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식물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는 일반쓰레기와 같이 버립니다. 처음 생각으론 음식쓰레기 양이 엄청날텐데 왜 이렇게 처리할까.. 싶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안생기네요. 서양 음식자체가 재료손질로 인해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엔 계란껍질, 과일 껍질정도밖에.. 그 외엔 모르겠네요. 

2. 일반 쓰레기: 일반 쓰레기는 특별히 어떻게 처리하라고 명시되지 않은 모든 쓰레기를 뜻하는데 그냥 봉투에 넣어 버리면 됩니다. 딱히 명시되어있지 않으면 일반 쓰레기입니다. 명심하세요.

3. 캔,패트병: 캔, 패트병의 겉면에 보면 재활용 문구와 함께 0.5~2크로나 까지 금액이 적혀있는데 이는 캔과 패트병을 재활용했을 때 돌려받는 금액입니다. 어디서 재활용하냐면, COOP,ICA,NETTO,Willys 에 가면 구석에 재활용 기계가 있습니다. 여기 기계에 하나씩 넣으면 알아서 옆에 금액이 팅!팅! 하면서 올라갑니다. ㅋㅋ 모두 다 처리하면 금액이 적힌 영수증이 나오는데 이 영수증으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폐지 줍는 어른들이 생각나서 이거 전문적으로 파티같은데 돌아다니면서 수거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비슷한 사람을 보긴 봤습니다. 주말에 가니까 두 자루에 엄청난 수의 캔과 패트병을 가져와서 하루종일 넣더군요. -_-; 결국 기계 수용량이 초과해서 한참동안이나 먹통이 되기도 했습니다.뭐.. 그 사람의 전문적인 직업은 아닐거고.. bar나 pub 직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4. 종이류, 유리: 종이류, 유리는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되는데 쓰레기장에 따로 분리수거해서 버려야합니다. 유리는 넣으면 부서지게 되어있는 특수 수거함이 있고, 종이류는 뭐 아시다시피 차곡차곡 모아서 버리면 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학생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가 의식수준이 많이 떨어져서 좀 지저분하더군요. 

그 외에 가구류 같은건 처분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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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씨실은 한국이나 여기나 공부뿐만 아니라 참 다양한 활동-_-;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E 빌딩 지하의, 지상 공간보다는 조금은 퀴퀴한 이곳에서 2차 텀을 하려 했으나, 1차 텀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거 고치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고 있었다. 데이빗과 한참이나 헤매다가 결국 손을 놔버렸는데,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분명히 수학식을 이용해서 값을 변환하는데 -_-; 교수님 말로는 MATLAB에서 이미지 읽어들일 때 문제라는데.. imread랑 fread가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imread로 읽어도 이미지가 RGB 세개로 쪼개지는건 똑같은데..

 이러다간 2차도 못하고 이스터를 맞겠다는 생각에 그냥 교수님 방을 찾아갔다. 교수님 방문교수님 관계로 다른 교수님과 같은 방을 쓰고 있었는데, 정말 여긴 학교가 가정적인거 같다. 층마다 부엌과 식당이 있고 휴게실도 아주 크게 하나 씩 있다. 연수관에도 식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ㅋㅋㅋ 저녁식사 시간만 되면 모든 연구실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요리대회를 열었을거 같다.

 아무튼, 여쭤보니 교수님도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는거 같고 그냥 아주 덤덤하게 자기 소스를 보여주면서[각주:1] 이렇게 해보라고 해서, 교수님 소스대로 하니 됐다. -_-; 확실히 파일 읽는 문제인거 같기도 한데, RGB YUV 변환함수 또한 교수님껄 써서 도저히 뭐가 문제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정확히 어디가 문제였냐는 질문에 프로젝트의 교훈은 코딩실력을 향상시키는게 아니라 이미지가 인코딩,디코딩되는 과정을 직접 살펴보면서 교과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있다는 따끔한 일침을 들었다. 으.. 이것이 선진 유럽의 교육 방식인가. 데이빗과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각주:2]

 잠깐 사족을 달아보자면, 여기 공대 시험은 모두다 오픈북인데, 과목에 나오는 내용들을 단순히 암기의 대상으로 꾸역꾸역 머리에 쑤셔넣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의적 사고를 위한 하나의 레퍼런스로서 바라본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학수학 시험때 공식 달달 외워야 했던건 정말.. -_-; 지금 생각해도 하하하;; 그저 웃음만 나온다.

 집으로 가는길에 애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모습을 봤는데, 저렇게 어릴때부터 부모가 태연하게 무단횡단을 해대니 스웨덴 온 국민들 대다수가 신호를 무시할 수 밖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되는데. 뭐, 다른 유럽국가들도 신호 안지키긴 마찬가지인데 여긴 정말 심한거 같다.

 더 이상한건, 보행자는 신호를 안지키는데 자동차들은 기가막히게 신호를 잘지켜서 보행자가 양보하려고 하면 차가 오히려 당황해서 이상하게 바라본다. 예전에 96년인가 97년 쯤에 '이경규가 간다'에서 독일에 가서 횡단보도가 빨간불일때 도로에 살짝 뛰어드는 실험을 했는데 모든 차들이 칼같이 멈췄었다. 여기도 비슷한듯? 무단횡단이 흔한 이유가 차량 운전자들이 법규를 정말 잘지키니까 무서울게 없다.. 뭐 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차량 운전자들은 곧 보행자가 될 수도 있는데.. 아아.. 참 복잡한 나라다.



 뉴스를 보니 동국대랑 룬드대학교랑 교류협정을 체결해서 다음학기부터 교환학생들이 온단다. 올 ㅋ  


 조금 덧붙이자면, 이 건물은 철학과 건물인데 중간에 성 망루처럼 생긴 원형 타워가 특징이다. 여긴 저 동그란 타워 전체가 계단인데, 계속 돌아가며 돌아가는 원형계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렇게 지었는지, 현대 건축치고는[각주:3] 너무 오래된 느낌이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15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란다....그러고보니 여기 대성당은 지어진지 천년이 다 되어갔었지.. 생각이 짧았다.

 
  1. 치트키;; [본문으로]
  2. 라기보다는 교수님이 코딩을 잘 못해서 그냥 연막작전 펴신듯;; [본문으로]
  3. 유럽의 건축물들은 요즘 짓는 건물들도 18~19세기 풍으로 짓는 곳이 매우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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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여행 갔을 때 구글맵 GPS로 아까운 돈[각주:1]을 날려버릴 수가 없어서 나침반을 사기로
결심했다. 나침반은 1학년때 지질학 시간[각주:2]에 쓰던게 서울에 있는데.. 필요하단걸 예상하지 못해서 못가져온게 아쉽다. 

