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모습. 얼마전에 알게된건데 저곳이 항공기 경로라서 항공기가 비행운을 만들면서 지나가는걸 수도없이 볼 수 있다.

 지난주에는 덴마크에 갔다왔다. 구글맵으로 이동경로를 짠 다음에 도보로 다녔는데, 덴마크 코펜하게 관광에 쓴 돈이 왕복 기차비2만원*2 = 4만원, 그리고 버거킹 햄버거값 8천원해서 4만8천원 들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해보니 덴마크 관광에 5만원도 안들었다는 사실에 뭔가 돈벌었다는 느낌도 들면서 유럽 국가들은 확실히 접근성이 서로 좋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첫 수업은 대학원 수업인 행동과학을 위한 통계학 입문수업이었다. 예상대로 대학원 수업답게 수강생이 10명도 안됐고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학구적인 이미지였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와 네덜란드에서 온 여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박사과정이었다. 수업이 워낙 정적으로 진행되서 약간 따분한 감도 있었다. 그 다음날 도서관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박사과정 여학생..이라기보다는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다. -_-; 아무튼 그 사람이 있어서 아는척이나 할까했는데 워낙 비범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 

 목요일에는 스웨덴어 기초과정 강의를 들었는데 옆자리는 멕시코인,러시아인이 앉았다. 둘은 같은 기숙사인지 뭐 어떻게 만난건진 모르겠으나 이미 상당히 친한 상태였다. 둘의 대화는 fuck이나 shit으로 시작해서 끝도 그걸로 맺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나라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는 일이 없다는걸 확실히 알게 됐다. 러시아인하면 스킨헤드이미지, 멕시코인 하면 불법이민,까불대는 성격 뭐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멕시코인은 텍사스에 사는 불법이민자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 거만하고 요란스러운 성격을 보여줬고 러시아인은 분명히 같은 교실안에 독일인이 몇 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jerry라는 말을 썼다. 오! 산채로 목따이기 전에 다음 수업부턴 피해야겠다.

 사람이 생긴대로 논다는건 어디나 똑같은거 같다. 돌아다니면서 과제를 수행하는 시간에 꽤 착하게(!) 생긴 캐나다인과 독일인을 만났는데 역시나 거친 말도 쓰지 않고(지난주 펍에서 만난 독일인과는 다르게)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 주장의 정점을 찍은 것은 어제 밤이었다.

 어제는 마르티나의 파티에 가기 이전에 프리 파티가 샘의 기숙사에서 있었는데 과제가 산더미이고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10시 좀 넘어서 마르티나의 파티에 안가고 그냥 집으로 왔다. 저녁을 안먹었기 때문에 버거킹에 들러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8 miles나 gran torino에 나올법한 덩치크고 머리민 갱처럼 보이는 중학생(아마도) 두 명이 들어왔다. 귀에는 귀걸이, 어설픈 패션, 거만한 걸음걸이. 이곳 어딘가에는 갱 스쿨이라도 있나? 아마 이런 애들이 그래피티 낙서를 하는거겠지. 혹여나 밖에 세워둔 내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지 않을까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사실 알고보니 건달같은 차림으로 밤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게 취미인 바른생활 어린이일지도.. (그럴리가.) 미국이었으면 잠바속에서 총 한자루씩 튀어나왔을거 같다.


    정말 저렇게 생겼다. 백인이라는 점 빼고.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인지 많이 피곤했다. 이 곳 파티 문화 중 이해가 안가는게 술만 마신다는 것이다. 맥주,샴페인,레드와인,화이트와인이 안주없이, 그것도 점심만 먹은 상태에서 몸으로 쭉쭉 들어가니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오늘 저녁엔 같은 플랫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놀자는 쪽지가 문앞에 붙었던데, 술 말고 에피타이저 이야기도 있는거 보고 얘네는 안주가 있을거 같아 다행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참 자기들끼리 다니는걸 좋아한다. 싱가폴에 사는 중국인들도 마찬가지고. 생각해보니 한국사람들도 마찬가진거 같다. 이건 아시아인들의 특징인가. 지난 학기 CA시간에 박교수님한테 제대로 찍혔던 첸위유와 중국인들이라던가, 1년전 네트워크 시간에 봤던 교환학생인 러인헝과 파블로 아빌라 메사가 생각났다. -_-; 네트워크하면 역시 저 두명에 이어서 딩주두 교수님도 ㅋㅋㅋ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뭐 그런거 탓이겠지.

 공통적으로 서양인은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짱! 한국최고! 크흨! ㅠ 하며 눈물을 훔치는 국수주의자들에겐 컬쳐쇼크겠지만, 예전부터 듣던대로 한국의 위상이란건 학교나 미디어를 통해 교육받는것보다,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달도 안있었는데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없고 퀘백 출신 캐나다인은 북한과 남한이 같은 나라냐는 질문도 했다. 호주 사람은 그래도 좀 많이 알고 있었는데 오세아니아가 아시아권이라서 그런가. 서양인의 눈에 동양인은 중국인, 일본인 두 부류인거 같다. 

 방글라데시에서 그랬지만 이곳에 와서도, 외국에 나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모국을 대표하는 일종의 민간외교관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스킨헤드가 아니지만, 수업시간의 인종차별적 언행을 보여준 러시아인을 보고 '역시 러시아놈들' 이라는 생각을 하는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좀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그걸 본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어리석다라고 생각하겠지. 

