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아기 울음소리로 깼다. 분명히 어느 방에선가 아이가 울고 있었는데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려는 순간까지도 울음소리가 들려서, 너무나 이상해서 한 번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2층의 다른 객실이었다. 이곳에선 게임 히트맨에서나 보던 열쇠구멍[각주:1]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열쇠구멍 사이로 보니 나이가 40대는 넘어보이는 여성이 침대위에서 자고있고 그 위에 아기가 올라타 울고 있었다. 어떻게 아이가 저렇게 우는데 잠에서 안깨어날 수 있지? 주인 부부 내외도 분명히 그 소리를 듣고 있을텐데 별다른 언급이 없다. 오옷.. 이것이 바로 이 마을의 숨겨진 비밀~ 뭐 이런건가. ㅎ_ㅎ 는 망상이고..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제 밤에 도착한 프랑스에서 뭔가를 -_-;[각주:2] 공부하는 양키 커플 한쌍이랑 같이 주인 아저씨 차 타고 몽생미셸로 떠나기로 예정 되어있었는데 잠깐 짬을 내서 동네 구경을 나갔다.
 


 유럽에 여행다니면서, 스웨덴에 살면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덕에 심즈에서 집짓는 기술도 늘었다. -_-; 아무튼, 석조건물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좀 멀리 나가려던 차에 아저씨가 날 부른다. 늦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차를 타고 어제 밤 자전거를 타고 갔던 길을 순식간에 쌩쌩간다. 확실히 불빛하나 없는 밤의 노르망디 라이딩은 위험한 짓이었다.
 


 아침의 몽생미셸은 또다른 느낌으로,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가던 즈음에, 그 커플과는 각 길을 갔는데 멀리서 아침에 들었던 정체 모를 아기 울음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같이 이야기 좀 해볼껄 그랬다. 
 


 수도원은 꼭대기에 있고, 입장료가 학생기준 5.5유로다. 몽생미셸을 굳이 세 부분으로 나눠본다면, 공성전용으로 구축한 외성과 성벽들, 주거지역[각주:3] , 그리고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이리저리 미로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고 관광객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 통로를 밧줄이나, 문을 닫는 식으로 출입을 막아놔서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놨다. 이 곳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썩 아름답진 않지만 가장 처음 보게되는 예배당엔 실제로 사제들과 수녀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 외적인 면을 보완해 주었다.
 


 기념품 가게는 엽서부터 몽생미셸 모형까지 팔고 있는데, 특이하게 노르망디 해변이다보니 범선 모형도 판다. 흔히 알고 있는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지던 대항해시대[각주:4] 때 사용되던 카락이나 갤리온 모형을 파는데 수집욕을 억누르느라 고생했다. 중세시대 유적답게 십자군 피규어도 팔고 있는데 정교한 것은 사이즈도 크고 정말 사실적이었다. 
 
 심지어 여기선 중세시대 검도 팔고 있는데, 검까지는 괜찮다. 여기선 총도 판다. 물론 가짜 총이겠지만 퀄리티가 대단하다. 그런데 18,19세기 드라군 기병용 권총[각주:5]까진 이해해도 20세기 너머의 M1 개런드[각주:6]나 MP44[각주:7], M1911 콜트 권총까지 파는건 좀 황당했다. 가격이 괜찮아서 한 번 살까 했는데, 이 총을 들고 공항에 가서 보안검색을 통과할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니 암담해졌다. -_-; "몸에 벨트나 휴대폰같은거 있으면 꺼내주세요." 라는데 
"잠시만요.. 총이 있어서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총을 스윽 꺼낸다고 생각해보라.. 검문 검색이 심한 미국에선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도검이나 총은 그림의 떡이었고 접시에 몽생미셸을 그린 공예품과 십자군 기사 피규어를 하나 샀다. 홉스봄[각주:8]의 책을 읽은 그 이후부터 현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들[각주:9]을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에펠탑은 확실히 최근[각주:10]에 만들어진 것인데 19세기 후반에 에 관광지화가 시작된 몽생미셸에 저런 현대식 무기들이 팔리는걸 보니 뭔가 이상했다. 게다가 알고보니 현재의 몽생미셸 모습은 20세기에 또 다시 다듬어진 것이라 한다. 최초의 9세기 몽생미셸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섬에 허름한 수도원 하나 뿐이었다. 그런 점에선 몽생미셸도 '만들어진 전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긴 일본인이 정말 많이 오는데, 점심 쯤 다 둘러보고 나가려고 밖에 나오니 정말 끝이 안보이는 관광버스에서 엄청난 수의 일본인들이 내렸다. 끝없는 일본인들의 행렬은 노부부들 깃발투어[각주:11]가 아니라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구성도 다양했다. 

