하객으로 오는 사람들 모두 다 볼 수 있다. 이 바로 뒤에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데 어차피 결혼식장 안에는 못들어가므로, 호텔 연회장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중계를 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윌리엄은 왕자가 아니라 공자(공의 아들)인데 동양 왕실 칭호랑 서양 왕실 칭호랑 1:1 매칭이 되는게 아니다보니 번역이 엄청나다 이상하다.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이고 그 아들은 웨일즈 군주(공) 찰스고, 그 찰스의 아들이 웨일즈 공자 윌리엄이다. 캐서린 미들턴은 평민가문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가구사업에 손대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선 귀족이라고 봐도 될듯 하다. 이 둘은 결혼하고나서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새 작위를 수여받아서 케임브리지 공작,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이 되었다. 왕위계승 서열 2위니까 내가 나이 50~60쯤 되면 윌리엄이 국왕이 되는걸 볼 수 있을 듯. 

 결혼식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났다. 찬송가를 어찌나 불러대는지, 유럽이 과거에 종교에 완전 얽매여 살던 세계라는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러다가 어떤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뭔가 했더니 God save the Queen, 영국 국가였다.
 



 가장 큰 실수라면 결혼식 중반쯤에 이미 자리를 떴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퍼레이드가 아주 천천히 이뤄질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동차와 말을 이용해서 생각외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나가자마자 성 제임스 공원으로 죽어라 뛰기 시작다. 
 


 버킹검 궁전으로 가는길에 사람들 수는 더 많아서 잘못하면 압사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아서 여왕을 비롯해서 온갖 하객들을 다 봤는데 여왕 지나갈때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영국 관광을 그렇게 가도 여왕은 맘대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가, 운이 좋았다.
 



 런던에 있는 근위병이란 근위병은 모두 소집된거 같았다. 식이 끝나고 철수하는 근위대 행진은 정말 끝이 없었다.
 


 다만 복장은 뭔가 19세기풍인데 제식소총이 현대적이라서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맨 뒤에 여자 장교인지 부사관인지 ㅋㅋ 뒤에서 지휘 보조를 하면서 가는데 왠지 웃겼다.
 


 왕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온 척하는? ㅋㅋ) 상징적인 군인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근위대 복장은 언제봐도 멋있다.
 


 결혼식이 지나가건 말건 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공원은 넘쳐났다. 런던엔 공원이 골목 돌면 나올만큼 매우 많은 수의 공원이 있는데, 런던은 정말 잘 만들어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아주 멋진 도시였다. 
 



 도로 봉쇄가 풀리고 모든 도로가 사람들로 뒤덮혔는데 저 버킹검 궁전 테라스 근처까지 정말 사람들이 빼곡히 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사진에 보면 저 끝에 회색건물이 보이는데, 저곳이 버킹검 궁전이다.
 


 트라팔가 광장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 생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 2차대전 당시 사용하던 전투기인 스핏파이어,랭카스터 폭격기,허리케인이 비행하고 그 다음엔 아.. -_- 기억이 안나네.. 왕립 공군에서 쓰는 현대식 전투기 두 종이 따라 비행했다. 
 


 공주보다 더 공주처럼 꾸미고온 여성들로 넘쳐나는 축제 한마당.
 


 광장에서 흥분한 관심병 10대들 여자애들을 봤는데, 좀 높이가 낮은 탑에 옹기종기 올라가서 음악에 맞춰 "shake it! shake it!"하면서 온갖 이상한 소리를 내고 난리를 치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찍으면 좋아서 비명 -_-; 지르고.  아침에 만났던 아일랜드 놈보다 더 이상한 애들이었따. 스코틀랜드인이 나보고 아일랜드 놈등른 다 이상하다고 했는데 잉글랜드 사람도 좀 만만치 않은듯..

 템즈강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런던의 축제를 즐겼다. 느낀건데, 확실히 런던은 살기 좋은 곳이다. 도시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는 곳은 처음 본다. 파리에는 슬럼가가 넘쳐나는데 이곳에는 거의 없다는 점도 한 몫 하는듯.

 마지막에 런던 타워브릿지를 봤는데 이미 '대단한' 건축물들을 많이 봐서 감흥이 덜했다. 오후 4시즈음에 gatwick 공항으로 향했다. 빅토리아역에서 특급을 타도 되고 다른 역에서 그냥 가도 되는데 그냥 돌아가는 쪽이 더 싸다.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 오전 8시였는데 수속문제를 생각하면 오전 6시쯤엔 여유있게 도착해야되니까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야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출국장에 출입거부당했다. -_-; 너무 일찍 왔다나. 결국 노르웨이 항공 창구 옆 휴게실(은 아니고 그냥 tv랑 의자 몇개 있는곳)에 자리를 잡았다. TV에선 SKY NEWS채널이 24시간 내내 나오고 있었고, 나는 전원 플러그가 있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했다. 와이파이는 유료인데 나는 에딘버러에서 결제한 와이파이계정이 있어서 런던에서 본전을 뽑았다.

 밤이 되니까 더이상 할게 없어졌다. 뉴스채널은 계속 똑같은 내용이 나와서 결혼식 장면이 머리속에 세뇌당했다. -_-; 공기는 차가워졌는데 반팔 옷밖에 안입었기 때문에 추위에 덜덜 떨었다. 돈을 교통비와 아주 소량의 여유자금만 가지고 온 관계로 식량 사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떠날 즈음에 1파운드도 안남게 되었다. 하루 굶는다고 죽는건 아니지만 배가 고픈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늦게 온 어떤 가족은 매점에서 먹거리를 잔뜩 사왔는데 족히 3~4만원치는 되어 보였다. 어찌나 부럽던지.

 자정을 넘길 무렵에 뭐라도 해야될거 같아서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엽서를 다 쓰고나서 출국장에 슬쩍 가보니 통과! 그 때가 새벽 3시 즈음. 출국장 대기소엔 정말 기가 막히게 아주 긴 의자가 침대 시트? 아니 보들보들한 면? 뭐라 해야될까. 기대고 있으면 몸의 열이 보존되는 아주 따뜻한 소재로 된 곳이 있었다. 게다가 3인용 의자인데 팔걸이로 없어서 그냥 대놓고 침대로 쓰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잠을 청했다. 

 일어나보니 오전 7시가 다 되었는데 휴대폰을 거울삼아 몰골을 살펴보니 참 거지같다. 딱 부렁자. 머리도 헝클어졌는데 거기에 스코티쉬 플랫캡을 눌러쓰고 보따리 하나 들고 있으니. 참 불쌍타. 나중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오면 고급 호텔에서 목에 금목걸이 주렁주렁 달고 더티사우스나 들으면서 놀아야겠다. 

