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안추워서 좋았는데 봄이 늦게 오는건 별로다. 잎사귀 좀 나려나 했더니 해가 나와야 꽃이 피던가 하지. ; 4~5일 흐림, 이틀가량 맑음의 날씨가 근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데 무슨 삼한사온도 아니고;; 

 이번에도 4일간 흐렸다가 날씨가 맑아졌다. 거리에 넘실대는 사람들. 아파트마당 잔디에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요즘 들어선 좀 불쌍하기도 하다. 하긴, 역시 북유럽은 겨울이지[각주:1].


 아파트 바로 옆에 작은 언덕이 있길래 사진 찍기 좋아보여서 밤 10시에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몇 번 테스트샷 찍다가 알게된건데, 단렌즈는 초점 무한대가 되는데, 번들렌즈는 초점거리에 대한 표기가 없어서 어느 정도가 무한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광각 사진은 실패. 그렇게 거대하고 머나먼 우주도 단렌즈 앞에선 너무 가깝다. 내가 어느 곳을 찍고 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30초간격으로 끊어 찍었다. 북두칠성을 찍었는데 별의 이동방향을 보고 북쪽이란것만 알 수 있지 이게 북두칠성인지 북두신권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_-;



 꽤 어두운 곳에서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건물 조명이 장기간 노출되면서 쌓이고 쌓이다보니 상당한 양이었다. 왜 창문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는지 이해가 갔다.[각주:2] 오랫동안 기다리는게 전부다이다 보니 이것저것 잡생각 좀 하면서 별을 헤아려 보았는데, 예전처럼 입 벌린 채 감탄하고 있지 않다는걸 알게 됐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각주:3]때문인가?  천문학은 사실 물리학이란걸 알게 된 것과 두 번째 재앙과 합쳐 삼대 재앙이었다. 학문으로서의 천문학이 이렇게 난해하고 재미없다니. 두 번째는  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났는데 10만원 가까이 들여 쌍안경 하나 장만해놓고 한참 들떠있었다.. 그리고 <작은 망원경으로 시작하는 천체관측의 첫걸음>[각주:4]이란 책도 시내 모든 서점을 다 뒤져가면서 정말 힘들게 샀는데.. 그랬는데 한 달만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쌍안경만 가져갔다. 쌍안경만 가져갔다는건 가방은 놔두고 쌍안경만 가져갔다는 말. 

 '몇 십억 년 후에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가 충돌한다는데.. 그 때 과학 기술이 잘 대처할 만큼 발달해있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 앞을 스쳐가는 무언가를 보았다. 유성이었다. 불빛이 적은 곳에 있으니 유성도 보는구나. 대항해시대3에선 유성이 나오면 부관이 항상 소원을 빌라고 한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소원은 비밀이란다. 비밀이면 말하질 말던가;; 

 미미한 인간의 존재,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뭐 이런건 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매체를 통해 우주의 거대함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서 이젠 식상한 감도 있다. 'ㅅ' =3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본 blue pale dot에 대한 세이건의 감상은 명문중의 명문이다.

지구에서 64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사진.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1. 은 단지 블랙메탈과 대항해시대3 게임만으로 만들어진 편견. [본문으로]
  2. 건너편 아파트 조명이 너무 강해서 별이 찍히지 않는다. [본문으로]
  3. 호킹이 쓴 천문학 교양서적...인데 어렵다. -_-; [본문으로]
  4. 지금 찾아보니 절판됐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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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션에 가입하기 위해서 외출을 했다. 날씨를 보니 맑음이란다. 밖을 보니 정말 말 그대로 맑은 날씨였다. 여기에 올 땐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혀 있었는데 어느새 거의 다 녹았다. 게다가 오늘은 해까지 떴다. 수많은 네이션 중 blekingska 네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규모가 작아서였고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거칠어보여서였다. -_-; 
 
 시내 중심부로 갔다가 기차역을 건너 서쪽으로 가는 루트를 택했는데 잘 가다가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저씨가 나보고 뭐라뭐라 하고 지나간다. 제스쳐를 보니 인도위에서 자전거 타지 말라는거 같았다. 근데 여기 분명히 인도에 자전거 도로도 같이 있었는데. 다시 살펴보니까 인도 첫 부분에 표지판이 있었는데 자전거와 사람이 같이 표시되어있으면 자전거가 같이 다닐 수 있고 어른과 아이가 손잡고 걸어가는 것만 있으면 걸을 수만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기차역을 건너 서쪽으로 가야되는데 이상하게 건널목이 안나와서 계속 북쪽으로 가니 슬슬 사람이 없어지고 한참 공사를 하고 있는 지역이 나왔다. 다행이 건널목이 있어서 건넜는데 고가도로(?) 위로 건너게 되어 있었다. 위에서 잠시 멈춰서서 건설 현장을 봤는데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좀 신기했던게 공사장 겉에 붙여져있는 조감도 모습이 우리나라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습의 건축물이 그려져있는데 일반적인데 여긴 근대나 근대 이전의 건축물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냥 기존에 있던 건물들은 그대로 쓰고 새로 짓는건 좀 현대식으로 짓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신축건물도 건축양식을 통일해서 짓는 것이었다. 