 한국에선 학교 근처에 문구점에서 참 많은 것들을 판다.  하지만 이곳 교내 서점[각주:3]이나 문구점은 정말 문구점으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문구점은 상상 이상의 것을 파는 신기한 곳이 아닐까 한다. 나침반을 어디서 취급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문구점밖에 답이 없었는데, 마치 판타지 게임 속 마을처럼 필요한 가게 하나씩만 구역별로 있는 이곳에서 철물점이라던가.. 뭐 그런 가게가 있을리가 없다. 페북으로 스웨덴애한테 SOS를 날려보니 NOVA Lund 어딘가에 있을거란다. 알아보니 노바 룬드는 룬드 서쪽에 있는 대형 쇼핑몰로 수십개의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있으니까.. 음.. 백화점이라고 생각해도 될듯 하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아서 구글맵을 몇번이고 봤다. 가는길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수 많은 전원주택들이 보였는데, 어찌나 이쁜지, 이미 야생화는 잔뜩 폈고, 시간이 좀 더 흘러 나무가 옷을 입는 순간이 되면 룬드 관광을 제대로 다시 해야될 정도로 아름다울 것이다.

 말뫼[각주:4]는 해안도시라 갈매기가 날아다니는데 이상하지 않은데 여기서도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지역이 나왔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니 풍력 발전소도 있다. 바다랑 그렇게 가까웠나..
페달을 열심히 밟으니 저 멀리 NOVA LUND라고 적힌 거대한 표지판이 나왔다. 드디어 도착!

  



 문은 건물 사방으로 나있어서 4개가 있다. 입점해있는 매장 수는 음.. 40개는 되는거 같은데 ㅋ 재미있는건 1층짜리 건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주 넓은 광장안을 돌아다닌다는 느낌도 든다.


 봄-여름 옷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는데 여기 와서 수 많은 의류매장을 보니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잘 모르는 매장말고 그나마 검증되고 유명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H&M[각주:5]을 갔다. 바지별로 허리핏,다리핏이 어떤지 일일이 다 나와있어서 쇼핑하기 편했다. 그리고 놀란것은 옷들에 적힌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에선 인건비가 매우 저렴[각주:6]해서 수 많은 의류공장들이 수도 다카에 있는데, 거기서 만들어진 옷을 여기서 보게될 줄이야. 방글라데시에 있었을 때[각주:7] 만난 의류공장 사장 따님, 작년에 있었던 의류공장 노동자 파업사태 등등 여러가지가 생각났다. 아틱[각주:8]은 잘 있으려나. ㅋㅋㅋ
 


 티셔츠,청바지,난방을 샀는데 할인 품목 위주로 골라 매우 저렴하게 사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나침반을 구하러 다녔는데 도저히 나침반 팔거 같은 가게가 없다. 서점 체인인 AK(이하 기억안남;)에 가보니 문구류도 같이 팔길래 살펴보니 볼펜 하나가 가격이 8천원,1만원씩 한다. -_-; 하이테크팬 심 부러지면 그렇게 아까웠는데 여기서 산 볼펜 하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땅을 치고 통곡할 거 같다. 

 주인한테 나침반 있냐니까 없단다. 대신 건너편에 스포츠의류 매장이 있는데 거기 알아보란다. 아하! 왜 내가 스포츠 매장을 생각못했을까.. 등산,하이킹...스포츠의류하면 노스페이스;;
중고딩들 교복.. 음, 아무튼  intersport에 들어가 물어보니 없단다. 제길. 결국 나는 이곳에서옷만 사고 돌아가게 될 것인가. 포기하고 나와보니 쇼핑몰에 입점을 못한 다른 매장들이 다른 건물에 여럿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맘에 살펴보니 스포츠 의류 매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 가보니 나침반이 있었다. 야호 'ㅅ' =3 이제 돈은 굳었다.

  1. 한참 길 잃고 다니던 1월달엔 10만원이 나왔다. [본문으로]
  2. 지구환경과학인데 사실상 지질학. 교수님도 퇴적암 전공. [본문으로]
  3. 전공서적 구비도 좀 많이 빈약한편. 여기를 우리학교와 비교해보면 하나스퀘어 영풍문고와 중앙광장 유니스토어는 책 '창고'처럼 느껴질듯.. [본문으로]
  4. 약간 사족으로 Malmö를 말모라고 읽으면 스웨덴어 모르는 사람이고 말뫼라고 읽으면 스웨덴어 배운 사람이다. 정확한 발음은 말 므워어에 를 빨리 말하는 느낌? [본문으로]
  5. 스웨덴 대표 의류브랜드. 우리나라엔 명동인가? 거기에 오프라인 매장 하나만 있고 온라인 몰같은건 없다. [본문으로]
  6. 평균 월급이 5만원이다. [본문으로]
  7. 2010년 여름 해외인터넷봉사단 [본문으로]
  8.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동네 일진 짱 ㅋㅋ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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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언제나 겨울일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잔디(?)와 꽃이 쑥쑥 자라나 개화까지 했다. 이스터 즈음부턴 스웨덴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겠군. 바람은 아직까진 약간은 쌀쌀한데[각주:1] 벌써 야외에서 커피 홀짝이거나 멍하니 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전공과 씨름하고 있었는데, 정말 진도 안나간다. 추상적인 개념이 실제로 다가오지가 않았다. 그와중에 시간을 흐르고 흘러 오후 5시가 되니 사람들이 정말 칼같이 집에 간다. 예전엔 여기선 밤에 공부못하는 줄 알았는데, 인문계만 그렇고 공대가면 24시간 개방 지하 컴퓨터실이 있어서 하루종일 공부할 수 있다는걸 최근에 알게되었다. 역시 고..공대.

 이스터에 뭘할지 고민했는데, isle of skye를 갈지, 오스트리아를 갈지, 스톡홀름을 갈지 결정을 못했다. 그런데 isle of skye가 있는 스코틀랜드는 이스터에도 여전히 겨울일거 같은 느낌이고, 스톡홀름은 아직도 눈이 온다.. 오스트리아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선 여름이 다 되서 가야되는데. 아아아 어렵구나.

 어제 밤엔 영화 한편보고나서 뭔가 영화때문인지, 그냥 일이 잔뜩 뒤틀려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봄 기운을 받으니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 메뉴판을 살펴보니 단돈 10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1700원이다. 올 ㅋ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파는거랑 똑같네. 우리나라 커피값은 참 비싸긴 비싸구나. 
  1. 비도 왔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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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팅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9시에 칼같이 눈을 떴지만 오후 1시 수업까지 좀 애매하다 싶어 다시 잤다.  점심 즈음엔 중도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셨다.