 내가 직접 돈 벌어서 내 돈으로 여행온다는건 참 뭔가 만족스럽기도 하면서 아쉽다. 마지막 순간이 그랬다. 나에겐 74페니가 남아있었는데 빵집이 가보니 죄다 2~3파운드. 아주 조그마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사과 종이 있는데, 그 사과가 55페니였다. 동전을 털어 사과 하나를 사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선 그냥 잤다. 비몽사몽있다보니 내리란다. 심지어 이륙하는 것도 못봤다. 스웨덴에 도착하니 룬드가 지상낙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히 가기전엔 날씨도 맨날 흐리고 푸른 잎사귀도 안나는 차디찬 겨울이었는데 여행 갔다온 사이 구름 한 점 없고, 햇살은 쨍쨍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거기에 녹음이 전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그 날은 룬드의 축제날인 valborg(..인가)였는데 룬드에 도착했을 때가 11시쯤. 너무 피곤해서 축제도 뭐고 관심도 없었다.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잠을 청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느끼는건데, 여행은 관광명소가서 사진찍고 우와우와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각종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더 깊이 새겨지는거 같다. 



  


 미미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숙소가 대영박물관 바로 옆이라서 박물관까지 2분은 걸렸나? ㅋㅋ 하지만 아침 8시 40분쯤 가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출입도 금지되어있었다. 직원들이 이제 슬슬 출근하고 있는 시점. 9시 쯤 되니 출입이 허가됐는데 그나마도 대부분의 관이 10시부터 입장허용... 그래서 음료수 하나 뽑아들고 박물관 로비에서 수다를 떨고 10시에 다시 출발.
 


 전시품목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하나하나 보고 가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서 관심가는 것들만 설명을 쭉 읽어보는 식으로 관람했다. (물론 다들 그렇게 관람하겠지만;) 여기에서 제일 인기있는 곳은 고대 이집트관,고대 그리스 로마관인데 고대 이집트관에 가면 대영박물관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시품이 있다. 바로 로제타석, 로제타 스톤이다. 로제타석은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중이던 1790년대에 발견하였는데 십여년 뒤 알렉산드리아 조약으로 영국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 후 이 로제타석의 내용은 프랑스인 샹폴리옹이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내용은 대개 고대 비석들이 그렇듯이 "우리왕은 대단한 사람이다." 뭐 이런 내용. 결국에는 약탈문화재인데, 이 로제타석 전시관 바로 밖을 나가면 로제타석 미니모형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나온다. 
 "잘 보셨나요? 이것이 바로 우리 영국의 자랑 로제타석입니다. 서둘러 미니어처를 구입하세요!" 뭐 이런 느낌. 대영박물관에 있는 대다수의 문화재는 대영제국시절 장인의 손길로 한땀한땀 전세계에서 약탈해온 것이다. 결과적으론 전세계 모든 문명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게 되었으니 관강객 입장에서 보면 좋은건지 나쁜건지 약간 애매하다.
 
 한국사람이기에 당연히 한국관을 방문했는데, 아아.. 아무도 없었다. 역시 한국은 아직 안알려진 국가. 게다가 전시중인 것도 별로 없었는데 전시관 내에 붙여진 내용에 따르면 수집가인 한국인 한 분의 기증을 통해 전시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아니, 다른 나라에 우리나라 유물들이 많으면 안되지.. -_-; 아쉬워할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동영상이나 사진으로만 접하던 연예인은 실제로 보면 신기하듯이, 교과서에서 보던 유물들을 직접 볼때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영국은 모든 박물관이 무료이므로 입장료는 없다. 폐관은 아마도 오후 5시.
 


 미미가 차링 크로스 가는 길 어디쯤엔가 차이나타운이 있다고 해서 같이 가보았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차이나타운. 의외로 규모가 작고 딱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진 않는다. 건물자체가 유럽풍이다보니 그런듯 하다.
 


 곳곳에 중국 마사지 가게가 있는데 젊은 아가씨들이 쇼윈도우에 앉아있고 조명이 홍등인걸 봐서 도대체 이게 진짜 마사지 가게인지 매춘업소인지 확신이 안섰다. -_-; 중국 마사지 가게는 원래 등이 빨갛나. 

 그리고 재미있는건 이 차이나 타운에 한국 가게에 껴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음식과 한국물품(과자나 음료수같은..)을 파는 곳인데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조용했다. 이왕 온김에 점심을 여기서 먹기로 했다. 가격이 무려 만원이 넘어간다. 제육덮밥을 시켰는데 맛이 짜면서도 매콤하다. 여기 가게 맛이 이상한건지 내가 한국 음식을 안먹은지 반년이 다되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던 간에 배는 채웠고 돈은 나갔다. 나도 미미처럼 자장면 먹을껄.
 
 미미는 전세계 대도시 어디나 차이나타운이 있다면서 자기가 살고있는 캐나다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 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선 인천 근처 빼고는 차이나타운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다고 하니 놀란다. 흠, 그러고보니 서울에는 왜 차이나 타운이 없을까.  덧붙여서 중국인들은 보통 영어에 성조가 들어가는데, 미미는 세련된 북미 영어를 구사해서 신기했다. 서양인들이 중국인들 영어는 칭챙총 -_-; 이라고 놀리는게 싫어서 열심히 공부했단다. 나는 내 억양을 도저히 모르겠는데 영국,미국,한국 억양이 짬뽕된 이상한 억양인듯. 
 



 런던에도 인물화 갤러리가 있다.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에딘버러의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스코틀랜드 인물들을 다룬다면 이곳엔 당연히 잉글랜드 인물들을 다룬다.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화는 갑옷을 입고 무장해있는 모습인데, 크롬웰이 강력한 독재자라 그렇게 표현된 줄 알았더니 그 당시 패션이었다. 그 유명한 튜더 왕가의 대표주자 헨리 8세와 여인들 그림도 있었는데 괜히 눈망울이 슬퍼보였다. 
 


 드디어 도착한 트라팔가 광장. 여기서 미미와 헤어졌다. 미미는 옥스포드로 떠났다. 왜 런던 구경을 이상한 루트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의 갈 길을 갔다. 트라팔가 광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서 도저히 사진 한 폭에 담을 수가 없었다. 저 너머 보이는 건물은 내셔널 갤러리인데, 미술에 조예가 없는 관계로 스킵. 내일이 윌리엄 왕자 결혼식이라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곳곳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있었다. 
 