 도시 서쪽으로 오자 아파트가 거의 없고 전원주택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앞에 자전거 타고 가는 여자를 쭉 따라가다보니 네이션 건물이 나왔다. 나의 추측(보다는 망상)으론 음산한 분위기에 블랙메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염소 피를 뿌리고 십자가를 불태우고 있을줄 알았는데 그냥 멀쩡했다. 1층에서 만난 로빈의 안내를 받아 2층에서 가입절차를 밟았다. 지하엔 댄스클럽이고 윗층은 락클럽인데 락클럽 크기가 홍대에서 공연하던 곳들이랑 크기가 비슷했다. 라이브 앤 라우드나 재머스정도? 스컹크헬보다는 좀 더 크고. 댄스클럽은 그것보다 크기가 더 작아서 30명정도 수용할 수 있을거 같았다. 역시 선택을 잘했어! 난 소규모가 좋다. 로빈은 혀에 피어싱을 하지도 않았고 이마에 적십자가를 박지도 않았다. 오오.. 블랙메탈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도 그건 마이너인가 보다. 뭐 내일 가서 무슨 장르의 노래를 하나 봐야겠지만. -_-; 포스터만 봐선 나같은 브릿게이들이 좋아하는 브릿팝을 할거같진 않고 뭔가 메탈쪽으로 할거 같다. 

 아! 지금 생각났는데 공대 도서관 앞에서 진짜 이상한놈을 봤다. 스피커 한 조(두개가 한 조를 이루던가 조가 스피커 하나를 지칭하는건가; 아무튼;; 스피커 한 쌍?) 를 가방끈을 만들어서 등에 매고 다니는 녀석이 있었다. 무게가 얼추 20kg는 되어보였다. 내가 한국에서 쓰던 스피커보다 더 컸으니가.. -_-;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 리프가 흘러 나왔다. 역시 유럽놈들은 뭔가 다르군;; 80년대 미국 흑형들이 어깨에 라디오 짊어지고 다니는게 생각났다. 

 등록 다 마치고 집에 오는데 햇살이 내리쬐는데 정말 따뜻했다. 여기 사람들이 왜 일광욕같은거 좋아하는지 이해가 갔다. 근데 해가 분명히 정오인데 곧 노을로 바뀔만한 위치에 있는게 아닌가. 역시나 오후 3시쯤 되니 노을이 지더니 해가 바로 떨어져버렸다. 


 돌아와선 스파게티로 점심을 대충 먹고 영화 '하얀 리본'을 봤다. 별 긴장감없이 조용히 쭉 진행되길래 이거 뭔가 해석이 필요한 영화구나 싶었는데 후반부에 1차대전 발발 소식을 전해듣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곤 영화는 정말 별 갈등구조없이 끝났는데 이거 뭐 전체주의 그런거랑 관련있나? 뭐지? 싶어서 찾아보니 전체주의가 독일을 삼키기 시작할 때의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란다. 어른은 전체주의를 하얀 리본을 단 아이는 순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 그냥 어물쩍 찍어서 짐작만 하고 제대로 그 속내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아직 내공이 덜 쌓였나 보다. 

 

 복도가 이렇게 밝은 곳이었다니. 처음 알았다.


 아파트엔 눈도 다 녹았다. 시내 중심부나 도시 외곽의 집들을 보다가 여길 오니 아파트가 참 없어보인다.

 밤엔 보름달도 떴다. 심지어 별도 보인다. 서울에서는 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달이 떴는데도 잘 보였다. 무슨 별자리가 보일까 싶어 멍하니 쳐다보니 오리온 자리였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별자리 뜨는건 거의 엇비슷한거 같다. 다른 점은 좀 높게 떠 있어서 시리우스가 쉽게 보인다는 점? 

 건너편 동 집안은 정말 잘 보인다. tv보는 모습, 식사하는 모습. 이야기하는 모습. 그런데 오늘 아침엔 못 볼걸 봤다. 건너편 3층사는 남자가 샤워하곤 벗은 몸 그대로 창가에 있었다. -_-; 도대체 왜; 

 여긴 정말 은은하게 산다. 가정도,은행도,학교도 모두 노란빛의 은은한 조명을 쓴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조명을 쓰는 분위기 있는 카페가 인기를 끄는데 여긴 모든 집들이 다 그렇다. 그 중에서도 별모양 조명이 정말 이쁜데 날 잡아서 하나 사서 나도 창문에 걸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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