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9시에 칼같이 눈을 떴지만 오후 1시 수업까지 좀 애매하다 싶어 다시 잤다.  점심 즈음엔 중도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셨다.

 LTH에서 'en kaffe[각주:1]' 하면 'fem krona[각주:2]'라는 답을 받으면서 깔끔하게 계산을 하는걸 보고 그대로 따라했었는데, 여기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en kaffe 했더니 뭐라고 되묻는다. 하긴 전에 샐러드 달라고 하니 vad salad[각주:3]? 라고 되묻더라. 샐러드가 샐러드지 뭐 -_-; 뭔가 더 있나보네. 아무튼, 정신차리고 vad sa du[각주:4]해서 들어보니 lite eller ???[각주:5]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 lite는 little인데 수업시간에 참 많이도 들었던 단어다. 그럼 eller 뒤에는 큰거라는 뜻이겠네. 살펴보니 커피 잔이 작은게 있고 큰게 있었다. LTH에선 카운터에서 바로 잔을 볼 수 있지만 여기선 앞의 미묘한 장애물덕에 무슨 컵을 들고 있는지 볼 수 가 없기때문에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 liten이라고 말하고 계산을 하는데 10 크로나란다. 뭐야 이 날강도들은; LTH에선 단돈 5 크로나인데. 여기 커피는 아라비카산 고급원두를 스웨덴 장인이 한방울 한방울 한약달이듯이 만들었나;; 하지만 영어 한마디 안쓰고 스웨덴어로만 계산을 끝낸다는 점은 뿌듯했다. 하아 불법체류하다가 시민권이라도 받은 기분이야. 레인펠트도 나를 쫓아내진 못할 것이다.[각주:6] 

 수업들어가니 20명 정도의 애들이 있었다. 2주전엔 시작이 4명이었는데! 오늘은 즐거운 문학시간. 문학 교수님 수업은 토론으로 시작해서 토론으로 끝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구식 토론수업의 결정체. 정말 끊임없이 물어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만든다. 하아 -_- 이런게 인문학 수업이지. 09년 2학기 들었던 고전강독 수업 이후로 다시금 맛보는 괜찮은 수업이다. 이런 것과 달리 LTH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은 일방적인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수업이 쭉 겹쳐서 같이 다니는 애 말로는 끔찍하단다. 퀘백에선 공대 수업도 학생들이 책을 읽어보고나서 궁금한 점을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해 답변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데. 나는 러시아 억양 영어로 열심히 PPT를 읽는 노교수님의 강의나 신병교육대 교관처럼 몰아붙이는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질렸다. 차라리 연습시간 조교한테 배우는게 더 낫다. 

  문학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누구나 다 아는 명제로 시작된 수업은, 노동계급 문학이 스웨덴에서 중요한 이유, 왜 영향력이 강한가로 이어지고나서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만약 자신이 외국인에게 자신의 나라 사회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가를 소개한다면 누굴 소개하겠는가? 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故 박완서 작가가 가장 우리나라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정답이라 느꼈다.
 
 나는 책으로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 고등학교때까진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가 있는 한편의 이야기들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으로 접하고 책은 사회과학,역사,철학같은 딱딱한 것만 읽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보니까 그냥 저쪽 분야가 더 끌려서 많이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읽게 된거 같다.

 교수님은 애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제대로 아는 애들이 없었다. 자기나라 작가를 모르는 이유(라고 쓰고 변명)으론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모른다'같은 궤변부터 시작해서 '우리 천조국[각주:7]은 작가의 국적따윈 보지 않습니다.'같은 미부심 돋는 것까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수업이 잠시 진행이 안됐다. 책을 안읽나 보다. 아니, 책을 안읽어도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오는 몇몇 유명 작가들이 있지 않던가. 흠..

 절정은 지난 영화학 시간에 교수님께 태클을 걸었던 우락부락한[각주:8] 잉글랜드 여자애였는데 교수님이 콕 찝어서 영국의 대표작가는 누가 있니? 라고 하자 "조앤 롤링"이라고 답했다. 아... 해리포터. 맞는 말이다. 해리포터만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교수님은 좀 당황한듯. 아마 찰스 디킨스[각주:9]같은 답변을 원했겠지. 근데 따지고보면 해리포터가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가? 영국은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군.ㅋㅋㅋ 

 잠시 침체기 'ㅅ' 에 빠져든 수업은 수업을 절대 빠지지 않는 미국애가 샐린저[각주:10]를 언급하면서 다시 물꼬를 트게 되었다. 오, 샐린저. 내가 샐린저의 저작들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미국의 각종 음모론에 이 사람의 소설이 연루되어있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각주:11]

 스칸디나비아에는 범죄 소설이 발달했는데, 또 다시 wallander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경향신문이었나? 북유럽 특집으로 북유럽 범죄 소설 소개 기사가 있었는데, 한국에도 번역판이 많이있다 한다.