 넬슨 기념비는 기절할 정도로 높은데, 사진은 올려다보고 찍어서 어떻게 보면 작아보인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크다. 이순신 장군상정도겠거니 했는데 넬슨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크기가 파르테논 신전 기둥 하나 떼놓은 듯 했다.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고 전사한 잉글랜드 구국의 영웅이다. 전쟁을 끝장 낸 아서 웨슬리보다 전쟁의 전환점을 만든 넬슨이 더 높게 평가받고 있는 듯 했다. 
 

 
 거대 방송국 세트. 어쩌면 나도 뉴스에 잠깐 나왔을지 모르겠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버킹검 궁전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유니언잭으로 뒤덮혀 있었다. 평소에는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추측으론 결혼식이라서 장식한 듯 했다.
 


 전세계에서 결혼식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영국 연방 소속 국가 국민들로 많이 와 있었는데 스스로를 "정신나간 캐나다인"이라 지칭한 텐트로 없이 노숙하고 있는 캐나다인 일행이 인상깊었다. 밤에 추워서 어떻게 잤으려나. 호텔 가서 잤나;;
 


 곳곳에는 방송사들의 인터뷰 경쟁이 치열했다. 잠깐 구경해본 결과 인터뷰 내용은 "어떤 이유로 밖에서 이렇게 몇일 씩 기다리고 있나요?" 라는 질문에 "내일 결혼식은 아주 특별한 날이고 연합왕국의 역사와 전통이 어쩌고 저쩌고 god save the queen~" 뭐 이런 답변이 이어졌다. 나도 사진 찍었지만 저 인터뷰 하는 모습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주위에 우르르 몰려있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영국은 파리보다 더 정갈하고, 깨끗하고, 안정하고, 평화롭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유럽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 숫자가 적어서 그런 듯 하다. 프랑스는 약 500만명의 무슬림 이민자, 영국은 약 10만명이다. 프랑스 파리를 가보면 느끼겠지만 대다수 이민자들이 사회 하류층을 담당하고 있고, 불법체류중인 경우도 매우 많아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현재 유럽의 우경화도 이런 원인 때문이다. 
 무슬림을 비롯한 이민자 숫자 외에도, 런던은 녹지 비율이 기가 막히게 높다. 거의 모든 구획에 스퀘어 가든이 하나씩 있고 곳곳에 거대한 파크가 있다.. 자연이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넓은 공원안에 있으면 여기가 유럽에서 가장 붐빈다는 대도시 런던인지 한적한 시골 어디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버킹검 궁전은 생각외로 초라했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거대하지도 않고, 뭔가 임팩트가 없어서 조금은 밍숭맹숭했다. 내일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이곳에는 이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도저히 저 앞 성문까지 갈 수가 없어서 겨우겨우 왼쪽으로 빠져나왔다. 
 


 좀 밍숭맹숭하다. 오히려 런던 구시가지가 더 화려해 보일정도.
 


 
 버킹검 궁전 옆에는 가드(근위대) 막사가 있는데 막사에선 끊임없이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행사라도 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드릴 서전트가 동작이 굼뜬 병사에게 빽빽 고함을 지르는 소리였다. 

 막사 옆에는 가드 뮤지움(근위대 박물관)이 있는데 고전시대 근위대 창설 이후부터 현대까지 근위대의 모든 역사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출입료는 학생 2 파운드. 일반인은 모르겠다.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늙은 노병의 티셔츠 뒤 문구 "우리는 연합왕국 군인들과 그 미망인들을 지지한다." 근위대 전우회 뭐 이런 단체 소속이겠지.

 영화 7월 4일생이었나 디어헌터였나.. 청춘을 바친 후에 불구가 된 몸으로 돌아온 고국에서 비겁한 전쟁에서 싸웠단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주인공을 감싸며 "우리가 국채 판매를 하지 않으면 내 전우들과 전우들 가족들은 모두 굶어죽는다."며 분노를 숨기지 못하던 어느 상이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박물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전사한 전우들의 가족들을 위해, 각종 기념사업 등을 위해 사용되는데, 유료 박물관치곤 매우 만족스러웠다.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근위대는 그냥 빨간 옷 입고 왕궁만 지키던 부대가 아니라 16세기~17세기 창설당시에는 각종 전장을 누비는 전투부대였다. 자코바이트 반란,나폴레옹 전쟁,남아프리카 전쟁 등을 거쳐 이라크 전쟁까지, 전세계 전장을 모두 다 누빈 엘리트 부대였다. 또 하나 놀란 사실은 영국은 정말이지 전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전시관 끝에는 박물관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이 있는데 여러 여행자들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이 자랑스럽다." 와 같은 응원의 메시지가 대부분인데 8살 꼬마아이가 쓴 편지는 꽤 귀여웠다.
 나오는 길에 금발 여자애들 세명이 2파운드 입장료 소리를 듣고 경악을 하며 나갔는데 '니들이 돈내고 들어가봐야 볼 게 없단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애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결혼식 관계로 몇일전부터 문을 닫았고 주위는 엄청난 인파로 북적대고 있었다.
 


 도로 어느곳도 점거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ㅋㅋㅋ 이 사람 TV에서 생중계하는걸 봤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웨스트민스터 근처에 있는 빅밴.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정교하고 화려할 수 가 없다. 다리 위에서 한참이나 빅밴과 런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런던 아이는 정말 몇년 되지 않은 신 랜드마크인데 한 번에 천 명이 넘는 인원이 탑승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돈이 없는 관계로 당연히 패스. 
 


 런던타워 브릿지를 보기 위해서 이동했는데 여기서부터 꼬였다. 방향을 반대방향으로 간 것이다. 이때부터 전혀 계획에 없던 현대 런던의 참모습 탐방 -_-; 이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지하철 타고 가려고 반대방향으로 끝없이 갔다. 하지만 티켓 가격이 4파운드(7~8천원)이나 한다는 사실을 알곤 걸어가기로 결심. 이미 남쪽으로 엄청 내려와 있어서 숙소인 러셀스퀘어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했다. 가는 길은 가는데만 집중하느라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그 많던 인파와 관광객들이 사라지고 실제 런던 시민들이 사는 공간에 들어서자 기분이 묘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아보였다. 재래 시장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주위의 빅토리아풍 건물들과 달리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천막이 조금은 향수를 자극했다. 러셀 스퀘어로 가는길은 멀고도 험해서 헤매고 또 헤맸다. 

 저녁시간이라 런던 곳곳의 PUB에서는 즉석 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시원한 맥주 한잔 들고 pub의 사람들과 유쾌하게 수다를 떠는 런던의 직장인들이 멋져보였다. 스웨덴에서 살면서도 느끼는거지만 서양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잠깐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듯 하다.
  


