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을 코앞에 두고 스웨덴 관광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에, 계획만 세워놨던 Lomma 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로 왕복 3시간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롬마에는 북해의 숨을 잔뜩 머금고 있는 해변이 있다. 

 꽃이 만발하고 온 세상이 푸르게 변한 북유럽의 평야를 가로지르는 느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몽생미셸을 향해 노르망디를 가로질러 달리던 야간 라이딩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유학 생활 마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온은 20~25도 정도지만 바람이 시원하기 때문에 꿀같이 달콤한 날씨라고 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지 시간이 꽤 흐르기 전까진 오히려 춥게 느껴질 정도. 롬마로 가는길엔 룬드 남서쪽에 있는 예럽? 야럽? 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이 마을은 해변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으니 그냥 스킵했다. 


 재미있는 교통표지판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으니 시속 50km/h 밑으로 운행하시오.. 라던가 말타는 사람 그림에 빨간선을 그어놓은, '승마 금지구역' 표지판도 있었다. 



 표지판이 19세기에 만들어졌나.. 도대체 요즘 누가 말을 타고 다녀.. 라고 생각했는데 주위 농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기르고 있었다. -_-;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외지인이 거의 없는 북유럽 시골 한복판을 자전거로 가로지르는 일이 다시 생길까? 라는 생각을 해보니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어느새 도착한 롬마. kommun은 community다. 롬마 공동체.

 스웨덴의 특징이라면 오픈카가 흔하디 흔하다는건데 날씨가 좋으면 시내에 오픈카가 넘쳐 흐른다. 물론 그 비율은 5%도 안되지만, 한국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보인다. 특히 가는길에 본 30년대 쯤에 만들어진거 같은 고풍스런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를 봤는데 얼마나 멋있던지. 내가 오픈카 타본건 GTA같은 게임에서 뺏아 탄거 뿐인데;;



바다에 가까이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펼쳐진 바다.
 


 
 생각했던거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렇게 평화로운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파도가 얼마나 잔잔한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는 조용히 춤을 추고 있었다.  



 수심이 얕기 때문에 멀리 가도 무릎까지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는 것도 특징.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건 이 바닷가가 멍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어디에도 '민박' 이라고 적힌 현수막이나 '보트타는데 5000원' 이라던가' 활어회 小 12000원..' 같은 문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저분하지가 않다는 의미다. 자연 그대로, 바다가 태초에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연인,친구들과 작은 행복을 만끽하러 온 이들로 그 숫자도 극히 미미해서 모래언덕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묘하고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평화로운지. 갈매기 소리와 잔잔한 파도소리, 물장난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해안 근처 아파트들도 상업시설이 아니라 정말 '거주'를 목적으로 한 아파트들이었다. 때가 묻지 않았다. 
 


 우리나라 도시 미관이 엉망이라는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건축에도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도시 미관이 좋지 못한 이유는 결국 사람이 많고,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보니 심미성이 아닌 '필요에 의한 건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해안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해변들은 얼마나 상업적인가. 돈..돈..돈. 하지만 그걸 비난한다던가 부끄럽게 생각할 순 없다. 서구 세계는 300년에 걸쳐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우리나라는 그걸 30년만에 이뤄냈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우리는 여전히 여유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에서 이제 슬슬 자아실현이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거 자체가 기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롬마의 모습과 한국을 비교해보면서 부러움과 조금의 아쉬움만을 느꼈다. 부끄러움이나 경멸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려는 작업들이 하나 둘 진행되고 있다는걸 알게 됐기 때문에[각주:1] 우리나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중에는' 돈이나 생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숨고르기 좋은 바닷가 하나 쯤은 생기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방파제 근처에는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이곳 낚시꾼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처럼 전문 장비를 가지고 낚시하는게 아니라 정말 낚시대에 미끼만 가지고 낚시를 즐긴다는 것이다. 아마 낚시 그 자체보다는 낚시를 하면서 오는 행복감이 더 좋기 때문이 아닐까. 

 저 멀리 말뫼가 보였다. 말뫼는 스웨덴 제 3의 도시로 인구가 70만명이다. 룬드는 10만명이 안된다. 말뫼는 다 죽어가는 도시였는데 2000년 외레순 다리가 건설되면서 되살아났다.  유럽 본토와 북유럽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현재 말뫼 인구의 1/3은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말뫼 재부흥의 중심엔 신흥 랜드마크 터닝 토르소가 있다. 위 사진 정중앙에 솓아있는 거대한 건물.
 


  200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사람의 몸(Torso)를 뒤튼 모양을 본따 만든 건물로 상업기능과 주거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현대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인 이 건물은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알다시피, 이곳 인구밀도나 인구수는 매우 적기 때문에 굳이 초고층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북유럽 4개국, 왼쪽부터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깃발 모양은 비슷한데 색깔만 달라서 그런지 4개가 하나의 연작처럼 조화롭다는 느낌을 준다.



 어느 꼬마들이 만든 모래성. 



 바닷가 바로 옆 아파트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이고, 이 아파트 너머엔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아름답다. 게임 심즈3에 울프씨 저택이 저런 유리로 뒤덮힌 주택인데, 실제로 직접 보니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근처 공원의 보드 타는 곳. 해변에 갈 때는 북유럽 문화를 거부하고 미국 문화를 잔뜩 흡수한 청소년들이 저스틴 비버 흉내를 내면서 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돌아갈 때 보니 집에 간건지, 텅 비어 있었다.
 


 롬마로 오가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했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든 생각을 정리하는데, 왜 그리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돌아갈 즈음 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1. 간판 정리 사업이나 디자인 서울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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