 수업은 게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게이같은 패션을 하고 있는 애가 자신은 외국인에게 미국 게이를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해서 교수님과 마찰을 빗는둥[각주:12] 이래저래 요란하게 끝났다. 그와중에 나는 주위 애들이랑 곰돌이 푸우에 나오는 로빈이 게이인가 아닌가로 토론하고 있었다. -_-;

 토론식 수업이나, 어학 수업같은건 수강하는 사람이 뭔가 직접 하는게 있으니까 지루하지 않고 좋은데, 일반적인 강의식 수업은 확실히 지루하다. 얼간이 호머라면 boring을 외치고 뛰쳐나갔을텐데. 뭐, 과목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이 있는거 같기도 하고.

 집에와선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 엔딩을 봤는데 아.. 또 떡밥만 던지고 끝났다. 다음 편이 나오는건 좋은데, 좀 확실하게 끝내줬으면 했는데.  다음주부턴 이스터까지 다시 2차 텀을 달려야한다. 그전엔 좀 쉬어둬야지. 

 


 
  1. 커피 한 잔 [본문으로]
  2. 5 크로나 [본문으로]
  3. 무슨 샐러드? [본문으로]
  4.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너는 뭐라 말했는가. [본문으로]
  5. 작은것 혹은 ?? [본문으로]
  6. 레인펠트는 현재 스웨덴 총리.이민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본문으로]
  7. 은 미국. [본문으로]
  8. 겉보기에도 쎄보인다. -_- [본문으로]
  9. 19세기 영국 작가. 올리버 트위스트 하면 다 알듯. 스크루지 이야기도 이 작가 작품이다. [본문으로]
  10.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사족으로 난 이 책을 원서로 읽었는데 욕이 매우 많이많이많이 나오는 관계로 영어로 된 욕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_-;;;;; [본문으로]
  11. 애초에 뭔가 기대하고 읽은건 아니다. [본문으로]
  12. 교수님이 원한건 각 나라의 노동계급 소설,사회상을 반영하는 소설. 뭐 이런거였는듯.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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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의[각주:1] 스웨덴어 구술시험날. 오후 1시에 정보이론 class[각주:2]가 있는데 시험공부하려고 스킵..은 뻥이고 잠깐만 누워있어야지 하고 누웠더니 정말 일어나기 싫어져서 안갔다. 덕분에 시험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수업도 빼먹고. 

 시험은 5명이 주어진 상황이 맞게 이야기하는 거였다. 상황은 같은 기숙사 사는 애를 위한 깜짝 생일파티 준비. 분명히 할 말이 많았는데 긴장해서 말문이 막혀버려서 한 동안 말을 못했다. 그러다가 겨우 말문을 터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주제도 점점 산으로 가면서 편해졌는데, 왠지 평가는 이미 끝난거 같은 느낌. -_-;

 근데 이런 단체 구술시험은 단점이 있는 듯 하다. 두 명이서 대화하게 하면 골고루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데 세 명 이상 대화하게 되면 평상시에도 한 사람은 그냥 듣기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다섯 명이면 더더욱 더.

 마지막에 퓔묘크 드립[각주:3]과 아침에 훈제연어 먹는 소리를 해서 교수님께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F 주진 않겠지? 'ㅅ' =3
 
 



 시험 전에 잠깐 보니 오늘도 역시나 일본관련 행사가 있었다. 여기선 J를 ㅈ가 아니라 ㅇ로 읽기때문에 재팬이 아니라 요판[각주:4]이라 한다. 


 집에 오니 이건 뭐 -_-; 저 카트 두개는 3층 사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 부부가 짐 나를때 쓰던건데 분명히 어제까지 마당에 방치되어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저기 위로 올라간거지? 저 위로 돌아갈 방법은 사다리를 이용하는것 외엔 없다. 게다가 저 가판은 뭐야 -_-; 
 


 한국에 있을때 길거리에 오래된 가게들 간판글자가 한 두개 떨어져서 웃긴 장면이 연출되곤 했는데, 여기도 있었다. NETTO인데 ET가 사라져서 N TO. 멀리서 그냥 보면 IN TO 같다. 그 옆에는 다른 경쟁 마트인 COOP이 있어서 마치 COOP이 여기 있다는걸 알려주는 표지판같아 보인다. 