 뮤지컬 극장. 빌리 엘리엇은 영화로만 있는줄 알았는데 뮤지컬로도 상영되고 있었다. 돈이 없으니 역시 스킵!(계속 적으니까 왠지 슬프다.. 아아..) 가는 길에 테스코를 발견해서 허겁지겁 바게뜨를 샀다. 두개에 단돈 1파운드 할인행사! 오오오.. 교통비,숙박비를 빼고 돈을 거의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식비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기념품 산 탓에 돈이 많이 지출된 탓도 있고, 미미랑 한인 식당가서 피같은 만원을 날린 탓도 있고. ㅠ_ㅠ 
 그냥 먹으면 심심하니까 체다 슬라이스 치즈도 하나 샀다.  

 분명 유명한 명소인데 이름을 까먹어버린 곳.
 

 스코틀랜드도 그랬고 이곳에도 그렇고, 전쟁을 많이 치룬 나라답게 곳곳에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현대 런던의 최첨단(?)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옥스포드 서커스. 매우 길고 넓은 상업지구로 없는 가게가 없다. 쇼핑을 좋아한다면 절대 빼놓으면 안되는 곳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에딘버러 여행은 전혀 계획안하고 갔는데, 뭐 대충 내려보니 어딜 가야될지 보이는거 같아서 그랬다. 실제로, Wavely bridge 주위 The royal mile(로열 마일) 주위에 관광 명소가 몰려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로 스코틀랜드 왕국[각주:1] 시절의 왕,왕족들 그리고 수 많은 스코틀랜드의 유명 작가,과학자,예술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있다. 참고로 영국의 모든 국립 박물관은 무료다. 입구에 기부금 받는 공간이 있을뿐. 참 좋은 곳이다. 아무튼, 내부는 고전시대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정말 고고하고 도도한 인테리어로 되어 있는데 유럽이나 엔틱 가구,인테리어에 환상이나 허영심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오면 기절할듯..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실제 역사나 실화를 다룬 영화가,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듯이[각주:2] 갤러리도 그렇다. 특히 이 초상화 갤러리의 경우 영국 정치사나 영국 유명 인물들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가기전에 여행지에 대한 책 한 권 읽어보고 가는건 어떨까?

 스코틀랜드 역사는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한게 그렇게 잉글랜드와 치고박고 싸웠다가 결국에는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이 되면서 하나가 되었는데, 이렇게 보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한테 흡수당한 것이다. 근데 왕이 잉글랜드에 계속 머물고 왕국의 중심도 잉글랜드에서 돌아가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하게도 왠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한테 흡수당한거 같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_-; "이겼는데 왠지 진 기분이야.." 뭐 이런 느낌? ㅋㅋ

 초상화들 중 몇 점들은 정말 입벌어지게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해서 한참 떨어져서 봐야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인데, 하나같이 참 '고귀하다'는 느낌을 준다. 귀족,왕족들을 그렸기 때문에 당연한 거겠지만. 전혀 생각치도 못한 몇몇 인물들이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문을 나섰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영국,영국 하나 싶었다. 

 
 에딘버러성으로 가는 길엔 온갖 기념품 가게와 신기한 가게들이 즐비했는데 스코틀랜드의 전통인 체크무늬 킬트 방직공장을 재현해놓은 거대한 지하 매장도 있다. 킬트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은 전통인데 19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만들어진 전통이다. 근데 저런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을 세계화해서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을 끌여들이고 방직업의 중심지로 만든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 


 Flat cap, Irish cap, 우리나라에선 헌팅캡으로 불리는 위 사진 속의 모자 태생이 아일랜드,스코틀랜드인데 이 곳에서 오리지날 메이드 인 브리튼 플랫캡을 구입할 수 있다. 하아 촉감하며 디자인하며.. 가격은 최저 22~35파운드까지 천차만별. 기념품 가게들이 취급하는 품목은 거의 다 같은데 가격은 다 다르다. 대다수 가게는 25파운드에 파는데 나는 22파운드에 사는 가게를 찾아 구매했다. 3파운드면 거의 6천원 가량하는 엄청난 돈이다. 

 짐이 보따리 하나밖에 없었는데 플랫캡 쓰고 거울을 보니 갓 뉴욕으로 이민 온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거지꼴 -_-; 이었다. 상의랑 하의는 21세기 디자인인데 모자만 19세기~20세기 초반에 머물러있으니 얼마나 웃긴지.

 


 기념품 가게에서 내 눈에 띈 윌리엄 월레스 모형. 옆엔 19세기 하이랜드 연대 군악대병 모형도 있었는데 오히려 진짜 스코틀랜드 역사라면 이쪽이 더 가까운거 같아 샀다. 비록 모양은 다분히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에서 따왔지만...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쓸 엽서도 몇 장 샀다. 교환학생와서 엽서값으로 몇만원 쓴듯; 한 번 보내는데 2000정도 든다. 엽서 가격 포함하면 3천원? ㅋㅋ 

 스코틀랜드 샵 이라는 이름의 기념품 가게의 웃긴 점은 주인이 중동 출신 무슬림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사회에 융화되기 앉고 터번(사용하기 편하게 모자형으로 아예 고정되어있더라 ㅋㅋㅋ 개량 터번 ㅋㅋㅋ)쓰고 있다..  얼마나 웃긴가.. 무슬림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것이 바로 스코틀랜드의 전통입니다. ^_^" 이러는게 -_-;
  


 영국은 박물관 입장은 무료지만 성 입장은 유료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자그마한 성도 유료다. 이미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중세시대 성의 위엄을 느껴봤기 때문에 입구까지만 들어가진 더 가진 않았다. 빈곤한 여행자에게 저런건 사치. 
 


 에딘버러 로열 마일은 올드 타운이고, 웨이블리 다리 너머는 신시가지라서 현대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아니.. 현대식은 아니고 19세기.. -_-; 누구 말마따나 유럽은 근대 이전에 시간이 멈춰있고, 미국은 근대에 시간이 멈춰있고, 한국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나..
 


 딱 여기까지. ㅋㅋ 그대로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저기 보이는 평평한 언덕(돌로 된 부분)은 Arthur's seat이라 불리는데 아더왕이 앉아있는 곳이라서 그런데 불린다나 뭐라나. 한 번 가고 싶었는데 하이랜드 고지대를 누비고 나니 다리가 부서질거 같아서 포기했다. 다리 문제도 있지만 이미 고지대에서 걸으면서, 기차타고 가면서 본 엄청난 풍경들을 넘치도록 봤기 때문에 저 정도 언덕은 별로 안땡겼다. 