 장보러 나가야되는데 음식을 뭘 만들어 먹어야될지 모르겠다. 도대체 파스타 소스는 왜 이리 비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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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곳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에 거침이 없다. 어린 아이라 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이정도? 2~3살 아이를 정말 많이, 자주 데리고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감기걸릴까봐 실내에서 키우는데 이곳은 정 반대다. 특이한건 자전거 뒷자리에 아예 유아용 시트를 장착해서 태우고 다니기도 하고 유모차 비슷한 수레를 자전거 앞에 연결해서 다니기도 한다. 이건 스웨덴 뿐만 아니라 덴마크도 마찬가지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버스에는 접이식 의자가 있어서 유모차를 아무런 불편없이 가지고 탈 수 있다. 여기 사람들은 그래서 추위에 강한가?

2. 아이들이 참 열심히 논다.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정말 바글바글하고 눈오면 언덕에서 눈썰매타고 논다. 초등학생들도 열심히 논다. 우리나라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대입준비에 죽어나간다던데; 뭐.. 나 초등학교 다닐때는 논 기억밖에 없어서 이 시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을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안쓰러운건 사실이다. 애들은 놀아야지. 열심히 뛰노는 스웨덴 애들을 보니 우리나라 애들 생각이 나서 좀 씁쓸했다.

3. 의외로 도덕적이지 않다. 이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복지국가라니까 사람들도 모두 예의범절이 있고 도덕적인 삶을 살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여기 도덕 수준은 솔직히 좀 깬다. 일단 자전거도둑이 활개를 치는데 바퀴랑 달랑 남은걸 본적도 있고 여기 집에 오니까 어떤 자전거는 뜯다가 실패해서 그런지 아주 바퀴부터 시작해서 난도질을 해놨더라.. -_-; 그리고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그냥 막 버린다. 그리고 길빵도 서슴없이 하고 가장 충격적인건 아파트 계단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 복도를 벗어나 엘리베이트-계단 구역으로 가면 담배냄새에 머리가 아프다.  꽁초를 계단에 그대로 버리는건 기본. 덧붙여 버거킹에 갔는데 패스트푸드점은 다 먹고 나서 치우는게 셀프임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이곳엔 그냥 먹고 자기 접시를 안치우고 그냥 가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또한 비단 스웨덴 뿐만 아니라 덴마크도 그랬는데 그래피티 낙서가 너무 심하다. 인적이 드문 공장지대나 외곽에 가면 벽 전체가 그래피티로 뒤덮혀있는데, 그 수준이 초등학생 낙서수준부터 예술의 경지에까지 오른 것까지 다양하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을 훼손시키는건 정말 보기 좋지 않다. 그래피티는 옆나라 덴마크도 마찬가지였는데 코펜하겐에 갔을땐 상점 입구 유리문에 Kones라고 낙서를 해놔서 주인 아저씨가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 열심히 낙서를 지우고 있는것을 보았다. 아마 북유럽 나라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나중에 찾아봤는데 kones는 '아내, 아내의' 라는 뜻이다. 

4. 들은거보단 영어를 잘하지 않는다. 가기전에 들은바로는 거지들도 네이티브수준으로 영어를 한다고 했는데 여러 사람들과 대화해본 결과 네이티브 수준까진 아니었고, 대다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게 티가 난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영어로 거의 하지 못했다. 뭐 그 사람이 스웨덴인이 아니라 다른 나라 이민자였을 수도 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영어를 잘하지만 널리 알려진대로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거 까진 아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블로그 등에 좀 과장되게 서술한거 같다.

5. 커피를 즐긴다. FIKA라고 해서 일종의 커프브레이크가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그러는데 여기 사람들은 수업 중간에 10분 쉬는시간에도 밖에 나가서 커피를 뽑아 온다. 아! 그리고 항상 화장실을 가던 커피를 뽑으러 가던간에 자기 가방도 통째로 다 들고 다니는게 인상적; 누군가가 도둑질이라도 할거라 생각하는건가.. 걍 몸만 슥 나갔다가 오는 우리나라와는 다른듯? 참고로 피카의 기원은 스웨덴어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스웨덴어로 커피는 카피 -_-; 인데 이걸 계속 빨리 말하면 카피카피카피카피카피카 해서 피카;; 뭐 다른데서 보니 공장인가 굴뚝청소하는 사람들이 쓰던 은어라고도 하고.

6. 위에서 아이들도 잘 뛰논다고 했는데. 이곳엔 노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폭풍질주까진 아니지만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신체가 건강한 사회라고 해야되나. 아, 그러고보니 꼬부랑 할머니가 별로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와 다른 부엌문화 때문인가.

7. 국민 스포츠가 딱히 없다.. 축구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건데 스웨덴 1부리그 인기도 그닥인고, 여기 올때 세계 핸드볼 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나 비인기 종목이란다. 야구는 전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나라끼리 노는 스포츠라서 여기선 야구모자 쓴 사람 딱 한 명봤고..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축구 좋아하는 애들은 거의 다 바르샤 팬이었다. -_-; 

8. 시험에 경쟁이 없다. 중고교도 아마도 똑같겠지만 대학의 경우 학점이 P/F다. 게다가 한달 뒤에 재시험도 있어서 떨어져도 또 시험치면 된다. 여기선 공부의 목적이 남들 짓밟고 좋은 학점 따내려고 하는게 아니라 수업시간에 서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눈다. 과제도 함께하고 모르는것도 서로 물어보고.. 과제는 나오지만 점수랑 아무 상관 없다. 대신 교수님이 꼼꼼하게 피드백을 해줘서 이해를 잘 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지적해준다. 

9. 가정적이다. 이건 유럽 공통일거 같다고 추측하는데..(왜냐면 tv에서 몇번 유럽의 밤에 대해 봤기 때문에) 저녁 6시정도만 되도 거리에 사람이 없다. 차도 없고 정말 썰렁. 주말에 클럽이나 펍에서 노는 사람들 외엔 모두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학교도 오후 7시정도면 문을 다 닫아버려서 우리나라처럼 24시간 열리는 열람실도 없기 때문에 공부는 집에서 하던가 아니면 낮에 도서관에서 해야된다. .