 내일은 오전 8시에 수업이 있으니 일찍 자야지. 'ㅅ'



 


  1. 딱히 기다린건 아니지만. [본문으로]
  2. 주당 lecture 4시간 class 4시간인데 lecture랑 class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음. class는 조교가 진행하는거 같은데. 연습시간인가? [본문으로]
  3. 픨묘크는 스웨덴식 요구르트인데 우유곽에 담아서 판다. 그래서 스웨덴어를 모르면 우유인줄 알고 잘못 살 수도 있다. 떠먹는 요구르트에다가 물탄 느낌이라 적응하기 참 힘든 음식. [본문으로]
  4. 요판과 야판 사이의 발음. 요ㅏ판 -_-; 볼튼 원더러스의 스웨덴 축구선수 요한 엘만데르도 존 엘만데르가 아니라 요한인 이유는 스웨덴 사람이기 때문이다. '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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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각주:1]에서 듣는 첫 수업을 갔다. information theory. 우리학교에선 대학원 수업인데 여기선 학부수업으로 개설되어 있다. LTH는 1월에 가보고 처음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남자들밖에 안보인다. 이공계 남녀성비가 엉망인건 어디나 똑같구나.

 강의실이 지하 구석에 있었는데 지하가 미로 구조라서 한참이나 헤매다가 겨우 찾아들어갔다. 들어가니 보이는 삭막한 남자들. 인원수는 50명은 넘어보여서 정말 강의 듣는 기분이었다. 인도나 파키스탄 혹은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보이는 펀자브스러운 학생들이 많았다. 아 그 말로만 듣던 인도의 IT 천재들인가. 'ㅅ'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한 열명 가까이 있었다. 중국인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일본인은 본 적이 없고 한국인은 우리학교랑만 교류를 체결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입구에서부터 시끌시끌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내 자리 앞과 뒤 모두 중국학생들 무리가 있었는데 쉬는시간에도 얼마나 시끄러운지, 수업시간에도 소근소근거리고 중국사람 특성이 확실한 듯 싶다. '소란스럽다' 라는 느낌. 지난 학기 컴퓨터구조 시간의 중국 학생들이 '또'[각주:2] 생각났다. 남한테 피해를 줄 정도로 소리가 커서 그리 보기 좋진 않았다.

 쿼터제[각주:3]는 정말 선택과 집중의 시스템인거 같다. 게다가 LTH에선 더더욱. 7.5학점짜리 문과대 대학원수업이 주당 4시간,6시간해서 평균 5시간정도였는데 여긴 주당 8시간이다. 게다가 아침8시부터 수업한다. 이번 쿼터에 컴과 수업 두개를 듣는데 암담했다. 일찍 일어날 자신도 없는데. 고3때 생활리듬으로 돌아가야하나.

 교수님 말투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각주:4] 미군 신병훈련소 교관같다. "어쩌고 저쩌고~~ 알겠나?!" 이런 억양. 주위를 살펴보니 자는 사람도 있고 넋 놓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필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수업 종료 15분전 쯤 되니 집중력에 한계가 와서 그냥 시간 가기만을 기다렸다. 

 끝나곤 문과대 건물에서 친구들이랑 스웨덴어 시험준비를 했는데 일본지진 후원 모금행사가 한참 준비중이었다. 옆자리에 일본애들이 앉아서 열심히 뭔가 만들고 있는데, 일본 사람은 여기와서 처음 봤다. 그래도 있기는 있구나. 

 일본 지진은 처음에는 별거 아닌거 같았다가 점점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걸보고 예사 일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1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 순간에 죽은 마을 기사를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인터넷에선 열심히 키배가 한창인데 일본을 걱정하면 반민족주의자,친일파,위선자라 말하는 사람들은 참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거 같다. 인터넷 없었으면 저런 사람 볼 일도 없었을텐데. 항상 느끼지만 인터넷 덕택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는거 같다.

 스웨덴어 시험준비는 애들이랑 열심히 하다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꼈다. 특히 듣기가 참 안되는거 같다. 노래나 영화같은 매체를 통해 익숙해져야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거 같다. 세 시간동안 하고나니 피곤해서 해산했다. 집에와선 너무 피곤해서 쉬다가 귀국하기 전까지 어느 곳을 방문할지 확실시 해야될거 같다고 느껴서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았다. 굳이 안끌리는 곳은 아예 안가는 편이 나은거 같다. 그러므로 파리라던가 프라하같은 곳은 제외. 시험 끝나고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음.. 결과적으론 집에 와서 공부를 안했다.. 'ㅅ';
  1. Lunds tekniska högskola, 룬드대학교 공과대학. [본문으로]
  2. 분명히 예전 블로그 포스트에서 한 번 언급한거 같다. [본문으로]
  3. 한 학기를 두개의 쿼터로 쪼개서 한 쿼터에 2~3개 정도 수업을 몰아듣는다. 두 쿼터 수업 합치면 한 학기에 6과목해서 18학점 뭐 이런식. [본문으로]
  4. 실제로 그런지는 모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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