 나오는길에 보니 해자가 있었다. 옛날에는 이 공간이 온갖 오물이 섞인 물로 가득차 있었겠지.. 해자가 있는 이 성을 뚫을 방법은 정문 공격밖에 없어보였다. 그나마도 다리를 올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천연요새 아니었을까. 뒤쪽은 절벽이라 절벽을 타고 올라 올 수도 없고.



 성 근처엔 재미있는 상점들이 많다. 이 가게는 Camera Obscura 일루젼숍인데 착시현상을 이용한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가령 모나리자 그림을 왼쪽에서 보면 웃고있는데 오른쪽에서 보면 사탄 -_-;으로 변한다던가. 제일 인상깊었던건 3D 저스틴 비버 브로마이드 -_-;;
마의 16세를 맞이하여 역변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최고 아이돌의 열기가 스코틀랜드까지 오다니.. 대단하다.  


 바로 옆에 있는 스카치 위스키숍. 직접 마실 수 있고 역사도 알 수 있고 쇼핑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료라서 GG. 딱히 술을 사랑하는 편이 아니라서 별로 안끌렸다. 
 


 관광할 때 발품팔아 다니는게 싫으면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영국에선 거의 모든 버스가 2층버스인데 관광버스의 경우는 저렇게 2층이 개방형이다. 에딘버러의 경우 모든 투어버스 집결지는 웨이브리 다리에 있고 10파운드? 17파운드? 정도 되는 금액을 내면 24시간 내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버스 안에서는 가이드가 안내도 해준다. 나는 비루한 방랑자라 가격보고 그냥 포기했다. 
 


 유럽 건축의 특징은 저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다는건데, 분명히 따로 지었는데 완전히 붙어있다. 그래서 Street, Block단위로 길 찾기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새 주소 체계도 이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건물 지어진게 강남처럼 계획된 개발구역이면 상관없지만 시골촌동네로 갈수록 그냥 '막지은' 곳들이 많아서 제대로 정착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나 미국 대도시같이 '현대적인' 곳들은 상업지구는 1층부터 꼭대기까지 100% 상업지구이지만 유럽은 1층만 상업지구고 그 위에는 주거 공간이다. 위 사진을 보면 1층만 상점이고 위에는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건물들은 대개 18세기나 19세기에 지어진 것들이 많고 구시가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내부 구조, 장 단점에 대해선 잉글랜드 여행할 때 확실히 알게 되었고, 잉글랜드 여행기에서 좀 더 적을 예정이다. 
 

 
 대성당? 교회?. 스테인드 글라스가 멋지다. 그런데 내부 사진 촬영하려면 포토 퍼밋으로 2파운드나 내야된다. 당연히 사진 안찍었다. -_-; 남들은 그냥 지나갔겠지만 나는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추모판(?)에 주목했다. 대영제국 시기 전 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수 많은 하이랜드 병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있는데 영국이 치른 전쟁이 워낙 많다보니 판들이 많아서 어떻게 보면 교회 벽 전체가 좀 지저분하게 뒤덮혀있다는 느낌도 든다.
 


  에딘버러 구시가지 중 로열 마일은 현지인은 없고 관광객만 있다고 보면 되고, 구시가지의 그 외 지역에는 관광객 반, 현지인 반이다. 진짜 에딘버러를 보려면 신시가지로 나가야된다.
 


 웨이브리 브릿지인가 노스 브릿지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로열 마일 방향을 향해 찍은 사진.
 


 에딘버러 성 말고 다른 성 하나가 더 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근데 이 사진 그 성 사진이 맞긴 한가.. -_-;
 


 교차로에 있는 웰링턴 동상. 이 웰링턴이 내가 아는 웰링턴 공작이 맞는지 모르겠다. 웰링턴 공작 아서 웨슬리는 나폴레옹 전쟁 최후의 전쟁인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이 공으로 웰링턴 공작 칭호를 얻으며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스코틀랜드의 상징, 킬트와 백파이프. 이곳에서 겪은 최고의 모순은 다름아닌, 이 백파이프 연주하는 할아버지가 별로 주목을 못받았다는 것이다. 관광지들이 힐끔 쳐다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Scotland the brave 같은 연주곡은 유투브에서 찾아서 막 듣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잉글랜드 런던에서 백파이프 연주하는 사람을 봤는데 사람들 완전 열광했다.  정작 진짜 스코틀랜드 사람이 스코틀랜드에서 연주하는 백파이프는 외면받고 잉글랜드에서 잉글랜드사람인지 웨일즈 사람인지 모를 이가 연주하는 연주는 환호받는다는게 좀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정자세를 취해주셨다. ㅠ_ㅠ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미술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라 일부 관만 보고 나왔다. 미술은 가장 고귀한 쾌락중 하나라고 하는데, 난 그걸 이해할 만한 수준의 인간은 못되는거 같다.
 


 에딘버러성 뒤쪽에서 찍은 성. 참 자리 잘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한글 영애겠지? 하아.. 한국인들 민도 좀 보소 ㅡㅡ 쯧쯧. 
 여긴 진짜 현대 스코틀랜드가 아니야! 하면서 신시가지 탐험에 나서면서 결국 하이랜드에서와 마찬가지로 걷고 또 걷는 대장정 -_- 이 시작됐다. 그런데 정말 웃긴 장면을 봤다. 하이랜드에서 중국인 소리 들으면서 느낀거지만 확실히 이 곳 사람들의 자존감? 텃세같은게 센거 같았는데 한 에피소드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됐다. 인도 위로 어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걸 경찰이 불러 세웠다. 그러더니 "Where are you from?" 하고 묻자 여자가 뭐라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이 큰소리로 "England???? This is SCOTLAND!!!!!!!!!!!!!"하고 소리치는게 아닌가. ㅋㅋㅋ 그러면서 스코틀랜드에서 자전거는 여기로 다니지 않는다며 잉글랜드 놈들은 정말 이해가 안간다느니 하며 완전 무안을 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여자보고 주의하라면서 그냥 보냈는데 여자를 향해 FREEDOM!!![각주:3] 이라고 외치지 않은게 다행;;;

 신시가지는 관광지와 달리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노천 까페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 했다.  한시간 정도 걷고나서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갔다. 사진 찍었는데 어디로 날아갔는지 안보인다..아무튼, 반드시 가봐야할 장소. 