10. 자전거 교통수칙이 엄격하다. 이곳엔 자전거 전용 도로도 있고 밤엔 자전거에 헤드라이트를 반드시 켜야한다. 앞에는 하얀색 뒤에는 빨간색; 그리고 우회전이나 좌회전 할때는 반드시 손으로 방향을 가르켜야한다. 교통법규 위반시 벌금이 몇십만원에 달하는데 이런 엄격한 법규와 벌금이 있는 이유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다. 

11. 애완견 사이즈가 크다 -_-; 우리나라엔 보통 작은 강아지를 키우지만 여긴 강아지가 아니라 '개'를 키운다. 가끔씩은 크기에 굉장히 놀라는데 시베리안 허스키같은 개들을 한 번에 두세마리씩 끌고 산책하는 분들 보면 위압감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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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좀 하고나서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다가 정말 감동받았다. 벽 목서리 그 어떤 곳도 틈이 없고 배수구도 완벽하다. 여기서 바퀴벌레나 각종 곤충류가 집안에 돌아다니는걸 보는건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창문의 단열 능력에 또 감탄.. 내가 살던 원룸은 모서리에 틈이 여기저기 있고 창문은 그냥 여닫이였는데 한기가 그대로 다 들어왔다. 그런데 여긴 손잡이에 버튼으로 된 잠금장치까지 있어서 정말 틈이 없다. 


 현관도 원룸에선 방음공사를 내가 직접 했는데 이곳은 오오... 집안에 우퍼볼륨을 최대로 올려놓고 있어서 문 밖에선 웅얼웅얼거리는 정도로 들린다. 첫날에 밖에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이사온 다른 학생들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서 실망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문을 제대로 안닫았던 것이었다. 




 내가 살던 원룸은 그래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기준으로 보면 영 아닌 곳이었나 보다. 1학기 DB시간에 들은것도 있고 그 전에 책이나 인터넷에서 접한 것처럼 건설회사 업무 과정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고 있으니 막장 날림공사가 흔한것도 그러려니하고 넘기게 되어 버렸는데, 갑자기 뭔가 계몽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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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션에 가입하기 위해서 외출을 했다. 날씨를 보니 맑음이란다. 밖을 보니 정말 말 그대로 맑은 날씨였다. 여기에 올 땐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혀 있었는데 어느새 거의 다 녹았다. 게다가 오늘은 해까지 떴다. 수많은 네이션 중 blekingska 네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규모가 작아서였고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거칠어보여서였다. -_-; 
 
 시내 중심부로 갔다가 기차역을 건너 서쪽으로 가는 루트를 택했는데 잘 가다가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저씨가 나보고 뭐라뭐라 하고 지나간다. 제스쳐를 보니 인도위에서 자전거 타지 말라는거 같았다. 근데 여기 분명히 인도에 자전거 도로도 같이 있었는데. 다시 살펴보니까 인도 첫 부분에 표지판이 있었는데 자전거와 사람이 같이 표시되어있으면 자전거가 같이 다닐 수 있고 어른과 아이가 손잡고 걸어가는 것만 있으면 걸을 수만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기차역을 건너 서쪽으로 가야되는데 이상하게 건널목이 안나와서 계속 북쪽으로 가니 슬슬 사람이 없어지고 한참 공사를 하고 있는 지역이 나왔다. 다행이 건널목이 있어서 건넜는데 고가도로(?) 위로 건너게 되어 있었다. 위에서 잠시 멈춰서서 건설 현장을 봤는데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좀 신기했던게 공사장 겉에 붙여져있는 조감도 모습이 우리나라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습의 건축물이 그려져있는데 일반적인데 여긴 근대나 근대 이전의 건축물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냥 기존에 있던 건물들은 그대로 쓰고 새로 짓는건 좀 현대식으로 짓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신축건물도 건축양식을 통일해서 짓는 것이었다. 


 도시 서쪽으로 오자 아파트가 거의 없고 전원주택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앞에 자전거 타고 가는 여자를 쭉 따라가다보니 네이션 건물이 나왔다. 나의 추측(보다는 망상)으론 음산한 분위기에 블랙메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염소 피를 뿌리고 십자가를 불태우고 있을줄 알았는데 그냥 멀쩡했다. 1층에서 만난 로빈의 안내를 받아 2층에서 가입절차를 밟았다. 지하엔 댄스클럽이고 윗층은 락클럽인데 락클럽 크기가 홍대에서 공연하던 곳들이랑 크기가 비슷했다. 라이브 앤 라우드나 재머스정도? 스컹크헬보다는 좀 더 크고. 댄스클럽은 그것보다 크기가 더 작아서 30명정도 수용할 수 있을거 같았다. 역시 선택을 잘했어! 난 소규모가 좋다. 로빈은 혀에 피어싱을 하지도 않았고 이마에 적십자가를 박지도 않았다. 오오.. 블랙메탈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도 그건 마이너인가 보다. 뭐 내일 가서 무슨 장르의 노래를 하나 봐야겠지만. -_-; 포스터만 봐선 나같은 브릿게이들이 좋아하는 브릿팝을 할거같진 않고 뭔가 메탈쪽으로 할거 같다. 

 아! 지금 생각났는데 공대 도서관 앞에서 진짜 이상한놈을 봤다. 스피커 한 조(두개가 한 조를 이루던가 조가 스피커 하나를 지칭하는건가; 아무튼;; 스피커 한 쌍?) 를 가방끈을 만들어서 등에 매고 다니는 녀석이 있었다. 무게가 얼추 20kg는 되어보였다. 내가 한국에서 쓰던 스피커보다 더 컸으니가.. -_-;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 리프가 흘러 나왔다. 역시 유럽놈들은 뭔가 다르군;; 80년대 미국 흑형들이 어깨에 라디오 짊어지고 다니는게 생각났다. 