 LTH에서 'en kaffe[각주:1]' 하면 'fem krona[각주:2]'라는 답을 받으면서 깔끔하게 계산을 하는걸 보고 그대로 따라했었는데, 여기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en kaffe 했더니 뭐라고 되묻는다. 하긴 전에 샐러드 달라고 하니 vad salad[각주:3]? 라고 되묻더라. 샐러드가 샐러드지 뭐 -_-; 뭔가 더 있나보네. 아무튼, 정신차리고 vad sa du[각주:4]해서 들어보니 lite eller ???[각주:5]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 lite는 little인데 수업시간에 참 많이도 들었던 단어다. 그럼 eller 뒤에는 큰거라는 뜻이겠네. 살펴보니 커피 잔이 작은게 있고 큰게 있었다. LTH에선 카운터에서 바로 잔을 볼 수 있지만 여기선 앞의 미묘한 장애물덕에 무슨 컵을 들고 있는지 볼 수 가 없기때문에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 liten이라고 말하고 계산을 하는데 10 크로나란다. 뭐야 이 날강도들은; LTH에선 단돈 5 크로나인데. 여기 커피는 아라비카산 고급원두를 스웨덴 장인이 한방울 한방울 한약달이듯이 만들었나;; 하지만 영어 한마디 안쓰고 스웨덴어로만 계산을 끝낸다는 점은 뿌듯했다. 하아 불법체류하다가 시민권이라도 받은 기분이야. 레인펠트도 나를 쫓아내진 못할 것이다.[각주:6] 

 수업들어가니 20명 정도의 애들이 있었다. 2주전엔 시작이 4명이었는데! 오늘은 즐거운 문학시간. 문학 교수님 수업은 토론으로 시작해서 토론으로 끝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구식 토론수업의 결정체. 정말 끊임없이 물어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만든다. 하아 -_- 이런게 인문학 수업이지. 09년 2학기 들었던 고전강독 수업 이후로 다시금 맛보는 괜찮은 수업이다. 이런 것과 달리 LTH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은 일방적인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수업이 쭉 겹쳐서 같이 다니는 애 말로는 끔찍하단다. 퀘백에선 공대 수업도 학생들이 책을 읽어보고나서 궁금한 점을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해 답변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데. 나는 러시아 억양 영어로 열심히 PPT를 읽는 노교수님의 강의나 신병교육대 교관처럼 몰아붙이는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질렸다. 차라리 연습시간 조교한테 배우는게 더 낫다. 

  문학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누구나 다 아는 명제로 시작된 수업은, 노동계급 문학이 스웨덴에서 중요한 이유, 왜 영향력이 강한가로 이어지고나서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만약 자신이 외국인에게 자신의 나라 사회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가를 소개한다면 누굴 소개하겠는가? 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故 박완서 작가가 가장 우리나라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정답이라 느꼈다.
 
 나는 책으로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 고등학교때까진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가 있는 한편의 이야기들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으로 접하고 책은 사회과학,역사,철학같은 딱딱한 것만 읽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보니까 그냥 저쪽 분야가 더 끌려서 많이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읽게 된거 같다.

 교수님은 애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제대로 아는 애들이 없었다. 자기나라 작가를 모르는 이유(라고 쓰고 변명)으론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모른다'같은 궤변부터 시작해서 '우리 천조국[각주:7]은 작가의 국적따윈 보지 않습니다.'같은 미부심 돋는 것까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수업이 잠시 진행이 안됐다. 책을 안읽나 보다. 아니, 책을 안읽어도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오는 몇몇 유명 작가들이 있지 않던가. 흠..

 절정은 지난 영화학 시간에 교수님께 태클을 걸었던 우락부락한[각주:8] 잉글랜드 여자애였는데 교수님이 콕 찝어서 영국의 대표작가는 누가 있니? 라고 하자 "조앤 롤링"이라고 답했다. 아... 해리포터. 맞는 말이다. 해리포터만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교수님은 좀 당황한듯. 아마 찰스 디킨스[각주:9]같은 답변을 원했겠지. 근데 따지고보면 해리포터가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가? 영국은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군.ㅋㅋㅋ 

 잠시 침체기 'ㅅ' 에 빠져든 수업은 수업을 절대 빠지지 않는 미국애가 샐린저[각주:10]를 언급하면서 다시 물꼬를 트게 되었다. 오, 샐린저. 내가 샐린저의 저작들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미국의 각종 음모론에 이 사람의 소설이 연루되어있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각주:11]

 스칸디나비아에는 범죄 소설이 발달했는데, 또 다시 wallander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경향신문이었나? 북유럽 특집으로 북유럽 범죄 소설 소개 기사가 있었는데, 한국에도 번역판이 많이있다 한다.

 수업은 게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게이같은 패션을 하고 있는 애가 자신은 외국인에게 미국 게이를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해서 교수님과 마찰을 빗는둥[각주:12] 이래저래 요란하게 끝났다. 그와중에 나는 주위 애들이랑 곰돌이 푸우에 나오는 로빈이 게이인가 아닌가로 토론하고 있었다. -_-;

 토론식 수업이나, 어학 수업같은건 수강하는 사람이 뭔가 직접 하는게 있으니까 지루하지 않고 좋은데, 일반적인 강의식 수업은 확실히 지루하다. 얼간이 호머라면 boring을 외치고 뛰쳐나갔을텐데. 뭐, 과목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이 있는거 같기도 하고.

 집에와선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 엔딩을 봤는데 아.. 또 떡밥만 던지고 끝났다. 다음 편이 나오는건 좋은데, 좀 확실하게 끝내줬으면 했는데.  다음주부턴 이스터까지 다시 2차 텀을 달려야한다. 그전엔 좀 쉬어둬야지. 

 


 
  1. 커피 한 잔 [본문으로]
  2. 5 크로나 [본문으로]
  3. 무슨 샐러드? [본문으로]
  4.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너는 뭐라 말했는가. [본문으로]
  5. 작은것 혹은 ?? [본문으로]
  6. 레인펠트는 현재 스웨덴 총리.이민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본문으로]
  7. 은 미국. [본문으로]
  8. 겉보기에도 쎄보인다. -_- [본문으로]
  9. 19세기 영국 작가. 올리버 트위스트 하면 다 알듯. 스크루지 이야기도 이 작가 작품이다. [본문으로]
  10.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사족으로 난 이 책을 원서로 읽었는데 욕이 매우 많이많이많이 나오는 관계로 영어로 된 욕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_-;;;;; [본문으로]
  11. 애초에 뭔가 기대하고 읽은건 아니다. [본문으로]
  12. 교수님이 원한건 각 나라의 노동계급 소설,사회상을 반영하는 소설. 뭐 이런거였는듯.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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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화요일에 다시 행동과학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발표된 페이퍼는 뜨거운 관심속에 accepted 되었다는데, 한국이 듣보중의 듣보 취급을 받고 있는 이 머나먼 북유럽에서 한국어가 연구 주제로 쓰였다니 뿌듯했다. 외국에 나와선 사람의 정체성을 민족과 국가로 기준삼고 있었기에 그 즐거움은 더했다. 사실 교수님은 교수가 아니라 연구원이었는데, 같은 수업 듣고 프로젝트도 함께한 나이 지긋한 여성분도 연구원이었다. 포닥으로 연구원을 한다는데, 원래 포닥들도 수업을 들어야 되나? 강의 첫 주에 등록서류까지 작성하는거 봐선 정말 '수강'을 하는거 같은데. 그러고보니 시험도 쳤고 과제도 다 했다.

 아무튼 연구실은 SOL 센터 4층의 한적한 곳에 있었는데 언어학과라서 당연히 L 구역에 있을 줄 알았는데 H 구역에 있었다. 헤매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여기선 포닥들에게 개인 연구실을 하나씩 제공하고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교수연구실 공간도 부족한 마당이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연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면서 알게된건데 교수님이 스웨덴 사람이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어쩐지 가운데 이름이 van[각주:1]이더라.