 스코틀랜드의 선사시대 부터 현재까지 '모든것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인상깊었던건 역시나 중세시대. 스코틀랜드 전통검이 양손검 클레이모어를 봤는데, 정말 강인한 전사가 아니면 들고 서있기도 힘들정도로 거대했다. 정말 컸다. 진짜 컸다. 무지막지하게!!!!! 컸다. -_-;; 로버트 더 브루스나 윌리엄 월레스에 대해서 그리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었던 것도 좀 의외. 

 그 다음 인상깊었던건 다름아닌 스코틀랜드의 현대사다. 변화하는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의 전시관으로 현대 스코틀랜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곳곳에 영상물이 나오고 있어서 몇가지를 감상했다. 1970년대의 스코틀랜드 주거환경 개선사업영상를 감상했다. 70년대까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200년도 더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비좁고 비위생적이었다. 왜냐면 그 당시까지 아파트에 화장실과 샤워시설 등은 공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재개발사업에 착수해서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건데 홍보용 영상으로 당시에 제작된거다 보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이 많았다. 새로 지어진 집에서 따뜻한 아침을 아내가 들고 등장하고 행복을 앞두고 자녀들과 맛있게 식사하는 가장의 모습.그리고 웃음꽃 만발!!ㅋㅋㅋ 으악 ㅋㅋ 오글오글 그 자체. 

 에딘버러에서 확실히 느낀건 에딘버러에 갔다고 스코틀랜드를 본게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스코틀랜드는 하이랜드, 고지대에 있다. 에딘버러 여행은 잘 짜여진 관광명소를 돌아다니는게 다였지만 하이랜드에서 봤던 아름다운 고지대 풍경과 내가 걸었던 수많은 숲길, 언덕들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공항가기 전에 기념품 가게 구경을 더 했는데 이미 모자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또 모자 구경을 하고 있엇다. 이것저것 써보고 나오려는데 중국여자애가 중국어로 모자를 들고 뭐라 묻는다 -_-; 젠장! 스코틀랜드 사람들만 아니라 중국애들까지 날 중국인 취급해 엉엉 ㅠ_ㅠ 내가 중국인 아니라니까 더 이상 질문을 안한다;; 중국인 아닌거 알았으면 그냥 영어로 물으면 되지 왜 안묻지;; 에딘버러에 중국인민박이라도 있나. 'ㅅ' =3

 공항가는 버스는 웨이브리 다리에서 100번버스인 AIR LINK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3.5파운드. 가는덴 30분. 10분간격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운영한다. 

 런던 히드로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정말 웃긴게 런던행 비행기가 5만원인데 기차가격은 10만원이 넘는다. 이상한 나라다.. 

 비행기 옆자리는 인도 청년이 앉았는데 이것저것 귀찮게 자꾸 말을 건다. 자기 할말만 계속하고 그래서 그냥 가는 내내 자는척 했다. 영화 '세 얼간이' 이야기하니 좋아하긴 하더라.. -_-; 인도는 안갔지만 방글라데시는 가봤다는 이야기하는 별로 안좋아했다. 파키스탄 사람이 아닌게 다행;;;[각주:4]

 런던 히드로에서 런더 페딩턴(Paddington??)역까지 가는 특급열차가 있고 페딩턴에 내려서 다른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는 런던 커넥션열차도 있는데 숙소인 러셀 스퀘어까지 가기 위해서 런던 커넥션 티켓을 샀다. 가격은 20파운드정도 한거 같다. 숙소는 대영박물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와이파이가 40분만 무료다. 속좁은 잉글랜드놈들! 스코틀랜드 최고! 헠헠;;
 
 Common room에서 멍때리고 있는데 동양인 여자애가 말을 건다. 이름은 미미. ㅋㅋ 봉미미도 아니고. 미미면 옛날에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여자애들용 인형이었는데. 미미쨔응이라니 ㅋㅋ 생긴게 대만사람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캐나다 출신. 대만사람이라 생각한 이유는 얼굴이 중국인 얼굴인데 머리 스타일이 일본스타일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이야기해보니 15살까지 대만에서 살았단다. 역시 그럼 그렇지.
 같은 동양인이라고 살갑게 말거는거 보니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도 했나싶었다;;나보고 몇번 방에서 자냐 묻길래 혼자 여행하나 싶어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래서 런던 관광지 몇군데를 같이 가기로 결정! 호스텔에서 여행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는 참 별거 없는거 같다. 달이 많이 기운 후에야 잠이 들었다. 잠자리는 불편했다. 침대가 내 키보다 작았다. 서양 사람들중에 키 180이 우습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2미터의 장신들도 많은데 왜 침대 크기가 이렇게 작은지 모르겠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자세로 쪼그려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잉글랜드 여행이 시작됐다.

  1.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체제를 유지하다가 1707년 연합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본문으로]
  2. 라기보다는 모르고 보면 그냥 지루하다는 생각만 가질듯. [본문으로]
  3.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죽으면서 외친 유명한 대사. [본문으로]
  4.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벌여서 독립했다. [본문으로]
 영국도 당연히 솅겐 조약[각주:1]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코펜하겐에서부터 출국검사를 하는거 보니 아차 싶었다.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티켓 끊어주는 직원이 나보고 비자가 있냐길래 그냥 스웨덴 거주허가증을 보여주니 통과시켜줬다. 에딘버러로 가는 내내 혹시 영국 방문하려면 따로 비자를 사전에 받아야되던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고 영국도 다른 여타 국가처럼 얼마간(아마도 90일?)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었다. 에딘버러 공항은 꽤 소규모의 공항으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이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스코틀랜드 영어 억양에 대한 악명은 익히 들어왔지만 스코틀랜드 사람과 이야기해보는 적은 없었다. 스코틀랜드 억양은 종종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사용되는데, 다음 영상을 추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5FFRoYhTJQQ) 엘리베이터 음성인식기가 스코틀랜드 영어를 못알아듣는다는 내용인데 많이 과장된거겠지만.. 막상 대화해보니.. 음.. 어쩌면 저 음성인식기 오류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흰머리 입국심사관이 이것저것 묻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로 이야기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_-;; 스코틀랜드 영어는 내 귀에 어떻게 들리냐면, 잉글랜드 영어 음성에서 중고음부 음역대를 다 깎아버려서 저음부만 남은, 웅엉웅엉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뭐 어찌어찌해서 일정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해줘서 통과를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100번 Air Link 버스를 이용하는데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10분간격으로 버스가 있고 가격은 싱글 3.5파운드, 리턴 6파운드이다. 공항에서 타면 거의 모든 관광명소가 다 모여있는 The Royal Mile 바로 코앞 Wavely Station이 있는 Wavely Bridge에 내려준다. 시간은 30분정도 걸린다. 