 등록 다 마치고 집에 오는데 햇살이 내리쬐는데 정말 따뜻했다. 여기 사람들이 왜 일광욕같은거 좋아하는지 이해가 갔다. 근데 해가 분명히 정오인데 곧 노을로 바뀔만한 위치에 있는게 아닌가. 역시나 오후 3시쯤 되니 노을이 지더니 해가 바로 떨어져버렸다. 


 돌아와선 스파게티로 점심을 대충 먹고 영화 '하얀 리본'을 봤다. 별 긴장감없이 조용히 쭉 진행되길래 이거 뭔가 해석이 필요한 영화구나 싶었는데 후반부에 1차대전 발발 소식을 전해듣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곤 영화는 정말 별 갈등구조없이 끝났는데 이거 뭐 전체주의 그런거랑 관련있나? 뭐지? 싶어서 찾아보니 전체주의가 독일을 삼키기 시작할 때의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란다. 어른은 전체주의를 하얀 리본을 단 아이는 순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 그냥 어물쩍 찍어서 짐작만 하고 제대로 그 속내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아직 내공이 덜 쌓였나 보다. 

 

 복도가 이렇게 밝은 곳이었다니. 처음 알았다.


 아파트엔 눈도 다 녹았다. 시내 중심부나 도시 외곽의 집들을 보다가 여길 오니 아파트가 참 없어보인다.

 밤엔 보름달도 떴다. 심지어 별도 보인다. 서울에서는 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달이 떴는데도 잘 보였다. 무슨 별자리가 보일까 싶어 멍하니 쳐다보니 오리온 자리였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별자리 뜨는건 거의 엇비슷한거 같다. 다른 점은 좀 높게 떠 있어서 시리우스가 쉽게 보인다는 점? 

 건너편 동 집안은 정말 잘 보인다. tv보는 모습, 식사하는 모습. 이야기하는 모습. 그런데 오늘 아침엔 못 볼걸 봤다. 건너편 3층사는 남자가 샤워하곤 벗은 몸 그대로 창가에 있었다. -_-; 도대체 왜; 

 여긴 정말 은은하게 산다. 가정도,은행도,학교도 모두 노란빛의 은은한 조명을 쓴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조명을 쓰는 분위기 있는 카페가 인기를 끄는데 여긴 모든 집들이 다 그렇다. 그 중에서도 별모양 조명이 정말 이쁜데 날 잡아서 하나 사서 나도 창문에 걸어놔야겠다. 



 빨래 좀 하려했더니 첫 주에는 예약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슬슬 적응을 했는지 세탁실 예약이 꽉 찼다. 결국 아침시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세탁실은 두개가 있고 하나의 세탁실에는 세탁기가 세대, 건조기 한대, 손빨래 할 수 있는 공간, 다리미가 있는데 혼자서 세탁기 세 대를 쓰니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뜨거운물이 바로바로 나온다.. 내가 살던 원룸은 아무리 뜨거운물 틀어도 찬물세탁이었는데;; 세탁기 돌려놓고 방에 와서 딴 짓 좀 하다가 다시 내려가서 세탁기가 멈추기 까지 기다리는데 창문 밖을 보니 반대편 동 2층에 남자 하나가 이리저리 밖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왠지 내가 그 사람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상황이 된거 같아 뻘쭘했다. 


 몇일간 눈이 안오고 비가 잠깐 내린 덕택에 눈이 많이 녹아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눈 밭 위에 자전거가 올려져있었는데 지금 보니 나름의 구역 경계도 있었다. 소공 수업 개강이 오늘이라 일찍 길을 나섰다. 

 
 이젠 학교로 가는 최적의 루트를 알아내서 멍청하게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직선루트만 뽑아서 그냥 무작정 페달을 밟기만 하면 된다. 눈도 녹아서 미끄러지지 않는다.

 내가 사는 클로스터가튼 바로 옆에는 핸드볼 경기장이 있는데 지금 한참 남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를 보니 한국 대표팀은 2연패 중이라고 한다. 룬드에선 어느 나라 경기가 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침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썰렁했다.


 경기장 뒤쪽을 가다가 왠지 전형적인 유럽의 숲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나서 찍었다. 영국이 그렇게 안개가 많이 낀다는데 안개는 여기도 그에 지지않을 것이다. 가는길은 이상하게 미약한 내리막이 계속되서 정말 신났다. 하지만 조금 더 가니까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서 정말 다리에 쥐나도록 밟았다. 학교엔 이미 많은 수의 학생들이 와있었는데 과도 -_-;에서 출입증 발급받고 강의실로 갔다. 아, 여기도 이공계는 첫날부터 풀 수업이구나. 블랙박스니 화이트박스니 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공스런 단어들이 넘쳐나는 Software Testing 수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공에서 약간 더 심화된 수업인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확신이 든게 내가 이 수업을 듣기위한 요건을 만족하지 못해서 수강을 할 수 없다는 메일을 코디네이터에게서 받았다. 아. -_-; 가뜩이나 수강신청이 꼬였는데.. 이러다가 한국가면 한학기 더 다녀야될지도.. 

 늦은 점심은 좀 비싸게 먹었다. 다른게 아니라 빵과 스테이크 유통기한이 다 되서 그랬다.  시간감각이 부족한건지 겉면을 항상 조금씩 태워먹는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도 하루 식비를 만원정도로 제한했는데 그러려면 하루에 약 70 SEK정도로 살아야 한다. 여기 물가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까 사실 한국에서도 학식에서나 3천원이하의 가격에 한 끼를 먹을 수 있지 밖에서 사먹으면 기본이 5천원은 넘어갔다. 그래서 여기서 하루 만원은 좀 어불성설인 듯 했다. 조금은 관대하게 하루에 15000원으로 늘려봤는데 ICA가서 장을 보고 난뒤 영수증을 살펴보니 주식을 유통기한때문에 좀 빨리 먹게되는 빵 대신 파스타나 스파게티로 하면 충분히 절약하며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곳엔 정말 별의별 소스를 다 판다. 양파맛 청어 소스도 있을 정도 -_-; 그런데 이건 좀 너무 짜고, 타이 칠리소스가 그나마 가장 무난한 듯 하다. 