 빨래를 해야되는데 아침 7시~10분 시간만 비어있어서 예약을 했는데 오늘 포함해서 이틀 연속 실패했다. 젠장! 다행히 토요일 저녁엔 예약이 비어있어서 잽싸게 예약했다. 

 오늘은 학교가서 공부했지만 어제는 그냥 쉬었다. 밖을 보는데 놀이터에 애들이 직접 목재를 톱으로 썰어서 나무에 오두막을 만들어 논다. 처음에 왔을때 목재들이 무슨 공사하다가 놔뒀다던가, 폭설로 파괴된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다 만 오두막이었던 것이다. 막연히 열심히 뛰어노는줄만 알았는데 스케일도 크게 노는구나.

 학교가는데 도서관 근처에서도, 집 근처에서도 아는 애들을 만났다. 반가웠다. 새내기 시절, 지하철타고 집에 가는 길이나 열람실 근처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동기들과 잠깐이나마 이야기하는게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만났던 사람들 모두 내 부류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론 지금은 연락도 안하지만. 그런식으로 잠깐 잠깐 보던 사람들 말고, 자주보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하니 뭐, 아쉬움은 없다.

 끙끙대면서 연습문제를 풀었는데, 풀고나서 성취감을 느끼는거 보니 공부하는게 내 적성에 맞는거 같다. 텀 성공해도 즐겁고. 책읽어서 지식을 얻어도 즐겁고. 나쁘진 않은 특성인듯.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려고 채소를 여럿 샀는데, 처음 보니 신기한 것을 하나 샀는데 생것으로 먹기엔 향이 너무 강해서 삶아 먹었다. 구글 번역기에 검색해보니 파슬리였다. -_-; 우리나라에선 장식용으로나 쓰이는게 여기선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뭐, 여기서도 가루로 만든다던가 하는 식으로 '주 재료'로 쓰이지는 않는 모양인데, 그렇게 정성들여 요리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양배추랑 같이 열심히 먹어야겠다.

 

  

  

 
  1. 반,드,폰 같은 것은 전통적으로 귀족들에게 붙는 미들네임으로 '~의'라는 뜻이다. 지난학기 우리학교에 교환학생 온 학생 이름이 요하네스 디트리히 군터 폰 스토컴이었는데 스토컴의 요하네스라는 뜻. 물로 지금은 귀족이란게 거의 다 없어져서 그냥 형식적인 이름일 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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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엔 아기 울음소리로 깼다. 분명히 어느 방에선가 아이가 울고 있었는데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려는 순간까지도 울음소리가 들려서, 너무나 이상해서 한 번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2층의 다른 객실이었다. 이곳에선 게임 히트맨에서나 보던 열쇠구멍[각주:1]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열쇠구멍 사이로 보니 나이가 40대는 넘어보이는 여성이 침대위에서 자고있고 그 위에 아기가 올라타 울고 있었다. 어떻게 아이가 저렇게 우는데 잠에서 안깨어날 수 있지? 주인 부부 내외도 분명히 그 소리를 듣고 있을텐데 별다른 언급이 없다. 오옷.. 이것이 바로 이 마을의 숨겨진 비밀~ 뭐 이런건가. ㅎ_ㅎ 는 망상이고..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제 밤에 도착한 프랑스에서 뭔가를 -_-;[각주:2] 공부하는 양키 커플 한쌍이랑 같이 주인 아저씨 차 타고 몽생미셸로 떠나기로 예정 되어있었는데 잠깐 짬을 내서 동네 구경을 나갔다.
 


 유럽에 여행다니면서, 스웨덴에 살면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덕에 심즈에서 집짓는 기술도 늘었다. -_-; 아무튼, 석조건물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좀 멀리 나가려던 차에 아저씨가 날 부른다. 늦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차를 타고 어제 밤 자전거를 타고 갔던 길을 순식간에 쌩쌩간다. 확실히 불빛하나 없는 밤의 노르망디 라이딩은 위험한 짓이었다.
 


 아침의 몽생미셸은 또다른 느낌으로,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가던 즈음에, 그 커플과는 각 길을 갔는데 멀리서 아침에 들었던 정체 모를 아기 울음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같이 이야기 좀 해볼껄 그랬다. 
 


 수도원은 꼭대기에 있고, 입장료가 학생기준 5.5유로다. 몽생미셸을 굳이 세 부분으로 나눠본다면, 공성전용으로 구축한 외성과 성벽들, 주거지역[각주:3] , 그리고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이리저리 미로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고 관광객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 통로를 밧줄이나, 문을 닫는 식으로 출입을 막아놔서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놨다. 이 곳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썩 아름답진 않지만 가장 처음 보게되는 예배당엔 실제로 사제들과 수녀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 외적인 면을 보완해 주었다.
 


 기념품 가게는 엽서부터 몽생미셸 모형까지 팔고 있는데, 특이하게 노르망디 해변이다보니 범선 모형도 판다. 흔히 알고 있는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지던 대항해시대[각주:4] 때 사용되던 카락이나 갤리온 모형을 파는데 수집욕을 억누르느라 고생했다. 중세시대 유적답게 십자군 피규어도 팔고 있는데 정교한 것은 사이즈도 크고 정말 사실적이었다. 
 
 심지어 여기선 중세시대 검도 팔고 있는데, 검까지는 괜찮다. 여기선 총도 판다. 물론 가짜 총이겠지만 퀄리티가 대단하다. 그런데 18,19세기 드라군 기병용 권총[각주:5]까진 이해해도 20세기 너머의 M1 개런드[각주:6]나 MP44[각주:7], M1911 콜트 권총까지 파는건 좀 황당했다. 가격이 괜찮아서 한 번 살까 했는데, 이 총을 들고 공항에 가서 보안검색을 통과할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니 암담해졌다. -_-; "몸에 벨트나 휴대폰같은거 있으면 꺼내주세요." 라는데 
"잠시만요.. 총이 있어서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총을 스윽 꺼낸다고 생각해보라.. 검문 검색이 심한 미국에선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도검이나 총은 그림의 떡이었고 접시에 몽생미셸을 그린 공예품과 십자군 기사 피규어를 하나 샀다. 홉스봄[각주:8]의 책을 읽은 그 이후부터 현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들[각주:9]을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에펠탑은 확실히 최근[각주:10]에 만들어진 것인데 19세기 후반에 에 관광지화가 시작된 몽생미셸에 저런 현대식 무기들이 팔리는걸 보니 뭔가 이상했다. 게다가 알고보니 현재의 몽생미셸 모습은 20세기에 또 다시 다듬어진 것이라 한다. 최초의 9세기 몽생미셸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섬에 허름한 수도원 하나 뿐이었다. 그런 점에선 몽생미셸도 '만들어진 전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긴 일본인이 정말 많이 오는데, 점심 쯤 다 둘러보고 나가려고 밖에 나오니 정말 끝이 안보이는 관광버스에서 엄청난 수의 일본인들이 내렸다. 끝없는 일본인들의 행렬은 노부부들 깃발투어[각주:11]가 아니라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구성도 다양했다. 

