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진료를 포기했는데, 의사한테 hej hej하고 안부인사 하는데만 30만원을 내야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보험가입을 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지만, 당장 저거 내면 밥값이 없다. 게다가 아직까지 진행중인 관세 문제때문에 스웨덴 정부에 돈 갖다바치고 싶은 마음이 0%. 식코가 이런거군. 진료를 포기하겠다는 말에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간호사를 뒤로 하고 떠났다. 그게 어제 일.

---

 스웨덴 룬드만 그런게 아니라 이 주위 동네는 다 그렇겠지만...
겨울에 해 못보는건 이해했지만 4월에 해 못보는건 정말 짜증났다. 하지만 4월 넷째주부터 지금까지 정말 쨍쨍한 맑은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어서 몸을 근질근질하게 만든다. 여름에도 제일 더워봤자 25도 언저리까지밖에 안올라가기 때문에 날씨는 항상 선선하고 따사롭다. 게다가 녹지 비율도 끝내주게 높고 지저분한 자동차 매연도 맡을 일이 없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공원이자 자전거 라이딩 코스다.


 정말 날씨가 얼마나 끝내주게 좋은지 서늘한 바람과 찬란한 햇살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다가 그냥 풀밭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나무 그늘 사이로 나와 내 자전거 그림자가 교차해서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면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래서 스웨덴스웨덴 하는구나.. 하아 -_- 

 이런 것과 방학 후 처음 시작된 미디어처리 수업에는 여전히 4~5명만 왔다. 나머지 20명은 어디로 갔는가. 그나마 수업들으러 온 애들도 3차텀 마감이 다음주인데 1차텀도 안해서 텀 제출할 때 코드도 제출해야되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하는게 텀인데 코드를 안내면 뭘로 평가를;;

 방학전과 마찬가지로 pc실에서 텀을 했다. 전전전 건물 지하에 pc실이 그룹스터디룸 포함하면 그 숫자가  족히 20개는 되는데, 오늘 유난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와 있었다. 생각해보니 기말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제 텀을 시작할 시즌이라서 그런듯. 텀 막판에 몰아쳐서 하는건 여기도 똑같구나 싶었다.

 끝내주는 날씨에 야외에서 점심을 먹고 텀을 하는데 역시나 소란스러운 스웨덴애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데이빗과 동시에 설마 오후 5시!! 이랬는데 진짜 다섯시. ㅋㅋㅋ 난 이게 정말 재미있다. 매번 보는 장면이지만, 직장인도 아니고 학생들이 오후 5시 땡! 하면 정말 칼같이 다 가버린다. 대단한 나라다 정말.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 "스웨덴 문화를 존중해줘야할 시간이야."라고 운을 띄우고 집으로 갔다. 밥먹고 조금쉬니까 벌써 9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밖에는 빛이 남아있다. 요즘은 밤이 9시 30분은 되야 찾아온다.  돌아갈 때 쯤엔 12시에도 해가 떠 있을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일이 있어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항상 여유가 없다는게 아쉽다. 근데 일 없이 마냥 여유롭게 놀기만 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 적당한 경계선은 뭘까? 스웨덴 사람들처럼 오후 5시 칼퇴근? 흠,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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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장한 4월 14일 목요일 이야기.

 역시나 날씨는 흐렸고, 해야할 일은 많았다. 비극적인 14일은 블랙데이[각주:1], 고스트투어날,미디어처리 2차텀 마감날, 웹개발알바 중간마감날,학교 후배 여친 생일날-_-; 등등.. 여러가지로 뒤범벅되어있었는데, 가장 중요한건 텀인지라 아침부터 텀을 시작했다.

 텀 제안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교수님 표현에 따르면 제안서는 정말 clear하다는데, 이렇게 unclear한 제안서는 처음봤다. 심지어 무슨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되는지도 파악이 안되는 수준. 점심을 pc실 밖에서 대충 쳐묵쳐묵하고 교수님 방에 가서 또 질문하고 다시 텀을 했다. 코드는 점점 더러워지고 더이상 뭐가 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는데 시간은 어느새 흘러 4시 30분. 고스트 투어를 가야할 시간이었다.

 고스트 투어는 룬드에 숨겨진 기괴하고 끔찍한 비화들을 들려주는 투어인데, 성당에 밤에 있으면 오르간이 저절로 연주된다던가, 누구 발소리가 들린다던가 하는 6살짜리 꼬마나 믿을 멍멍이 소리부터 룬드의 중세시대에 있었던 피의 사건들까지 아우르는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투어였다.