 후식으로 먹은 블러드 오렌지. 속이 빨간 오렌지다. 이 오렌지의 존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는데 처음에 먹을 때 맛이 이상해서, 여긴 설익은걸 파나.. 싶었다. 왜냐면 사과도 네덜란드산 홍옥만 좀 멀쩡하고 나머지는 완전 조그마한 걸 팔고 있었기 때문에 과일의 질이 좀 떨어지는걸 먹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블러드 오렌지란다. 무슨 고급 마트였던가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판촉행사하는 기사도 나왔는데.. 음.. 이 블러드 오렌지의 맛은 첫맛은 시고 끝맛은 쓰다. 맛없는게 특징이다. 껍질도 일반 오렌지에 비해서 안까진다. 다시는 안사먹을거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책 좀 빌려올껄.. 하고 후회를 했다. 아직 개강을 안하니 이렇다하게 할 게 없다. 일하던 것도 잠시 정체중이고. 온갖 파티 초대장이 날아드는데 주말에 락클럽 파티가 있어서 가볼까 고민중인데 여기 락클럽은 어떤 곳일까. 히트맨 -_-; 에서 나오는 곳처럼 생겼을까. 한국에서 내가 공연하거나 구경하러 가던 곳이랑은 다르겠지. 왠지 블랙메탈 밴드들이 나와서 십자가 때려부수고 그럴거 같다. 생각해보니 여기가 바로 음침한 블랙메탈의 고향 아니던가. 기타 가지고 올껄! 기타 치고 싶다. 여긴 왜 동아리가 이렇게 적지. 밴드는 아예 없는거 같고. 베를린이나 런던까지 비행기로 단독 5만원에 한시간이면 가는데 주말에 정말 할거 없으면 여행을 가야겠다. 집에 박혀있는거보단 낫겠지. 개강해서 사람들 좀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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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역시 안개가 잔뜩 끼고 흐렸다. 전 날 밤엔 또 눈이 내렸다. 전 날 EMS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 가서 직접 찾아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이 얼어있기 때문에 꽤 힘든 여정이었다. 우체국은 내가 사는 nordanvag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본 설원. 정말 눈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체국은 굉장히 소규모였는데 고대 우체국 규모라고 하면 이해하려나? 짐을 찾는데 도저히옮길 방법이 없었다. 박스가 무려 두개. 옷과 이불박스였다. 그래서 그냥 다시 택배를 집으로내는걸 신청했는데 가격이 250 SEK. 직원이 내 집까지 택시타면 100 SEK도 안나오니까 택시를 타라고 조언했다. 택시를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묻자 이 곳은 콜택시가 주류라고 한다. 번호를 받아 전화해봤는데 상담원에게 바로 연결되는 곳이 몇 군데 없었다. 겨우 택시를 불러서 힘들게 집까지 왔다. (직접 찾을 때 여권이 있어야한다.)

 이쯤되니 초기의 적응기간이 참 너무나도 싫어졌다. 바보가 된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잘하지만 스웨덴어도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단어와 철자가 비슷한 스웨덴어 단어는 대충 알 수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알아볼 수 없으니, 회화는 영어로 한다해도 글을 못읽으니 너무 답답했다. 

 내가 보낸 EMS 박스가 하나 더 있는데 다음주에 개강하고나면 또 우체국가서 찾아와야 될 걸 생각하니 한 숨이 나왔다. 그래도 크기가 상대적으론 작아서 뭐 어떻게든 해결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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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후의 폭설이 아직도 녹지 않은데다가, 심심하면 눈이 조금씩 더 내리는 바람에 아침의 풍경은 항상 이런 식이다. 짙은 안개때문에 시야가 그리 좋지 못하고 인도나 자전거 도로는 눈이 얼어서 빙판길이다. 이 날은 LTH OT와 코디네이터를 만나는 날이라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서 6번 버스로 갈아탔다. 


시내 중심가의 버스 정류장. 룬드 시내에는 거의 모든 노선의 버스들이 모인다. 서울로 치면 청량리 환승센터 정도 랄까? 


분명히 제대로 본거 같았는데 반대방향이었다. 어느새 종점까지 가버렸다. 어느덧 도착한 종점 St. lars. 종점답게 사람도 없고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잃다던가해서 이런 저런 문제를 겪고 있으니 참 답답하다. 내가 길치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와서는 문득 혹시 내가 길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비록 엄청난 로밍 요금이 나오긴 하지만 폰의 구글맵 gps가 있다는 것이다. 이거 없었으면 정말 이 조그만 도시에서 미아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갔다. LTH는 어제 GENERAL MEETING 때 와 봤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물론 반대방향 사건때문에 지각해버렸지만. 대충 이야기를 듣고 서류를 챙긴 후 코디네이터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우리나라는 큰 건물 위주로 길을 찾곤 한다. 가령 택배나 배달원이 집을 못찾을때면 "거기 ~~은행건물 보이시죠 거기 옆 골목이에요." 라는 식의 길찾기 말이다. 하지만 여긴 건물이 모두 근대 이전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내부만 현대식으로 바꿨기 때문에 한국에서 처럼 길을 찾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 미관만 생각하면 건축양식이 통일된 유럽이 아름답긴 한데 실용성(?) 면에선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내가 한국사람이라 한국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길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신발에 아이젠이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목적지까지 도착했는데 점심시간이라 문을 안 열었다. 나도 배가 고파 뭔가 먹고 싶었는데 주위에 편의점이나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골목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는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참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건물 내부. 현대식으로 개조되어있다.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케밥 가게가 있어서 케밥을 하나 사먹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케밥은 참 좋아한다. 가격은 40 SEK로 우리나라 돈으로 6천5백원 정도? 여기 물가를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피자는 60 SEK정도인데 우리나라 돈으로 10000원 쯤 되니까, 우리나라랑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싸다. 그런데 이 나라 외식 물가를 생각해보면 피자는 정말 싼 가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조금 덧붙이자면 스웨덴에서는 외식을 하려면 큰 맘을 먹고 해야 된다. 현지인들에게도 부담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물가가 상대적으로 싼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다. 그래서 식사는 웬만하면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직접 해 먹는다. 