 의외로 한국 사람은 나 빼고 단 사람도 없었다. 중국인은 서너 명 무리가 있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유럽여행 풍토가 남들이 따라간 코스 그대로 다라가는게 태반이라, 나같이 파리를 버려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는 여행에서 한국인 만나는게 어려운 일인건 당연한 듯 하면서도,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사람이 적은건 아닌데, 단 한 명도 없는건 좀 의아했다.

 몽생미셸에선 종교적 경건함에서 오는 숙연함이나 그런건 없었다. 단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듯한 기분에 넋놓고 하염없이 건물 구석구석을 살펴봤을 뿐. 

 몽생미셸에서 오믈렛이 처음 탄생했다고 하는데[각주:12] 여기 오믈렛 가격은 한화로 5만원이 넘는다. 아니, 오믈렛만 그런데 아니라 싸구려 콘 아이스크림조차 5천원 가까이 한다. 우리나라에선 외국인 상대로 어떻게든 사기쳐서 돈 많이 뜯어내려고 내국인/외국인에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각주:13], 여기선 그런거 없이 당당하게 말도 안되는 가격을 메뉴판에 걸어놓는다. 아 이 당당함. 나는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그 가격에 굴복하고 3유로짜리 싸구려 바게뜨 빵을 사먹었다. 구석에서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나보고 마실게 필요하냐고 묻는다. 내가 Is it free? 라니까 아니라고 "젠장! 이 자식 눈치 좀 보소 ㅡㅡ" 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 내가 콜라 마시고 나면 "먹었으니 돈 내! 공짜라곤 하지 않앗어." 라고 했으려나.

 돌아갈 즈음 되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가게엔 직원들끼리 열심히 수다를 떤다. 엽서 하나를 사는데 옆 사람과 수다떨면서 그냥 가격표를 재빨리 찍고 돈 받고 대충 인사하고 날 보낸다. 뭐, 이 유명 관광지도 사람 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장사하고 저녁되면 문닫고 집에 가고.

 입구에 엄마가 사준 갤리온 모형을 꺼내들고 아주 흡족한 모습을 짓고 있는 4살정도로 보이는 꼬마애를 봤는데, 정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은 처음 봤다. 이 꼬마에게 지금 이 순간은, 몽생미셸의 경건함도, 십자군 시대의 어두움도, 리비아 사태도,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는 듯  했다. 오직, 엄마가 사준 이 갤리온 배가 세상의 전부인양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렌으로 가는 익스프레스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배차 시간이 너무 늦어서[각주:14] 퐁토르송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퐁토르송에선 캉(Caen)을 거쳐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TGV가 아니라서 시간도 5시간이 넘게 걸리고 가격도 40유로 정도 했다. TGV를 안타는 대가로 25유로를 절약하다니. 꽤 괜찮은 거래였다.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봄의 낭만적인 노르망디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들과 드넓은 평원을 보자니 가슴이 후련해졌다. 같은 자리 앉은 프랑스 꼬마애가 인형가지고 난리치느라 바쁜 와중에 나는 그 여러 시간동안 창문 밖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기차는 생 로(St Lo)와 캉(Caen)외 10곳도 더 되는 역을 거쳐 파리에 도착했다. 앞의 두 도시는 참 익숙해서[각주:15]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도착한 파리는 여전히 침침하고 우울한 분위기였는데, 다시 알로하 호스텔로 갔다. 호스텔은 더욱더 칙칙해져서 파리 관광할 마음도 안들고, 룸메이트와 잡담할 생각도 없어져서 로비에서 밤이 깊을 때까지 인터넷만 했다. 그 다음날 다시 지하철과 RER B를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짐 하나가 목록에 없는 것이 더 올라와있어서 보안 검색을 하느라 30분 넘게 이륙이 지연되었는데, 저가 항공사의 단점이 이런건가 싶었다.[각주:16] 덴마크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문을 들어서는 그 수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스웨덴 내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딱 1시간 5분 가량이 걸렸다. 외레순 다리 접근성의 위엄에 감탄하며 나의 프랑스 여행을 그렇게 막을 내렸다. 