 의외로 한국 사람은 나 빼고 단 사람도 없었다. 중국인은 서너 명 무리가 있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유럽여행 풍토가 남들이 따라간 코스 그대로 다라가는게 태반이라, 나같이 파리를 버려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는 여행에서 한국인 만나는게 어려운 일인건 당연한 듯 하면서도,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사람이 적은건 아닌데, 단 한 명도 없는건 좀 의아했다.

 몽생미셸에선 종교적 경건함에서 오는 숙연함이나 그런건 없었다. 단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듯한 기분에 넋놓고 하염없이 건물 구석구석을 살펴봤을 뿐. 

 몽생미셸에서 오믈렛이 처음 탄생했다고 하는데[각주:12] 여기 오믈렛 가격은 한화로 5만원이 넘는다. 아니, 오믈렛만 그런데 아니라 싸구려 콘 아이스크림조차 5천원 가까이 한다. 우리나라에선 외국인 상대로 어떻게든 사기쳐서 돈 많이 뜯어내려고 내국인/외국인에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각주:13], 여기선 그런거 없이 당당하게 말도 안되는 가격을 메뉴판에 걸어놓는다. 아 이 당당함. 나는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그 가격에 굴복하고 3유로짜리 싸구려 바게뜨 빵을 사먹었다. 구석에서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나보고 마실게 필요하냐고 묻는다. 내가 Is it free? 라니까 아니라고 "젠장! 이 자식 눈치 좀 보소 ㅡㅡ" 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 내가 콜라 마시고 나면 "먹었으니 돈 내! 공짜라곤 하지 않앗어." 라고 했으려나.

 돌아갈 즈음 되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가게엔 직원들끼리 열심히 수다를 떤다. 엽서 하나를 사는데 옆 사람과 수다떨면서 그냥 가격표를 재빨리 찍고 돈 받고 대충 인사하고 날 보낸다. 뭐, 이 유명 관광지도 사람 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장사하고 저녁되면 문닫고 집에 가고.

 입구에 엄마가 사준 갤리온 모형을 꺼내들고 아주 흡족한 모습을 짓고 있는 4살정도로 보이는 꼬마애를 봤는데, 정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은 처음 봤다. 이 꼬마에게 지금 이 순간은, 몽생미셸의 경건함도, 십자군 시대의 어두움도, 리비아 사태도,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는 듯  했다. 오직, 엄마가 사준 이 갤리온 배가 세상의 전부인양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렌으로 가는 익스프레스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배차 시간이 너무 늦어서[각주:14] 퐁토르송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퐁토르송에선 캉(Caen)을 거쳐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TGV가 아니라서 시간도 5시간이 넘게 걸리고 가격도 40유로 정도 했다. TGV를 안타는 대가로 25유로를 절약하다니. 꽤 괜찮은 거래였다.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봄의 낭만적인 노르망디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들과 드넓은 평원을 보자니 가슴이 후련해졌다. 같은 자리 앉은 프랑스 꼬마애가 인형가지고 난리치느라 바쁜 와중에 나는 그 여러 시간동안 창문 밖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기차는 생 로(St Lo)와 캉(Caen)외 10곳도 더 되는 역을 거쳐 파리에 도착했다. 앞의 두 도시는 참 익숙해서[각주:15]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도착한 파리는 여전히 침침하고 우울한 분위기였는데, 다시 알로하 호스텔로 갔다. 호스텔은 더욱더 칙칙해져서 파리 관광할 마음도 안들고, 룸메이트와 잡담할 생각도 없어져서 로비에서 밤이 깊을 때까지 인터넷만 했다. 그 다음날 다시 지하철과 RER B를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짐 하나가 목록에 없는 것이 더 올라와있어서 보안 검색을 하느라 30분 넘게 이륙이 지연되었는데, 저가 항공사의 단점이 이런건가 싶었다.[각주:16] 덴마크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문을 들어서는 그 수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스웨덴 내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딱 1시간 5분 가량이 걸렸다. 외레순 다리 접근성의 위엄에 감탄하며 나의 프랑스 여행을 그렇게 막을 내렸다. 


  1. 히트맨에선 방문 너머를 살펴보기 위해 열쇠구멍을 이용한다. [본문으로]
  2. 음향악?? 철학? 미학? 기억이 안난다. [본문으로]
  3. 지금은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뿐이다. [본문으로]
  4. 15세기~16세기 [본문으로]
  5. 사실 드라군 권총도 여기에 있기엔 좀 이상하다. 대혁명 이후 관광지로 개방되기 전까진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2차대전 미군 제식용 소총. [본문으로]
  7. 2차대전 시기 독일군이 사용하던 기관단총. [본문으로]
  8. 영국의 사학자. OO의 시대 시리즈로 유명하다. 자본의시대 혁명의시대 뭐 이런거; [본문으로]
  9. 홉스봄의 저서 <만들어진 전통> [본문으로]
  10. 나에게 19세기는 최근이다. [본문으로]
  11. 길 안잃으려고 선두가 들고있는 깃발만 보고 졸졸 따라가다가 결국엔 여행가서 남는 기억이 깃발밖에 없는 여행 [본문으로]
  12. 나도 다른 블로그에서 본거라 사실인지는 모른다. [본문으로]
  13. 택시비 사기치는 것도 있고. [본문으로]
  14. 4시 30분이었던가? 나는 점심쯤에 자리를 떴다. [본문으로]
  15. 2차대전 관련 게임으로 8년전에 미리 접했다. ㅋㅋㅋ [본문으로]
  16. 덴마크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도 10분정도 늦게 이륙했다. [본문으로]
 


 생 말로는 브르타뉴 지방에 속한 도시로, 파리에서 TGV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매우 멀리 있는 도시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북서쪽 에 있고 그 옆은 노르망디이고 북쪽으로는 영국의 본머스가 있다. 생 말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적들의 본거지로 악명이 높았는데, 17세기에는 유럽 각국의 샤락 정책[각주:1]에 따라 해적들의 활동이 극에 달했다. 이러한 해적 활동은 19세기무렵부터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 지금은 유럽에서 인기있는 휴양지 중 하나[각주:2]가 되었고 크레페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여행을 가면 길 잃기 싫어서 되도록이면 걸어다니는데, 생 말로 역에서 생 말로까지 한참을 걸었다. 도착할 쯤 되니 파리에서 엄청나게 걸었던 것 때문에 다리가 너무 아파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그런 피로는 싹 풀렸다.
 


 파리가 쓰레기와 오물, 부랑자들이 넘치는 음침한 곳이라면 브르타뉴 생 말로는 그야말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였다. 모든 건축물이 옛 방식 그대로 서유럽의 석조양식을 가지고 있고, 거리 어디에도 아스팔트 도로가 없는 그야말로 옛 유럽의 모습이었다. 
 


 계절도 매우 따뜻한 봄이라서 노천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넘쳐났는데, 평소 까페 이용을 거의 하지 않는 나도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은 충동을 들만큼 거리는 낭만적인 향기를 뽐내고 있었다. 
 