 처음에 케밥 가격이 부담되서 좀 그랬는데 나오는걸 보니 만족스러웠다. 가격만큼이나 정말 무지막지한 크기의 케밥이 나온다. 길이가 아마 40cm 쯤 되서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1시가 되자마자 코디네이터를 만나러 2층으로 갔다. 나 말고도 다른 학생들도 있었는데 핀란드에서 온 여자애가 있어서 전날 들었던 핀란드 조크에 대해 물어봤다. 스웨덴 사람들이 핀란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의 대표적인 것이 '핀란드 남자들은 나이프를 들고 싸우길 좋아한다.' 인데, 직접 물어보니 이 애도 정확히 왜 그런게 생겼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핀란드에서는 밤에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이 나이프로 사람을 찌른다던가 하는 일이 좀 빈번해서 사회적인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핀란드는 충분히 안전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ㅋㅋ

 코디네이터인 Marie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수강신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만큼 전산화가 잘 되어있는 곳이 없는거 같다. 이곳은 아직도 수강신청을 할 때 일일이 해당 과에 여석이 있는지 문의하고 보고받고 하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데,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우리나라에선 수강신청사이트가 담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혁신적인지 모른다. 결국 아직도 수강신청,정정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확정된게 거의 없다는 말만 듣고 나왔다.


아마도 철학과 건물.


시대 중심의 교회 옆모습. 교회의 종소리를 처음 들어봤는데 종소리에 수 십마리의 새들이 놀라서 후다닥 날아가는걸 보니 꽤 흥미로웠다.


중간에 SEB에 들러 계좌를 개설했다. 은행은 조용했다. 각종 서류를 가방에 넣고 다닌 덕택에 다시 왕복하는 일 없이 바로 계좌와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카드는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중고자전거를 드디어 구매했다. 중고자전거를 탐내는 또 다른 교환 학생과 가격 경쟁을 해서 700 SEK를 1000 SEK에 샀는데 조명이나 자물쇠 등이 다 준비되어있고 수리가 더 필요없는 괜찮은 상태의 자전거라서 만족스러웠다.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에 다시 되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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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타에서 입국수속을 하는데 내 수화물이 문제가 됐다. 인천에서 나리타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에서는 수화물 제한이 20kg라도 25kg까지는 눈감아주는데, 나는 31kg였기 때문에 6kg 초과에 해당하는 금액을 냈다. 이때 태그를 코펜하겐까지 한 번에 다 붙여서 돈을 모두 지불했는데 나리타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건 오스트리아 항공 비행기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항공에서 요금을 11kg 초과한 금액을 요구하려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분명히 아시아나 담당자에게 들었기 때문에 부과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인천에서 한 번에 돈을 모두 지불했다. 는 이야기를 반복하여 무사히 6kg 초과 금액만 지불한 그대로 징을 코펜하겐까지 옮길 수 있었다.

 나리타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약 11시간을 가량을 날아갔다. 장거리 비행, 아니 기차나 버스 혹은 그 어떤 수단을 통틀어서 5시간이 넘어가는 이동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수학여행 때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돌아왔는데 배는 매우 커서 그냥 호텔 느낌이었으니 패스.. 비행기 옆자리엔 목사님이 타고 계셨는데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다. 약간 개혁파 성향의 목사님이라서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목사가 사람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말을 하는 것도 잘하고 들어주는 것도 잘했다. 

 코펜하겐에서는 삽질로 불필요한 지출을 남발했는데 첫째는 숙소를 찾아갈 때 택시를 이용한 것이다. 덴마크 택시는 거의 2초에 1 dkk씩 요금이 올라가서 몇 분 안탔는데 요금이 300 dkk를 넘어갔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6만원 정도.. 내 숙박 요금이 375 dkk였는데! 게다가 나는 내 숙소가 호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아파트의 일반 가정집이었다. 홈 스텡였던 것이다. 어쩐지 가격이 싸더라; 그 다음 날 어떻게 기차를 타야될 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급 도움을 요청해서 무사히 공항에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코펜하겐 공항은 시내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30분도 안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가까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나무로 되어잇다. 물론 저 문을 열어서 나오는 진짜 엘리베이터 문은 쇠.


코펜하겐 드로닝겐스의 아파트 단지 모습.



하룻밤을 묶었던 덴마크 가정집의 작은 방. 사진엔 안나와있는데 반대편엔 소파,책상,의자,tv,옷장이 있다.