 출발하기전에 서성이다가 알게됐는데 같이 투어관람하게된 여자애가 사실 파티에서 만났던 사람이자 우리 아파트 사는 사람이고, 심지어 같은 수업도 듣는 사람이었다. 근데 왜 난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지. 안면인식장애인가;;

 


 투어할 즈음엔 날짜가 괜찮아져서 사진도 이쁘게 나왔다. 룬드 대성당은 11세기에 지어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트롤이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안에 가면 트롤상도 있다. 이 성당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게 성당 뒤편 벽이 전면부와 다르게 그을려있는 이유다. 그 이유는 대화재가 예전에 발생해 벽 일부가 불에 탔기 때문. 성당의 가장 오래된 부분을 자세히 보면 사용된 돌 종류가 다르다는걸 알 수 있다. 초기 성당은 사암으로 지었기 때문이라는데, 정말 약간은 셰일느낌의 사암으로 되어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망치와 정으로 열심히 두드리면 금방 구멍이 뚫릴듯.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건 시간표에 얽힌 이야기였다. 룬드 대학교 수업 시간표는 10시~12시같이 2시간 단위로 되어있는데 사실 수업시작시간은 10시 15분이다. 왜 시간표엔 10시라고 해놓고 시작은 15분에 하냐면, 옛날 학생들은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쳐야하는 성당 종소리가 자신이 집에서 떠난지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있는 시계였다고 한다. 이 종소리를 듣고 수업 시작이 15분 남았으니 좀 서둘러야겠구나.. 뭐 이랬다는 이야기. 나같은 경우엔 자전거타고 지나가면서 휴대폰시계를 꺼내볼 수 없어서 성당 종소리에 많이 의지했었다. 
 

 난 왜 저것도 못봤을까 ㅋㅋ 매일 지나다닌 길인데. 저 뒤 돌에 새겨진 남자. 돌을 뚫는 남자? 돌을 부수는 남자?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저런게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이 옆엔 고대 바이킹 무덤도 있는데 무덤 주위에 룬스톤이 여러개 있다. 판타지게임에서나 보던 룬스톤이 학생회관 바로 앞에 있다니. 근데 가이드 말로는 사실은 바이킹 무덤이 아니라 쥐무덤이란다. 학생들이 때려잡은 쥐 시체를 넣어놨다나 뭐라나.
 


 저 집 앞쪽 골목에서 학생이 다른 학생을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당시엔 학교내에 법정도 있고 교도소도 있고 사형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시체가 학교와 도시의 경계에 있어서 어느 관할인지를 두고 한참 시끄러웠는데, 결국 범인은 잡혔고 어찌어찌해서 학교 법원 관할로 사건이 넘어가서 학교 사형장에서 사형당했다. 학교 자체 법정이 있을정도면 1700년대 쯤 일이려나. 이 살인사건으로 저 집은 The house of sin으로 불렸는데 가장 윗쪽 꼭대기 방에 사는 학생은 The highest sinner라고 불렸단다. 
 


 몇 번 언급했던 철학과 건물. 실제 이름은 kungshuset으로 왕의 집이라는 뜻. 덴마크 국왕와 룬드 대주교와 관련된 일화와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아.. 역시 일기는 그날 바로바로 써야되는듯.
 

 룬드는 알고보니 피의 역사로 가득찬 곳이었는데, 두 창문 사이 벽이 다른 부분과 달리 부서진 곳을 보수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중세시대에 전투를 하다가 박살이 나서 그렇단다. 룬드 대주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군대도 보유했단다. 룬드 대성당 주위는 일종의 요새였다. 그래서 룬드 성당 뒤쪽 뜰에선 수많은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고, 효수[각주:2]가 행해지던 곳이기도 했다. 이 도시엔 아직도 중세시대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다른 예로 룬드 중앙광장은 광장(Square)이 아니다. 사각형이 아닌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건 11세기 스타일의 광장이라 한다. 다른 유럽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이곳도 그렇고, 꽤나 부러운 점 하나는 오래된 건물들이 참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게 부러운 이유는 그렇게 오래된 건물들이 관광지나, 보존을 위해 출입이 금지된게 아니라 아직도 상업공간,주거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세기면 십자군 전쟁도 일어나기 전인데 이 때 지어진 건물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스웨덴 꼬마애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건 성당과 마찬가지로 매일 지겹게 지나다니던 성당 뒷골목 가구가게 옆집이 룬드 대주교(아크비숍) 집무실이었다는 사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가던 곳이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찬 곳이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투어가 끝나고 텀을 마감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가야했다. 집에 갈 수 없어서 케밥가게에서 식사를 했다. 오래산 프로페셔널 -_-; 룬드 시민인양 뜻 모를 케밥 요리를 스웨덴어로 자연스럽게 달라했더니 키클링(닭)이냐 ??? 냐 묻는데 뒷 단어를 몰라서 온지 얼마안된 외국인인게 들통났다;;[각주:3] 케밥하면 소고기나 양고기로 통일인줄 알았는데 닭고기도 있었다. 맛은 뭐.. 갈릭소스빨; 집에서도 쉽게 요리 할 수 있을거 같다.