 샤락 해적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며 피식 웃던 차에 곳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미니 정원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흔히들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하면 당연히 망설임 없이 빅토르 위고와 프랑수아르네 샤토브리앙을 떠올릴 것이다. 이 중 샤토브리앙이 바로 이 생 말로 출신이다. 빅토르 위고는 내 다음 목적지인 몽생미셸의 관광지화에 일조화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샤토브리앙 작품을 읽으면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를 가고 싶어지니 그의 고향과, 현재의 위상 등을 생각해보면 좀 아이러니 하다.
 


 생 말로는 크레페로 유명한데,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일본 도쿄 여행을 갔을 때 크레페라는 음식을 처음 접해본 결과 그 흐물흐물한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때문에 콘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사진은 이미 절반정도 파먹은 것이다. 베스킨라빈스에 왜 저 맛이 없을까 아쉬움이 들면서, 만약 저 레시피를 알아내서 학교 근처에서 장사하면서 분명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각종 레지옹 깃발들이 걸려있다. 생 말로나 몽생미셸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느낀건데, 저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퀘백을 참 많이 아낀다. 
 


성벽 위로 올라가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켈트 해가 너무 아름다워서 파리를 버리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암초위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황금빛 해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스페인 말라가 쪽을 La costa del sol이라 하여 '태양의 해변'이라 부르는데 이곳에도 무언가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전망대에도 30분 넘게 그냥 가만히 있었다.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은 여행 중의 사색과 자유로움에서 온다. 깃발보고 가이드 졸졸 따라다니느라 바쁜 단체 관광객들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런 여행이 더 취향에 맞는다. 



 중학교 때 활동하던 동호회의 30대 회원 홈페이지에는 유럽 각국을 혼자 돌아다니며 쓴 여행기가 있었는데, 어릴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막연히 나도 나중에 저렇게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해냈다.  게임 대항해시대 하면서 아일랜드 더블린이 어디있는지 몰라 지구본을 돌려가며 찾던 시절이 어제같은데.

 생 말로에서 퐁토르송으로 가는 버스는 4시 30분에 있었다.[각주:3] 퐁토르송 역에 내려 숙소 주인 아저씨의 픽업을 받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퐁토르송 중심에서 한참을 벗어난 시골에  있는 전통적인 석조 가옥으로, 영국인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영국인이 살고있는건 그리 낯선건 아니지만, 처음엔 당연히 프랑스인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저녁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몽생미셸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미 해는 지고 있어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인 아주머니께 자전거 좀 빌릴 수 있냐해서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자전거로 몽생미셸을 방문하는 사람은 여럿 있었기 때문에 친절하게 쓰여진 길 안내 프린트 종이도 받을 수 있었는데, 밤에 가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각주:4]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 했다. 

 


 숙소에서 몽생미셸까진 자전거를 타고 1시간 -_-;이 걸린다. 엄청난 거리다. 나는 홀로 자전거를 타고 노르망디를 달렸다. 정말 주위에 아무 것도 없었다. 혼자서 소리를 질러도,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가운데에 브레꾸르 마뇨르[각주:5]를 연상케 하는 대 저택도 있었는데, 그 모습에 반해서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에 개가 컹컹 짖고 주인이 거기 누구냐며 소리를 질렀는데 이것이 진정한 유럽 농촌의 분위기구나 하며 감탄했다.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스웨덴은 자전거 앞뒤로 야간 라이딩 시 반드시 라이트를 달아야 한다. 프랑스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다행히 빌린 자전거엔 라이트가 달려있어서 아주 간간히 만나는 차에 치이진 않았다.

한참을 가다보니 저 멀리 아주 조그맣게 몽생미셸이 보였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노르망디 평야 가운데에 홀로 서서 바라보는 몽생미셸의 불빛이란. 에밀리오 알바레스가 이런 느낌을 받았겠구나 싶었다. 


 자전거를 미친듯이 밟아 다가갔다. 최초로 보고서 실제로 가까이 가기까진 30분가량이 더 걸렸다. 몽생미셸이 매우 가까이 왔을 때 수많은 관광객들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하긴, 불 하나 없는 밤에 자전거타고 여길 오는건 정신나간 짓이긴 하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는데 하나같이 빛에 반사되는 형광색 재킷을 걸치고 조심조심 밤길을 걷고 있었다. 다음날 확실히 알게된건데 일본인이 정말 많이 온다. 전체 관광객의 20~30%는 되보였다. 정말 많다. 정말. 일본인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일본인인척 "스게! 스게!"거리고 "스미마셍~ 헨나 바이꾸가 아리마쓰~" 이랬는데 "하이" 이런 대답을 들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불빛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별을 보았다. 정말 별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오리온의 벨트 밑 오리온 대성운 부분의 작은 별들도 보였다. 95년에 책으로만 보던 별자리를 처음으로 봤을 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하교길에 친구들과 별을 보았다. 날씨가 맑다는 것의 기준은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맨눈으로 볼 수 있냐 없냐로 스스로 정했는데, 노르망디의 밤하늘엔 성단뿐만 아니라 은하 그 자체가 펼쳐져 있었다.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이나 밤 하늘을 바라봤다. 베텔기우스가 곧 폭발해서 사라질거라는 뉴스를 본거 같은데, 팔 하나 잘린 오리온은 좀 웃길거 같다.
 
 몽생미셸은 성 오베르가 9세기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건설한 수도원으로, 백년전쟁때는 수도원이 아니라 요새로써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18세기 대혁명을 거치면서 성직자계급이 모두 '박살'남에 따라 수도원은 문을 닫았고 반혁명분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되었다. 그래도 알카트레즈 수준은 아니었는지 19세기 빅토르 위고르를 위시로 한 낭만주의 작가들의 찬사를 통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동화속 모습이라면 정말 '관광지'인 이 곳 몽생미셸이 그런 환상을 실현해주는데 더 알맞다. 몽생미셸 수도원 주위 건물들은 모두 기념품가게와 고급레스토랑인데 레스토랑 음식 가격이 한화로 4만원,5만원정도 하니 가난한 여행객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그 나라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노르망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 휴식을 취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다보니 방 위치가 아주 이상적으로, 내 방은 제일 고층이었다. 유럽 가옥들은 지붕이 삼각형이다보니 침대 부분 천장이 삼각형으로 관입되어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프랑스에서 별로 살고 싶지는 않은데, '여행지'로는 참 좋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전에 얼마전 인터넷에서 본 프랑스의 리비아 사태 개입 관련 기사의 리플 하나가 떠올랐다. "병인년에 조선인을 학살한 것도 불란서 놈이요. 병인년에 조선일의 문화재를 침탈한 것도 불란서 놈이요. ~~~" 로 이어지는 리플이었는데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 리플 작성자는 19세기에서 타임머신 타고와서 두루마기 걸치고 키보드를 두드렸을까. 컨셉 한 번 웃겼다. 고전미를 살리기위한 '불란서'. 푸하하. 그리고 폴란드에 장기 출장간 아저씨의 블로그 포스트도 생각났다. 온돌을 사용하지 않는 폴란드인들의 무지를 욕하며 바닥에서 자기를 고집했다는 글이었는데 아마 지금쯤 입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내일 아침의 몽생미셸을 기약하며 잠에 들었다.