  기차는 한 번에 룬드까지 갔는데 내리니 도우미 학생들이 나와 길 안내도 해주고 셔틀버스도 태워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열쇠를 받고 집에 갔는데 방 크기에 놀라고 엄청난 방음, 단열 성능에 감동했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학생이 생활필수품 들을 놔두고 가서 정말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방학하고 나선 새벽 4~5시 경에 자서 12시쯤에 일어나는게 일상이 되었는데 여기가 한국이랑 시차가 -8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떻게 하다보니 나는 미리 시차적응 훈련을 한 셈이 됐다. .. 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시간으로 초저녁쯤에 잠깐만 쉬어야지 하곤 누웠는데 일어나보니 5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래서 아직 멀었구나 싶어서 다시 또 자서 12시간은 잤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general information meeting이 있는데 lth 건물을 못찾아서 엄청난 시간을 방황하다가 겨우 찾았다. 이미 오전껀 놓쳐서 오후껄 들어야 한다. 집에서 lth '근처'로 가는 버스 분위기가 얼마나 웃겼냐면 모두가 lth를 가는데 어디서 내려야될 지 모르니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가 중간에 내리니까 우르르르 내렸다가 여기 아니라는거 알곤 다시 우르르르 타고 -_-; 내가 길을 잃은 이유는 문 앞에 있어서 lth 근처에서 내렸을 때 선두가 되는 바람에 그냥 직진했더니 어느새 나 혼자 눈 길을 걷고 있었다.

 계속 눈 속을 헤매다가 ICA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을 발견해서 들어가서 빵을 사먹었다.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 되서 현재 위치도 모르겠고.. 지도를 봐도 모르겠고. 덴마크도 그렇지만 스웨덴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간판때문에 건물이 정말 지저분하고 건물들 모양도 다 제각각이라서 건물 찾기가 쉽다. 하지만 이곳 북유럽은 건물 양식이 요즘 지은 것이라 해도 어지간해서느 건축 양식이 15~17세기(아마도..) 분위기다. 언뜻 보기엔 모두 똑같은 건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건물만으론 구분하기 힘들고 거리 이름에 의존해야되는데 철저하게 계획도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점건물 위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우리나라 식의 길찾기는 불가능했다. 

 지금은 도서관에 있는데 조별모임하고 그런건 뭐 우리학교나 여기나 다 똑같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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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엔 잠을 거의 못잤다. 매트리스 위에서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3시에 깨서 그대로 날을 새버렸다. 짐정리하면서 생긴 먼지와 한기를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이중창 덕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침에 영호(아이유 말고 진)를 불러 용달에 짐을 실어줬다. 용달차는 얼마나 양심이 없는지 3층에서 1층으로 짐 옮기는데 5만원을 달라고 한다.
듣자마자 속으로 욕이 나왔다. 좀 도와주면 덧나나. 우리가 짐을 옮길 때 그는 손 하나 까딱 안했다. 아 쓰디쓴 자본주의여.영호는 딱 1/10 가격인 5천원 밥 한끼에 일을 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영호랑 간 곳은 이공계 후문에 생긴 '엄마 밥줘'라는 새로 생긴 밥집. 그 자리엔 원래 누나네 삼치가 있었다.(아마도;)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도 기차에서 3시간 잔거 빼곤 못잤으니 거의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잔 것이다. 너무 자고 싶은데 아직 잔 짐정리가 덜 끝났고 오후 두시엔 총학생회 사무국장과 일 관련해서 미팅이 있어서  잘 수가 없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에 들어올 때 현관에 바른 방음재 제거하기 였는데, 스티커 제거제를 사서 시도해보니 전혀 안통해서 그냥 주인 아줌마가 넘어가주길 간절히 바라곤 스킵했다. 결과적으로 주인 아줌마는 그걸 못보고 나와 작별 인사를 했으니 잘 된 것 같다. 음, 근데 방음재가 문 손상시킨것도 아니고 방음이 하나도 안되는 집에 방음처리 해준거니 좋은거 아닌가. 두시에 사무국장을 만나 3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또 짐정리하다보니 어느것 6시.

 원래는 웹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자다간 2009년 지산 락페스티벌 때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밤 샜을 때의 그 꼴이 날꺼 같아서 밤 12시쯤 연수관 건너 산소수면실로 갔다. 가격은 8시간에 15000원. 샤워하고 누웠는데 정말 일어나기 싫을정도로 좋았다. 샤워실 물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 내가 살던 방은 겨울이면 온수가 차가워져서 미지근함과 차가움 사이의 애매한 온도의 물이 나왔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주인 아줌마한테 열쇠를 반납하고 짐을 다시 꾸리고 EMS를 붙이러 gs25에 갔다. 무게를 달아보니 8kg.. 무게에 놀라고 가격에 기절. 

 인천 공항에선 탑승수속을 하는데 내 티켓 수화물 제한이 20kg라서 오버차지 요금을 냈다. 내 무게는 31.1kg. 초과요금에 또 한 번 경악. 돌아올 때는 30kg짜리 티켓을 끊던가 무거운건 중고로 팔거나 버리고 와야겠다. 저녁시간이 도서 배가 고파 식사를 하려 했더니 한식당이나 뷔페나 죄다 가격이 15000원 전후다. 공항 된장찌개엔 금가루가 들어갔나보다.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고 드디어 비행기 탑승. 비행기엔 승객이 정말 적었다. 내가 있던 뒷쪽 칸에 좌석이
100개는 있었던거 같은데 사람은 10명정도 밖에 안됐다. 내 바로 뒤에는 여자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둘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길이었다. 