  1. 히트맨에선 방문 너머를 살펴보기 위해 열쇠구멍을 이용한다. [본문으로]
  2. 음향악?? 철학? 미학? 기억이 안난다. [본문으로]
  3. 지금은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뿐이다. [본문으로]
  4. 15세기~16세기 [본문으로]
  5. 사실 드라군 권총도 여기에 있기엔 좀 이상하다. 대혁명 이후 관광지로 개방되기 전까진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2차대전 미군 제식용 소총. [본문으로]
  7. 2차대전 시기 독일군이 사용하던 기관단총. [본문으로]
  8. 영국의 사학자. OO의 시대 시리즈로 유명하다. 자본의시대 혁명의시대 뭐 이런거; [본문으로]
  9. 홉스봄의 저서 <만들어진 전통> [본문으로]
  10. 나에게 19세기는 최근이다. [본문으로]
  11. 길 안잃으려고 선두가 들고있는 깃발만 보고 졸졸 따라가다가 결국엔 여행가서 남는 기억이 깃발밖에 없는 여행 [본문으로]
  12. 나도 다른 블로그에서 본거라 사실인지는 모른다. [본문으로]
  13. 택시비 사기치는 것도 있고. [본문으로]
  14. 4시 30분이었던가? 나는 점심쯤에 자리를 떴다. [본문으로]
  15. 2차대전 관련 게임으로 8년전에 미리 접했다. ㅋㅋㅋ [본문으로]
  16. 덴마크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도 10분정도 늦게 이륙했다. [본문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는 생각지 못한 분위기[각주:1]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반면, 파리에 대해선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파리가 단지 잠시 머물다가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것 또한 배경지식 때문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쯤 코펜하겐에서 출발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허탈할 정도로 쉬운데, 스웨덴 내 집에서 걸어나와서 코펜하겐 공항에 딱 들어가는 순간까지 1시간이 안걸렸다. 미리 적어두는데, 귀국하는 길에는 시간을 재봤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의 비행기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스웨덴 집 안까지 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10분. 외레순 다리 덕택[각주:2]에 참 편하게 산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려 RER B[각주:3]를 타고 숙소인 ALOHA HOSTEL까지 갔다. RER이 바로 코앞까지 가는게 아니라 6호선과 12호선을 갈아타는 수고를 했는데, 환승하면서 살펴보니 기차를 타는 몽파르나스 역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래서 숙소를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철도 근처는 온갖 쓰레기와 오몰로 넘쳐나고 담장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그래피티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되고 낡았는데 북유럽처럼 품위있게 낡은게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산다.'라는 느낌으로 낡아서, '지저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로 진입하면서 파리 빈민가를 보게 되었는데 빈민의 상징 아파트 규모에 놀라고 그 위생상태에 더더욱 놀랐다. 그렇게 큰 규모의 복도식 아파트는 처음 봤는데 가로길이가 세로길의 몇배는 되는거 같았다. 게다가 베란다와 복도를 점거하고 있는 온갖 기물들이 마치 몇년 전 인터넷에서 접한 중국 대학교 기숙사같은 느낌이었다.