  1. 정부가 공인해주는 해적. 유명한 프랜시스 드레이크도 샤락 해적이었다. 정부 입장에선 나랏돈 안쓰고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니 이득이고, 해적 입장에선 안심하고 노략질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본문으로]
  2. 이 지역만 한 해 방문 관광객 수가 150만명이다. [본문으로]
  3. 17번 버스는 오전9시30분, 오후4시 30분 두차례밖에 없다. 역 바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단 번에 찾을 수 있다. [본문으로]
  4. 해지기 전에 가서 해질때까지 기다리는게 일반적이다. [본문으로]
  5. 1944년 오버로드 작전 격전지 중 하나 [본문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는 생각지 못한 분위기[각주:1]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반면, 파리에 대해선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파리가 단지 잠시 머물다가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것 또한 배경지식 때문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쯤 코펜하겐에서 출발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허탈할 정도로 쉬운데, 스웨덴 내 집에서 걸어나와서 코펜하겐 공항에 딱 들어가는 순간까지 1시간이 안걸렸다. 미리 적어두는데, 귀국하는 길에는 시간을 재봤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의 비행기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스웨덴 집 안까지 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10분. 외레순 다리 덕택[각주:2]에 참 편하게 산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려 RER B[각주:3]를 타고 숙소인 ALOHA HOSTEL까지 갔다. RER이 바로 코앞까지 가는게 아니라 6호선과 12호선을 갈아타는 수고를 했는데, 환승하면서 살펴보니 기차를 타는 몽파르나스 역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래서 숙소를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철도 근처는 온갖 쓰레기와 오몰로 넘쳐나고 담장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인 그래피티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되고 낡았는데 북유럽처럼 품위있게 낡은게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산다.'라는 느낌으로 낡아서, '지저분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로 진입하면서 파리 빈민가를 보게 되었는데 빈민의 상징 아파트 규모에 놀라고 그 위생상태에 더더욱 놀랐다. 그렇게 큰 규모의 복도식 아파트는 처음 봤는데 가로길이가 세로길의 몇배는 되는거 같았다. 게다가 베란다와 복도를 점거하고 있는 온갖 기물들이 마치 몇년 전 인터넷에서 접한 중국 대학교 기숙사같은 느낌이었다.

 제일 처음 접한 유럽 국가가 스웨덴이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스웨덴이 정말 빈부격차가 없고 전체적인 삶의 질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스웨덴에 살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가난하다'던가의 느낌이나 이 사회에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파리는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프랑스인들이 스웨덴인들과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특징은 바로 '매부리코'라는 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옆에서 본 코의 각도가 30도,60,90도를 이루는 완벽한 직각삼각형처럼 보이기도 한다.[각주:4]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아코디언 음악 소리가 들린다. 모로코인지 알제리인지, 어딘지 모를 북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이민온 베르베르인[각주:5] 남자가 애절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돈 구걸. 이것이 바로 예술의 도시 파리란 말인가.[각주:6] "오 예수 영광영광" 거리는 CCM 테잎을 틀거나 녹음된 연주곡을 틀며 구걸하는, 종점만 가면 눈이 뜨이고 다리가 정상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사기꾼 구걸인과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각주:7]

 지하철에 내리니 본토 흑형들이 폭풍간지가 아닌 불꽃간지를 뿜으며 돌아다녔다. 주렁주렁 수 많은 피콕킹용 장식을 하고, 선글라스, 타이트한 핏의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터질듯한 근육. 파리 어느 클럽에서 양사이드에 여자 둘 끼고 놀거 같은 느낌의 흑형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태원에서 만났던 나이지리아 흑형[각주:8]들이 찌질남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낭만의 도시. 'ㅅ'

 해는 이미 지고 거리에 사람은 없어져서 분위기도 으스스 했다. 왠지 파리 구석진 빈민가로 가면 부랑자들이 석유통에 불피워놓고 있을거 같다. 그러다가 묘한 향을 풍기는 남자가 오면 잡아먹고 그럴듯.[각주:9] 다른 구역에 가면 무섭게 생긴 언니들이 껌 짝짝 씹으면서 50유로를 외쳐대고, 근처엔 알바니아계 갱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해서, 파리의 밤거리는 인적이 드물어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범죄자들도 안보인다. -_-; 그냥 아무것도 없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썩은 표정의 베르베르 직원이 날 맞이한다. 아니, 맞이안하고 앞 테이블 여자랑 잡담하다가 내가 오니 전화가 마침 걸려와서 한참이나 수다를 떤다. 항의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뭐 이런게 파리이겠거니 해서 그냥 기다렸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가보니 아이고.. 노르웨이 유스호스텔이 얼마나 품위있는 천국이었는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이놈의 호스텔은 물을 5초만에 한번씩 버튼을 눌러야 나오고, 샤워시설은 더욱 더 엉망이라 찬물 뜨거운물이 랜덤이다. -_-; 역시 이것이 바로 현대 파리의 모습이군.

 방엔 오스트리아에 교환교수인지 교환연구원인지, 어찌되엇던 exchange study를 하고 있다는 중국 마취전문의(의..의느님!)가 혼자 빵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에펠탑을 보러 나갔다. 숙소가 에펠탑과 매우 가까이 있어서 20분만에 도착했는데, 역시 유명한 관광지는 달랐다. 그 대단한 웅장함은 분명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르겐 송네 피오르드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사뭇 닮아있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공원부터 에펠탑까지 매우 많은 수의 관광객이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있었다. 모두 나처럼 에펠탑의 야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술에 취해서 관광객들을 비웃는 무어인들 몇명을 피해 에펠탑에 좀 더 다가갔는데 베르베르 청년 한 명이 에펠탑 모형이 단 돈 1유로[각주:10]라면서 물건을 판다. 출발하기 전 마취의가 블랙맨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 잡상인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베르베르인은 그렇게 블랙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앞쪽에 더 많은 수의 잡상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거긴 흑형들도 있었다. 베르베르,무어[각주:11],흑형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이루는 잡상인 무리는 한 눈에 봐도 이들이 불법체류자라는걸 알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돈 많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구해 가족끼리 오손도손 모여 살고 싶은게 삶의 목표가 아니라 마약 살 돈이 급해보이는 그들이었다. 

 에펠탑 전망대는 구간별로 요금이 다른데 학생요금[각주:12]으로 8유로 정도 냈다. 구간은 옥상 끝까지. 에펠탑의 특징은 1층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과 2층 전망대라 부르는 상대적으로(-_-) 낮은 높이까지 걸어서 올라가야된다는 것이다. 체력이 안좋은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중간에 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지상에서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려올때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르겠다. 자세히 안봐서.