 에딘버러에 대한 첫 인상은 "아 여긴 급이 다르구나..."였다. 웨이브리 다리에서 보이는 로열 마일의 웅장한 모습이란.. 일단 오늘의 에딘버러 방문은 내일 하이랜드로 가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숙소로 갔다. 

 숙소 리셉션 여직원은 양 눈썹에 송곳 비슷한 피어싱을 한 고스족[각주:2]으로 사뭇 악마의 뿔이 생각나기도 했다. 호스텔은 굉장히 소규모로 아늑했는데, 단점은 주방이 좀 작았다. 취사공간도 한곳 밖에 없어서 한참 기다려야되고. 

 주방에는 중국인 여자애들 세명이 중국인 종특인 소란스럽게 떠들기 스킬을 시전해서 왁자지껄했다. 한국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도 그렇고, 일본에서, 유럽 곳곳에서, 스웨덴 학교에서 본 중국인들도 하나같이 소란스럽게 떠드는데, 중국어 자체가 성량이 크지 않으면 대화하기 힘든 언어인가 싶가? 하는 의문도 들고 소리 크게 내어 이야기하는거 자체가 하나의 문화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뭐.. 중국사람은 이런 특성때문에 어딜가나 50m 떨어져있어도 한 번에 중국인이라는걸 알 수 있는거 같다. 뭐ㅋ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이 다 그런건 아니다. 내가 아는 중국애들 몇몇은 정말 말도 잘 안하는 성격이니까.

 방에 가니 캐나다에서 온 커플이 있어 이야기를 좀 하게 됐는데 유럽배낭여행중인데 그냥 도시만 정하고 세부일정은 없이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에딘버러에서도 뭘 해야될지 모르겠단다. 바닷가 이야기가 나와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수다를 떨었는데 알고보니 옆쪽 침대에 있던 또 다른 커플이 프랑스인이었다. 또 한바탕 이것저것 이야기 하나보니 밤이 깊어 잘 시간. 그런데 폰 충전을 하려고 보니 영국은 플러그 모양이 다르다.. 내가 가본 유럽 국가들 모두 우리나라랑 똑같은 전압을 쓰길래 영국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특이한 3구짜리를 쓰는데 어댑터를 어디서 사야될지 고민이 됐다.

다행히 캐나다애들이 어댑터를 가지고 있어서 그 날밤은 무사히 넘겼는데 그 다음날 인버네스에서는 고생을 좀 하게 됐다. 

 다음 날 아침에 인버네스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데 왕복 티켓이 57파운드.. 우리 돈으로 10만원은 한다. 기차로 3~4시간 가량 가는 거리인데 KTX처럼 빠른것도 아니면서. 유럽에 살면서,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거지만 우리나라 교통운임을 정말 싸다. 유럽은 버스비,지하철비가 죄다 5천원,만원 이런식이고 기차값도 5,6만원씩 하니 기절할 지경.


 인버네스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수도로 지도상의 'A'지점에 있다. 에딘버러와도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있고, 런던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다. 정말 영국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다.


 하이랜드에 온 이유는 하이킹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딱히 경로 계획같은게 없었다.그래서 그냥 언덕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고 나중에 확인해본 나의 여정은 위 지도와 같다. 참고로 굳이치는 산들과 고지대를 보려면 더 북쪽에 있는 isle of skye를 가야되는데 접근성이 너무 안좋고, 투어를 이용하기엔 돈이 없어서 포기했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게 좋을듯? 나는 인버네스에서만 머물렀지만 기차타고 가는 4시간 가까이 입 벌어지는 풍경들을 계속 봤기 때문에 만족한다. 
 


 인버네스의 상징적인 이 다리는 굉장히 독특한 다리다. 왜 독특하냐면 걸을 때 다리가 흔들린다. -_-; 분명히 튼튼한 철골구조로 보이는데 흔들린다. 어떤 느낌이냐면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그걸 양쪽 끝에서 엄청난 힘이 억지로 꽉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 그래서 움직일때마다 다리가 흔들거리려고 하는데 어떠한 힘에 의해서 저지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눈꽃송이 모양의 장식. 건너편에 보이는건 인버네스 대성당(아마도).
 


 길거리는 뭐 대충, 이렇게 생겼다. 고층 건물도 없고 정말 조용한 동네이다. 인버네스엔 성이 있는데 성의 보존상태가 너무 좋아서 성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고 올라가보진 않았다. 
 


 중간쯤 올라와서 바라본 인버네스. 외곽엔 B&B로 가득차있다. B&B란 Bed & Breakfast로 영국에서 흔한 숙박업소 형태다. 일종의 민박이라고 보면 되고 주차공간도 제공하고 ensuite room이므로 가족단위로 온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고 싶어 다가가니 이미 닭둘기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옷(깃털)까지 훌훌 벗어던지고 배를 보이며 자고 있었다.. 아니 죽어있었다... -_-;
 


 몇시간을 걸었다. 경로를 정하고 간게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나오길 여러차례.. 언덕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언덕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안보였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났다. 저 사진의 하얀 상자(utility box일까?) 에 앉아있던 노인은 지나가는 나를 불러세웠다. 노인은 영어인지 게일어인지 알 수 없는 극악의 억양과 발음으로 뭐라 주절주절하는데 나에게 "~~~를 찾고 있는가."라고 묻더니 대답도 안들어보고 혼자 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는 ~~마일 밖에 떨어져있네." 하면서 지금 가는길로 가지 말고 오른쪽 옆길로 가란다. 정말 하나도 못알아들어서 그냥 알아듣는척 하고 가던 길 가려했더니 이 길이 아니라 옆길이란다;; 어쩔 수 반 강제로 옆길로 가게되었다.
 

 아무리 봐도 집만 몇채 있고 그 너머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인의 성화에 못이겨 계속 가보기로 했다. 
 