 제일 처음 접한 유럽 국가가 스웨덴이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스웨덴이 정말 빈부격차가 없고 전체적인 삶의 질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스웨덴에 살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가난하다'던가의 느낌이나 이 사회에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파리는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프랑스인들이 스웨덴인들과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특징은 바로 '매부리코'라는 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옆에서 본 코의 각도가 30도,60,90도를 이루는 완벽한 직각삼각형처럼 보이기도 한다.[각주:4]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아코디언 음악 소리가 들린다. 모로코인지 알제리인지, 어딘지 모를 북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이민온 베르베르인[각주:5] 남자가 애절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돈 구걸. 이것이 바로 예술의 도시 파리란 말인가.[각주:6] "오 예수 영광영광" 거리는 CCM 테잎을 틀거나 녹음된 연주곡을 틀며 구걸하는, 종점만 가면 눈이 뜨이고 다리가 정상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사기꾼 구걸인과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각주:7]

 지하철에 내리니 본토 흑형들이 폭풍간지가 아닌 불꽃간지를 뿜으며 돌아다녔다. 주렁주렁 수 많은 피콕킹용 장식을 하고, 선글라스, 타이트한 핏의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터질듯한 근육. 파리 어느 클럽에서 양사이드에 여자 둘 끼고 놀거 같은 느낌의 흑형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태원에서 만났던 나이지리아 흑형[각주:8]들이 찌질남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낭만의 도시. 'ㅅ'

 해는 이미 지고 거리에 사람은 없어져서 분위기도 으스스 했다. 왠지 파리 구석진 빈민가로 가면 부랑자들이 석유통에 불피워놓고 있을거 같다. 그러다가 묘한 향을 풍기는 남자가 오면 잡아먹고 그럴듯.[각주:9] 다른 구역에 가면 무섭게 생긴 언니들이 껌 짝짝 씹으면서 50유로를 외쳐대고, 근처엔 알바니아계 갱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해서, 파리의 밤거리는 인적이 드물어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범죄자들도 안보인다. -_-; 그냥 아무것도 없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썩은 표정의 베르베르 직원이 날 맞이한다. 아니, 맞이안하고 앞 테이블 여자랑 잡담하다가 내가 오니 전화가 마침 걸려와서 한참이나 수다를 떤다. 항의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뭐 이런게 파리이겠거니 해서 그냥 기다렸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가보니 아이고.. 노르웨이 유스호스텔이 얼마나 품위있는 천국이었는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이놈의 호스텔은 물을 5초만에 한번씩 버튼을 눌러야 나오고, 샤워시설은 더욱 더 엉망이라 찬물 뜨거운물이 랜덤이다. -_-; 역시 이것이 바로 현대 파리의 모습이군.

 방엔 오스트리아에 교환교수인지 교환연구원인지, 어찌되엇던 exchange study를 하고 있다는 중국 마취전문의(의..의느님!)가 혼자 빵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에펠탑을 보러 나갔다. 숙소가 에펠탑과 매우 가까이 있어서 20분만에 도착했는데, 역시 유명한 관광지는 달랐다. 그 대단한 웅장함은 분명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르겐 송네 피오르드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사뭇 닮아있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공원부터 에펠탑까지 매우 많은 수의 관광객이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있었다. 모두 나처럼 에펠탑의 야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술에 취해서 관광객들을 비웃는 무어인들 몇명을 피해 에펠탑에 좀 더 다가갔는데 베르베르 청년 한 명이 에펠탑 모형이 단 돈 1유로[각주:10]라면서 물건을 판다. 출발하기 전 마취의가 블랙맨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 잡상인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베르베르인은 그렇게 블랙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앞쪽에 더 많은 수의 잡상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거긴 흑형들도 있었다. 베르베르,무어[각주:11],흑형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이루는 잡상인 무리는 한 눈에 봐도 이들이 불법체류자라는걸 알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돈 많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구해 가족끼리 오손도손 모여 살고 싶은게 삶의 목표가 아니라 마약 살 돈이 급해보이는 그들이었다. 

 에펠탑 전망대는 구간별로 요금이 다른데 학생요금[각주:12]으로 8유로 정도 냈다. 구간은 옥상 끝까지. 에펠탑의 특징은 1층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과 2층 전망대라 부르는 상대적으로(-_-) 낮은 높이까지 걸어서 올라가야된다는 것이다. 체력이 안좋은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중간에 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지상에서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려올때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르겠다. 자세히 안봐서.