 고난의 행군 'ㅅ'; 을 마치고 옥상에 도착하니 파리 야경이 한 눈에 보인다. 계획도시답게 구획이 잘 나뉘어져 있다. 아름답다. 그 말 외에는 더 이상 생각이 안났다. 내려오는 길에 에펠탑의 철골 구조를 멍하니 한참이나 쳐다봤다. 엄청 꼼꼼하게, 빈틈없이 이어져있는 디자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대지진으로 한참 시끄러운 터라, 파리에 대지진이 나도 에펠탑은 미동도 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중국 마취의는 사라지고 슬로바키아 여자애가 덤덤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크리스는 슬로바키아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살았고 지금은 휴학하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와있다고 한다. 호스텔에 있는 이유는 살 집을 구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셈. 파리 집값이 너무 비싸서 아파트 쉐어[각주:13]만 해도 한달에 100만원이 넘게 깨진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계약을 하려면 부모님 소득같은 것도 일일이 다 적어야 한다며 불평했다. 여행을 온게 아니기 때문에 내일 일요일엔 할 일이 없다면서 나보고 할 거 없으면 자기랑 놀러가잔다. 내가 내일 노르망디로 떠난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했다. 마렉 함식[각주:14] 이야기도 했는데 잘 모른다. 역시 여자들은 축구를 그리 안좋아하나 보다. FM하면 마렉 함식부터 영입하는게 진리이거늘 'ㅅ' =3

 아침엔 나 혼자 일찍 깼다.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주는데 싸구려 바게뜨와 버터, 그리고 시리얼이 제공됐다. 혼자서 구석에서 순대국 먹듯이 쳐묵쳐묵[각주:15]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몽파르나스에 가서 생 말로로 가는 기차를 끊었다. 가격이 65유로 -_-; TGV로 3시간 걸리는 거리고 파리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닌데, 내 비행기 티켓값이 10만원이 안되는걸 생각해보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리고 9시. 드디어 프랑스 여행의 목적지인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일본엔 파리병이란게 있을 정도로 환상이 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프랑스 파리에 대한 환상이 심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현대 프랑스 파리는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음침하고, 구질구질하고 꽤나 우울한 도시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낭만의 프랑스는 노르망디나 남프랑스같은 곳에 가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여행지를 그곳으로 정하기도 했고.












  1. 생각외로 글로벌해서 놀랐다.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서 오슬로는 더 이상 백인들의 도시가 아니다. [본문으로]
  2. 2000년대 개통된 덴마크-스웨덴을 잇는 거대한 다리. [본문으로]
  3. 지하철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추측컨대 EXPRESS의 개념 아닐까. [본문으로]
  4. 첨언하자면 머리새도 다르다. 스웨덴인들은 금발인데 프랑스인들은 짙은 갈색. [본문으로]
  5. 북아프리계 토착민. 북아프리카가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수의 이민(합법, 불법 모두..)자들이 파리에 건너와서 산다. 리비아 문제에 프랑스가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 [본문으로]
  6. 라고 하지만 솔직히 좀 조소에 가까운 말. [본문으로]
  7. 사족으로, 우리나라 지하철 구걸계의 전설은 역시 '안산 사랑의 집'인거 같다. [본문으로]
  8. 이태원에 가면 나이지리아 출신인데 미국 출신인척 하는 흑인들이 많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미국 흑인을 더 좋아해서 그런다고 한다. [본문으로]
  9.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 이야기. [본문으로]
  10. 한화 약 1700원 [본문으로]
  11. 베르베르계이지만 혼혈이란 점에서 다르다. [본문으로]
  12. 학생증 검사를 안한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듯. [본문으로]
  13. 방 세개짜리 아파트가 있다고하면 방 하나를 쓰는것. 다른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하고.대도시에선 꽤 흔한 듯 하다. 미국이나 호주 유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본문으로]
  14. 슬로바키아 출신 축구 선수. 세리에A에서 뛰고 있다. [본문으로]
  15. "니들 순대국 먹을 땐 구석에서 죄지은듯 고개숙이고 먹어라" 라는 고파스 명언이 있다. [본문으로]
 새벽 3시넘어 잤지만 컴퓨터 알람은 6시에 맞췄다. 꿈을 꾸다가 알람소리에 깨서 휴대폰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여유로운 1교시 등교를 위한 완벽한 기상시간이다. 흐뭇해하며 다시 잤다. 'ㅅ'

 만약을 대비해서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 덕에 7시 20분 경에 깨서 재빨리 학교로 출발. 수업은 8시 15분 시작이지만 이미 집에서 나갈땐 7시 50분이었다. 학교 도착하니 8시 5분. 수업 들어온 사람은 나 포함 4명. 30분 있다가 한 명 더 왔다. 쉬는 시간되니까 몇 명이 집에 갔다. 나한테 프린트 주기로한 스웨덴어수업부터 전공까지, 같은 수업듣는 애도 안왔다. 사실 수업들어가는게 별로 의미가 없는게, 열심히 ppt를 읽으셔서 전혀 도움이 안된다. 

 좋은 학자와 좋은 교수님은 별개라는 생각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MATLAB은 지난 학기 SPM 건드린다고 깔았던거 전부인데 MATLAB 프로젝트가, 별도의 시간 할당없이 그냥 던져져서 매우 당황스런 가운데 프로젝트 설명을 간략하게 5분 정도 들었다. 매우 쉬우니까 알아서 해와..라는 간단명료한 정리.

 08년 2학기 웹 스터디 할 때가 생각난다. SQL같은거 하나도 모르는데 "만들어와!"라는 말에 어떻게든 만들긴 만들어갔다. 사실, 실력은 그 때 가장 많이 늘었는데. 이것도 듣고나면 CS나 DB처럼 MATLAB의 신이 될까.

 이공계 애들은 모두 스터디센터로 모이니까 아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오늘 내 뒷자리 스터디테이블에 앉은, 아는애가 섞인 그룹은 책은 펴두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노트북으로 코미디 프로그램같은걸 보더니 급기야는 lonely island의 i just had sex까지 흘러나왔다. 올 ㅋ 

 이어폰을 집에 놔두고 와서 그냥 무시하고 공부하는데 연습 문제 좀 많이 풀다보니까 엔트로피 문제들은 손쉽게 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진도는 AEP를 넘어서 다음주부턴 5장 들어간다. 올 ㅋ 내일 연습시간에는 멍때리고 있겠군.

 Ehuset 2,3층은 전전전이랑 컴과가 쓰는데 성적 공시가 걸려있어서 유심히 봤다. C++랑 DB 두 과목 모두 U(미국이나 우리나라 식으론 F) 비율이 35~40%. 올 ㅋ

 우리학교가 70%까지 B고 하위 30%가 C+ 밑이니까 비율이 뭔가 엇비슷해서 재수강 대신 F를 때리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여긴 '진짜' 절대평가[각주:1]인데 저런 결과가 나온건 참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1학년때 들은 지학1의 그레이프 교수님도 '진짜'절대평가였는데, 노느라 정신없는 새내기들은 재수강 폭격을 맞았다.

 7시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5시 되면 학생들도 직장인마냥 집으로 죄다 가버리기 시작해서 너무 썰렁해 공부할 맛이 안났다. 주말에 프랑스 갔다오고난 다음부터는 7시까지 있어보도록 '노력'해봐야지. 'ㅅ' =3



 
  1. 우리학교는 절대평가라도 상대절대평가를 한다. 가령 평균이 20점이고 최고점이 30점 이런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선 30점이 A+이지만 여기선 30점이 B 끄트머리고 나머진 죄다 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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