 혹시 우리 학교일까 하는 생각에 물어볼 까 망설이다 말았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떠드는데 시끄럽기 보다는 내가 동행이 없어서 오히려 라디오 듣는 기분이라 좋았다. 중간에 자기 언니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고대란다. 그렇다면 자신은 우리 학교가 아니라는 소리. 어디였을까. 그런데 더 경악할 만한건 자기 언니가 공대 학생회를 했는데 학생회 잠바를 가지고 왔다 한다. 내릴 때 보니까 선명하게 보이는 강철공대와 학교 마크.. 아.. 학벌 세탁이 장사시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가 지루해질 때 즈음,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살게 되는건 처음이어서 막연하게 겁도 약간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방글라데시 생활 한 달은
 정주한게 아니니 여행의 느낌이었으나 이건 다르다. 사실,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고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문명국임을 안다. 그런데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이 생각났다. 둘 다 나름의 성장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전자는 비극적인 결말이 기억에 남고 후자는 싱클레어와의 마지막 만남이 또렷히 기억난다. <데미안>에서 가자 유명한 문구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 이야기다. 새는 알을 깨고 태어난다. 아마 용기와 도전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엔 그랬다. 처음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나 이상한 하녀 이야기는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건 용기를 필요하는 일이다. 아마, 가서 뭘 해도 돌아올 때는 조금이라도 용기가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겁재이가 되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 저것 생각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뒤에 학벌 세탁녀 'ㅅ'; 가 흐느끼는 소리다. 한국을 떠나는게 슬픈가 보다. 저 여대생보다 나는 더 용기있는 사람인게 확실하다. 그냥 기분이 이상할 뿐이지 슬프거나 그러진 않다. 게다가 왜 우는지 선뜻 이해도 안됐다.

 민항기가 음속을 돌파해서 날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을 즈음(콩코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항 리무진에서 했던 생각들이 다시 생각났다. 광화문과 종각을 거쳐가는데 빌딩들이 정말 높았다. 30층,40층이 넘는 고층빌딩들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산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서울의 빌딩 숲을 방문 한 적은 거의 없다. 갈 일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는데, 관광 삼아라도 가볼 껄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릴 때 이사온 고향 아파트는 15층이다. 7살,8살 땐 아파트 층 수 자랑에 열을 올렸다. 우리 동은 15층인데 건너편 동은 13층이었다. 그런 사소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의미없는게 뿌듯하고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태권도 다닐 때 흰 띠 받을 껄 7층 형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던 기억도 난다. 




 
 어느새 도쿄 도착. 항공사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호텔이라 여인숙정도의 시설을 기대했는데 라운지도 엄청나고 건물 크기부터 굉장했다. 나는 혼자인데 방에는 침대가 두개. 대형 HDTV가 나오고 부대 시설이 예사롭지 않다. 인터넷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하룻밤에 20만원이 넘는 곳이다. 와.. 항공사에서 일본에서 묶을 숙박시서를 제공해주는데 받겠냐는 제의를 거절하면 정말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역시 비싼 곳이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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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대기  (0) 2011.01.07
  저녁에 올라가려고 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아니면 해결이 안될거 같아 아침기차로 서울에 왔다. 급하게 오는바람에 놔두고 온게 한 두개가 아니라는걸 알게되었다. 아.. 이어폰을 놔두고 오다니. 옆자리에는 충주가는 내 또래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별 말 없이 열심히 자다가 내렸다. 남자가 내리고 나서 그 자리는 아리따운 여성의 것 되었다. 잠결에 자꾸 뭔가 서성이는거 같아서 눈을 떠보니 내가 통로쪽이라서 창가쪽 자신의 자리에 못들어가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자리를 비켜주고 다시 잠에 빠졌다가 객실 내부가 너무 더워서 깼다. 열차카페에서 바나나 우유 하나를 사오면서 그 여자를 다시 봤는데, 음! 아리따운 여성이란 말은 취소; 잠결에 헛것을 봤군; 어쨋든.. 비몽사몽 열차는 청량리를 향해 달려갔다.
 방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길고긴 짐정리 작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몇시간동안 끈 묶고 테이프로 붙이고 짐들을 한 구석에 몰아 놓으니 그 좁았던 방이 참 커보인다. 
 지난 겨울에 앞집은 2,3일 정도 집을 비웠는데 수도관이 동파되서 방에 홍수가 났었다. 그 기억때문에 내 방도 동파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보일러를 꺼둔지 너무 오래되었고, 창문을 열고 방을 비웠기 때문에 방 온도가 처음에는 9도였는데 아직도 13도다. 
 경동화물택배가 가구를 가져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3시나 4시에 온다더니 연락이 없다. 이러다가 못보내고 가는건가. 토,일 집하를 안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온건데. 텅 빈 방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인터넷을 하고 있으니 또 다시 서울에 집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귀찮고 번거롭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마다 이사하는건 참 우울한 현실이다.  침대를 분해해보니 침대 프레임이 여러조각으로 나뉘는데 이걸 요금을 따로 받을지 같이 받을지 모르겠다. 근데 배송비는 얼마 줘야되는거지.
 이민가방에 컴퓨터를 넣으니 어찌어찌 들어가긴 들어갔다. 한 두달 있을것도 아니라서 가져가는건데 뭐.. 본체 케이스를 안가져가니 부피가 참 작다. 모니터만 안가져가면 그냥 손에 들고갈 정도. 머나먼 이국에서도 야상곡과 스윙을 틀어놓고 겨울추위를 피하고 싶다. 으.. 
 가방 하나에 모든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뭐,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박스 하나는 EMS로 보내야 할 듯 하다. 음, 근데 EMS로 보내긴 참 애매한 양과 무게다. 
 앞 집인지 옆 집인지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리는거 보니 그 집도 이번에 방을 빼나 보다. 뭐, 나름의 세대 교체인가. 
 아, 택배 왜 안와.. ㅡㅡ; 택배 보내놓고 다시 짐정리 일을 해야한다. 오.. 방금 전화가 왔다. 드디어 오는구나. 
 기차에서 가이포크스의 불장난이 생각났다. 왜 생각났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2주 전쯤에 브이 포 벤데타(아마도..)를 봤기 때문이고, 어제는 빌려놨던 조르주 르페브르의 1789년의 대공포를 마저 다 읽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 내일은 아침부터 서류 처리하러 여기저기 방문해야 한다.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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