 고난의 행군 'ㅅ'; 을 마치고 옥상에 도착하니 파리 야경이 한 눈에 보인다. 계획도시답게 구획이 잘 나뉘어져 있다. 아름답다. 그 말 외에는 더 이상 생각이 안났다. 내려오는 길에 에펠탑의 철골 구조를 멍하니 한참이나 쳐다봤다. 엄청 꼼꼼하게, 빈틈없이 이어져있는 디자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대지진으로 한참 시끄러운 터라, 파리에 대지진이 나도 에펠탑은 미동도 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중국 마취의는 사라지고 슬로바키아 여자애가 덤덤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크리스는 슬로바키아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살았고 지금은 휴학하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와있다고 한다. 호스텔에 있는 이유는 살 집을 구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셈. 파리 집값이 너무 비싸서 아파트 쉐어[각주:13]만 해도 한달에 100만원이 넘게 깨진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계약을 하려면 부모님 소득같은 것도 일일이 다 적어야 한다며 불평했다. 여행을 온게 아니기 때문에 내일 일요일엔 할 일이 없다면서 나보고 할 거 없으면 자기랑 놀러가잔다. 내가 내일 노르망디로 떠난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했다. 마렉 함식[각주:14] 이야기도 했는데 잘 모른다. 역시 여자들은 축구를 그리 안좋아하나 보다. FM하면 마렉 함식부터 영입하는게 진리이거늘 'ㅅ' =3

 아침엔 나 혼자 일찍 깼다.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주는데 싸구려 바게뜨와 버터, 그리고 시리얼이 제공됐다. 혼자서 구석에서 순대국 먹듯이 쳐묵쳐묵[각주:15]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몽파르나스에 가서 생 말로로 가는 기차를 끊었다. 가격이 65유로 -_-; TGV로 3시간 걸리는 거리고 파리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닌데, 내 비행기 티켓값이 10만원이 안되는걸 생각해보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리고 9시. 드디어 프랑스 여행의 목적지인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일본엔 파리병이란게 있을 정도로 환상이 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프랑스 파리에 대한 환상이 심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현대 프랑스 파리는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음침하고, 구질구질하고 꽤나 우울한 도시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낭만의 프랑스는 노르망디나 남프랑스같은 곳에 가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여행지를 그곳으로 정하기도 했고.












  1. 생각외로 글로벌해서 놀랐다.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서 오슬로는 더 이상 백인들의 도시가 아니다. [본문으로]
  2. 2000년대 개통된 덴마크-스웨덴을 잇는 거대한 다리. [본문으로]
  3. 지하철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추측컨대 EXPRESS의 개념 아닐까. [본문으로]
  4. 첨언하자면 머리새도 다르다. 스웨덴인들은 금발인데 프랑스인들은 짙은 갈색. [본문으로]
  5. 북아프리계 토착민. 북아프리카가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이민(합법, 불법 모두..)자들이 파리에 건너와서 산다. 리비아 문제에 프랑스가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 [본문으로]
  6. 라고 하지만 솔직히 좀 조소에 가까운 말. [본문으로]
  7. 사족으로, 우리나라 지하철 구걸계의 전설은 역시 '안산 사랑의 집'인거 같다. [본문으로]
  8. 이태원에 가면 나이지리아 출신인데 미국 출신인척 하는 흑인들이 많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미국 흑인을 더 좋아해서 그런다고 한다. [본문으로]
  9.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 이야기. [본문으로]
  10. 한화 약 1700원 [본문으로]
  11. 베르베르계이지만 혼혈이란 점에서 다르다. [본문으로]
  12. 학생증 검사를 안한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듯. [본문으로]
  13. 방 세개짜리 아파트가 있다고하면 방 하나를 쓰는것. 다른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하고.대도시에선 꽤 흔한 듯 하다. 미국이나 호주 유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본문으로]
  14. 슬로바키아 출신 축구 선수. 세리에A에서 뛰고 있다. [본문으로]
  15. "니들 순대국 먹을 땐 구석에서 죄지은듯 고개숙이고 먹어라" 라는 고파스 명언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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