 숲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왔는데 하나는 더 위로 가는거고 하나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위로 가는 길을 보니 출입통제 마크가 붙어있고 폐가까지 있어서 갈 엄두가 안나 내려가려 했는데 노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노인에게 안들키고 내려갈 생각을 궁리하다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이 먼거리에서 날 찾은거지;; 

 그때 노인 앞으로 버스가 한대 지나쳤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노인은 없었다.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그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범상치 않았던 노인의 미소가 떠오른다.
...은 사실 버스타고 집에 감;;; 가서 축구봤을듯;;;

 아무튼, 노인의 매의 눈빛으로 내려가는 길을 저지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입금지 구역을 뚫고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끝없은 언덕을 넘고 넘었다. 노인이 뭘 알려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찾던 전망 좋은 언덕임은 확실했다. 마지막에는 온 힘을 향해 달렸는데 그 끝에는 아래와 같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나무의자. 앉아서 인버네스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왼쪽 사진이고 오른쪽으로 한참이나 풍경이 더 이어지는데, 참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앞에 보이는 바다는 다름아닌 북해다. 이 마을 가운데 흐르는 강은 그 유명한 네스호의 일부인데 네스호는 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있는 이 언덕 바로 뒤에 펼쳐져있다. 네시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려졌는데, 어릴적에 책에서 봤을 때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때는 세상이 온갖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먹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생기다보니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론 아쉬웠다. 진짜였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네스호는 인버네스에서 버스타면 정말 금방 갈 수 있는데 가진 않았다. 어차피 난 이미 네스호의 일부를 보고 있고, 네스호가도 봉제인형 하나 띄워두고 "이게 네시란다." 라고 할거 같아서 혼자 킥킥 웃기만 했다.
 


  바로뒤에는 검은 숲이 있었는데 얼마나 오싹한지, 숲 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오는 듯 했다. 한 번 들어가볼가 했는데 주위에 출입을 막기 위해 쳐져있는 펜스들도 있고,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포기했다. 앞에는 평화로움이, 뒤에는 으스스함이 있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몇 번이고 느끼는거지만 나는 자연이 좋다.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도 파리를 버리고 노르망디로 간 이유도 파리의 도시적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다시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 가운데에는 이처럼 폐가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폐가는 그냥 말그대로 버리고 가버려서 탈선의 장소로 이용된다던가, 범죄의 온상 등이 되고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있는 반면에 이 곳 폐가는 저렇게 철저하게 모든 문, 창문을 봉쇄해놔서 그런 것들을 사전에 방지해놨다. 



 인버네스에서는 외지인, 특히 유색인종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내가 갔던 방글라데시나 우리나라의 불과 10여년 전 모습처럼 외국인이 지나가면 "우워워워어 외국인이다!!"하며 오도방정을 떤다던가, 신기하게 쳐다본다던가 하는건 없지만 그대로 한 번씩은 쳐다본다.

 인버네스에서 나는 영어 못하는 중국인이 되었는데 스코틀랜드 하이랜더들의 반응은 사뭇 웃기면서도 황당했다. 하이킹을 하면서 주택가를 지나갔는데 차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차 안에는 할머니 한 분이 타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갈 때 차 문을 급히 잠구는 것이 아닌가. 척! 하는 소리에 "저는 중국인 갱이 아닌데요;;"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좀 그랬다.

 
 하이킹 끝나고 돌아올 때 이미 6시가 넘어서 마트가 문을 닫아서 도미노 피자를 갔다. 도미노 피자에서도 알바의 말을 못알아들어서 정말 고생했다. 도대체 이게 정말 영어가 맞긴 한가. -_-; 도미노에서는 한판 사면 한판을 더 주는 1+1 행사를 하고 있길래 텍사스 bbq피자를 시켜서 룰루랄라 호스텔로 들고왔다. 그리고 열어주니 짜잔!! 젠장!! 누가 씬피자 달랬어..
 ㅠ_ㅠ 이건 도우가 하나도 없고 그냥 토핑만 있는 수준이었다.

 심슨가족 어느 에피소드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윌리가 시모어 교장의 계략에 속아넘어가서 이용당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You used me!" 하면서 울부짖는다. 이 장면이 생각해서 혼자 계속 킥킥댔다. 스코티쉬 놈들이 날 이용했어.. 흑ㅎ그..

 피자 나오길 기다리는데 10대 남자애 두명이 와 주문을 하고나서 날 보더니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네 학교에 중국인이 있는데 걔가 뭔가 사고를 쳐서 애들한테 두들겨 맞았다느니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_-;

 피자가게 오기전 언덕 주택가에서는 한 가족이 놀고있었는데 꼬마가 날 보더니 'chink'(중국인 비하하는 말.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는 짱개정도?) 가 지나간다고 소리쳤다. 애 부모가 날 힐끗 바라보는데 뭔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중국어 배워서 진짜 중국인인척 해야겠다.. 짱개라고 놀려대면 "아편 전쟁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빌어먹을놈들!"하면서 마구마구 때려주던가 해야겠다. ㅠ_ㅠ 

 호스텔에 도착하니 피로가 밀려왔다. 족히 6시간은 넘게 걸었다. 호스텔 직원은 스코틀랜드 억양.. 아니 발음의 절정을 보여줬는데 보증금 문제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니 나보고 "와워자나임?"이라 묻는다. 나임? 나인? 보증금이 10 파운드기 때문에 보증금 9파운드 맡겼냐는 질문인줄 알았고 10 파운드라 하니 다시 되묻는다. 생각해보니 나임이 아니라 name이었다.. -_-; What was your name? 나임과 네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발음. 

 그 날 밤엔 파티가 있었다. 덴마크산 칼츠버그 맥주가 페트병으로 제공되는 평범한 파티였는데 스코티쉬랑 스코틀랜드 영어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잉글랜드 사람들도 못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내가 영어를 못하는게 아니라고 조언해줬다. 스코틀랜드 영어는 게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종 단어도 다르게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아일랜드 사람들 발음은 더 이상한데, 발음만 이상한게 아니라 사람들 자체도 이상하다고 귀띔해주길래 한 때 아일랜드 역사에 빠져있었던 내겐 그냥 헛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이건 런던에서 일부 사실로 증명되었다.. -_-;
  
 잠자리에 들 때 문득 꽤 많은 '젊은' 한국 여행객들이, 호스텔이 아닌 한인 민박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차피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는 그들만의 문제라서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견문을 넓힌다는 견지에서 보면 한인 민박은.. 글쎄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 사람들과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해봐야되는거 아닐까. 뭐 그냥 가서 사진만 냅다찍고 "나 영국 갔다옴ㅋㅋㅋㅋㅋㅋ" 이러는게 목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그냥 그렇다.

 술기운 덕분에 늦잠 잘 줄 알았는데 왠걸, 새벽 5시에 깼다. 3시간도 못잤다. 하지만 첫 기차타고 에딘버러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길을 나섰다. 새벽 6시 47분. 인버에스에서 에딘버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1. 유럽 국가들이 맺은 국경 최소화 조약. 다른 나라로 넘어갈 때 출입국 검사를 안하는 이유가 이 조약때문이다. [본문으로]
  2. 고트족이 아니라 고스족.. 고스로리가 아니라 그냥 고스족이다.. -_-;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