 아무도 남지 않은 학교로 다시 가서 텀을 했다. 텀이 끝난건 새벽 두시. 데이빗이 보고서를 끝내고 교수님에게 메일까지 보내고나자 온 몸에 힘이 쫙 풀리면서 피로가 밀려왔다. 지상으로 올라와 문을 나서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엄청난'[각주:4] 안개가 나를 맞이했다. 이 신비로운 자연 현상 보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나. 

 역시 교환학생은 어디까지나 관광객이 아니라 학생이다보니 공부하면서 재미를 느껴야 제맛인듯.. 

 
  1. 이런 데이 시리즈 참 어거지같은데, 짜장면이 맛있으니 블랙데이만큼은 봐준다;;; 하아.. [본문으로]
  2. 목을 잘라서 창이나 기둥에 걸어두어 형벌. 일벌백계의 의미로 많이 이용됐다. "니들도 나중에 이렇게 되는 수가 있다. 조심해라~" 이런 이런 의미? ㅋㅋ [본문으로]
  3. 은 그냥 농담. 'ㅅ' =3 겉모습부터 외국인인데 뭘;; 머리속으론 데이빗에게 "run for your life!"하고 그대로 도주하면 심슨같은 장면이 연출될거 같단 생각에 킥킥댔다. [본문으로]
  4. 사진 찍어둘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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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넘어 잤지만 컴퓨터 알람은 6시에 맞췄다. 꿈을 꾸다가 알람소리에 깨서 휴대폰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여유로운 1교시 등교를 위한 완벽한 기상시간이다. 흐뭇해하며 다시 잤다. 'ㅅ'

 만약을 대비해서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 덕에 7시 20분 경에 깨서 재빨리 학교로 출발. 수업은 8시 15분 시작이지만 이미 집에서 나갈땐 7시 50분이었다. 학교 도착하니 8시 5분. 수업 들어온 사람은 나 포함 4명. 30분 있다가 한 명 더 왔다. 쉬는 시간되니까 몇 명이 집에 갔다. 나한테 프린트 주기로한 스웨덴어수업부터 전공까지, 같은 수업듣는 애도 안왔다. 사실 수업들어가는게 별로 의미가 없는게, 열심히 ppt를 읽으셔서 전혀 도움이 안된다. 

 좋은 학자와 좋은 교수님은 별개라는 생각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MATLAB은 지난 학기 SPM 건드린다고 깔았던거 전부인데 MATLAB 프로젝트가, 별도의 시간 할당없이 그냥 던져져서 매우 당황스런 가운데 프로젝트 설명을 간략하게 5분 정도 들었다. 매우 쉬우니까 알아서 해와..라는 간단명료한 정리.

 08년 2학기 웹 스터디 할 때가 생각난다. SQL같은거 하나도 모르는데 "만들어와!"라는 말에 어떻게든 만들긴 만들어갔다. 사실, 실력은 그 때 가장 많이 늘었는데. 이것도 듣고나면 CS나 DB처럼 MATLAB의 신이 될까.

 이공계 애들은 모두 스터디센터로 모이니까 아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오늘 내 뒷자리 스터디테이블에 앉은, 아는애가 섞인 그룹은 책은 펴두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노트북으로 코미디 프로그램같은걸 보더니 급기야는 lonely island의 i just had sex까지 흘러나왔다. 올 ㅋ 

 이어폰을 집에 놔두고 와서 그냥 무시하고 공부하는데 연습 문제 좀 많이 풀다보니까 엔트로피 문제들은 손쉽게 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진도는 AEP를 넘어서 다음주부턴 5장 들어간다. 올 ㅋ 내일 연습시간에는 멍때리고 있겠군.

 Ehuset 2,3층은 전전전이랑 컴과가 쓰는데 성적 공시가 걸려있어서 유심히 봤다. C++랑 DB 두 과목 모두 U(미국이나 우리나라 식으론 F) 비율이 35~40%. 올 ㅋ

 우리학교가 70%까지 B고 하위 30%가 C+ 밑이니까 비율이 뭔가 엇비슷해서 재수강 대신 F를 때리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여긴 '진짜' 절대평가[각주:1]인데 저런 결과가 나온건 참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1학년때 들은 지학1의 그레이프 교수님도 '진짜'절대평가였는데, 노느라 정신없는 새내기들은 재수강 폭격을 맞았다.

 7시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5시 되면 학생들도 직장인마냥 집으로 죄다 가버리기 시작해서 너무 썰렁해 공부할 맛이 안났다. 주말에 프랑스 갔다오고난 다음부터는 7시까지 있어보도록 '노력'해봐야지. 'ㅅ' =3



 
  1. 우리학교는 절대평가라도 상대절대평가를 한다. 가령 평균이 20점이고 최고점이 30점 이런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선 30점이 A+이지만 여기선 30점이 B 끄트머리고 나머진 죄다 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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